[쿠키 지구촌]
아스팔트 바닥에 널부러진 검은색 티셔츠와 청바지 차림 여성 위로 카메라가 흔들렸다. 흰색 스니커즈 밑창에는 붉은 피가 흥건했다. "눈을 떠, 눈을 떠." 부여잡고 울부짖는 남자의 절규는 귀청을 찢는 폭발음, 다급한 발소리, 비명 속에 파묻혔다.
그녀의 머리가 서서히 오른쪽으로 기울었다. 벌어진 입술 사이로 핏줄기가 흘러내렸다. 하나, 둘, 세 가닥. 선홍빛 피가 하얀 얼굴을 지나 회색 아스팔트로 흘러내렸다. 수분 전, 그녀는 군중 속을 걷고 있었다. 수만 명의 시위대 중 한 명일 거라고 믿은, 동영상 속 그녀 얼굴은 소풍 나온 아이마냥 천진했다.
그러나 그녀는 수만 명 군중을 대표하는 목소리가 됐다. 이란어로 '목소리'를 뜻한다는 그녀의 이름 '네다'처럼. 훗날 역사는 네다를 '제2의 이란혁명 상징'으로 기억할 것이다. 설사 혁명이 실패하더라도.
지난 20일 저녁 7시5분. 이란의 한 네티즌이 인터넷에 올린 한 여성의 죽음을 담은 동영상은 불과 몇 시간만에 전 세계로 퍼졌다. 이 네티즌은 "수도 테헤란 카레카르 거리 인근 주택 지붕에서 바시지 민병대 저격병이 이 여성을 조준 사격했다"며 "의사인 나는 돕기 위해 달려갔다. 하지만 총탄은 가슴에 명중했고, 그녀는 2분 만에 목숨을 잃었다"고 증언했다.
미국의 시민 참여 온라인 저널 '뉴스바인닷컴'은 이 여성 이름을 1992년생 네다 아그하 솔탄으로,미 온라인매체 허핑턴포스트는 82년 태어난 같은 이름의 철학 전공 대학생이라고 전했다. 총격 상황에 대해서도 "바시지 민병대원이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며 총을 쐈다"는 엇갈린 진술이 나왔다. 순식간에 거대 미디어들이 뛰어들었지만 보도 통제로 사실관계는 밝혀지지 않았다. CNN과 뉴욕타임스 등은 21일 "확인할 방법이 없다"는 전제를 붙인 채 네다의 죽음과 인터넷을 달구는 추모 움직임을 앞다퉈 보도했다. 세계는 울었다.
6·12 대선 부정선거 시비로 시작된 이란의 반정부 시위는 부정선거 장본인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현 대통령을 넘어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최고지도자로 향했지만, 신정(神政)체제 근간까지 흔들지는 않을 것이라는 시각이 우세했다. 적어도 지난 주말까지 이런 분석은 설득력이 있었다. 그러나 꿈을 펴지도 못하고 이란 정부의 만행에 숨진 네다의 이미지는 새로운 답을 내놓았다. 저항세력은 그녀를 '순교자'라고 부르며 항전을 다짐하고 있다. 이란은 되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고, 반정부 시위는 이제 혁명으로 거대한 물길을 틀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미 시사주간지 타임은 이슬람 시아파의 전통을 시위대의 신동력으로 지목했다. 이란의 다수 정파 시아파는 3·7·40일장을 치르는 것이 전통이다. 20일 시위 역시 집회 도중 목숨을 잃은 희생자 7명에 대한 3일장 형식이었다. 따라서 앞으로 있을 네다의 추모 시위는 이란 정국의 앞날을 결정하는 시한폭탄이 될 수도 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이영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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