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네티즌들이 투표로 만들어낸 미국 몰락 시나리오다. ‘포스트 아메리카’를 논하는 목소리는 많지만 미국이 가까운 미래에 지도상에서 사라질 것이라고 믿는 이는 없다. 그러나 어떤 국가도 영원하지는 못한다. 미국 역시 생로병사의 길을 걷게 될 것이다. 더구나 슈퍼파워 미국의 항로는 21세기 인류의 미래를 결정한 최대 변수이다. ‘미국은 붕괴되는가’(1999년) ‘문명의 붕괴’(2005) ‘미국은 로마의 길을 걷게 될까’(2007) ‘미국 이후의 세계’(2008) 등 세계 지성들이 끊임없이 미국의 종말을 묻고 탐구하고 토론하는 이유다.
워싱턴포스트가 운영하는 온라인 저널 슬레이트는 지난 주 144가지 미국 붕괴 시나리오를 작성한 뒤 독자 6만여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였다. 응답을 분석한 결과 ‘중국의 미 국채 투매’로부터 시작해 ‘핵무기 테러’로 이어지는 멸망 시나리오가 만들어졌다. 답변은 오늘을 사는 미국인들의 고민과 공포를 그대로 보여준다.
최대 위협은 ‘핵무기 테러’(10.5%)였다. 이슬람 극단주의 탈레반이나 알카에다 세력이 파키스탄에서 핵무기를 빼돌린 뒤 미국을 공격해서 수백만명이 목숨을 잃는 대재앙 시나리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지구인의 DNA에 새겨진 핵공포와 9·11테러가 가져온 악몽이 기묘하게 결합된 모양새다. 적어도 미국인의 의식속에서만큼은 ‘대테러정국’이 진행형이라는 사실도 확인할 수 있다. 2위 ‘석유고갈’(9.3%)과 5위 ‘이스라엘·아랍 전쟁’(7.6%) 역시 전후 세계가 공유해온 고전적 인류 멸망 시나리오와 닮았다.
1980년대 일본의 위협은 중국으로 완벽하게 대체됐다. 4위 ‘중국의 미 국채 투매(8.2%)’ 시나리오에서는 커지는 중국의 영향력에 대한 두려움과 현 경제위기에 대한 불안이 뒤섞여있다. ‘항생물질에 대한 내성’(3위·8.5%)은 어떤 약으로도 치료할 수 없는 슈퍼 바이러스가 탄생해 미국을 휩쓸게 된다는 시나리오다. 항생제와 성장촉진제로 뒤범벅이 된 육류에 대한 불안이 원인이다.
인도를 위협으로 느끼는 목소리는 거의 없었다. 미국이 전면전이나 군사력 저하로 멸망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굳은 믿음도 드러났다. 남성은 여성보다 중국을 더 두려워했고, 민주당원이 보수적 공화당원들보다 석유고갈을 더 걱정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이영미 기자
ym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