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에서 김모 할머니의 연명치료 중단 현장을 지켜본 서울 서부지법 민사12부 김천수(45) 부장판사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한숨을 내쉬며 “판결을 내린 판사로서 현장을 보러 간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러 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11월 김 할머니가 의식이 있을 때 가족들에게 연명치료를 받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힌 점을 인정해 국내 첫 존엄사 인정 판결을 내렸었다.
김 부장판사는 지난 10일 대법원에서 존엄사를 인정하는 확정판결이 나온 뒤 할머니 가족들의 동의를 구해 연명치료 중단 순간을 지켜보기로 했다. 오전 9시50분 시작된 예배가 끝난 후 김 할머니 얼굴에서 산소호흡기가 제거됐다. 김 부장판사는 이 순간에 대해 “하나님을 믿는 신도로서 예배를 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며 “겸허한 마음으로 기도했다”고 말했다.
김 부장판사는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지금은 때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언젠가 시간이 많이 흐른 후 이야기할 기회가 있으리라고 믿는다”고 밝혔다. 존엄사에 대한 뜨거운 찬반 논쟁이 가라앉은 후 이날의 심경에 대해 조용히 말하겠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한 마디가 자칫 불필요한 오해를 살까 무척 조심스러워 했다.
김 부장판사는 또 “제 마음은, 여러가지 생각이 있지만 뭐라고 말씀드리기가 정말 어렵다”며 복잡한 속내를 내비치기도 했다. 그는 “첫 존엄사에 대한 의미라든가 현장을 목격한다든가 하는 생각은 없었다”며 “뉴스를 보고 지인들이 전화하는데 자칫 판사 전체에 대한 오해가 생길까 걱정된다”고 염려했다. 공식 발언을 자제하며 예배와 기도로 하루를 보낸 김 부장판사는 24일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법관의 임무를 다할 예정이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양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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