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신종플루에 기는 보건소

나는 신종플루에 기는 보건소

기사승인 2009-08-17 23:44:01


[쿠키 사회]
17일 오전 10시 서울 상도동에 위치한 동작구 보건소. 건물 2층 복도 끝에 자리잡은 '신종 인플루엔자(신종 플루) 상황대책실' 앞에는 평일 오전인데도 시민 10여명이 줄을 서 차례를 기다렸다. 보건소 직원이 나눠준 흰색 마스크를 쓴 사람들은 바로 옆 사람과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누군가 기침을 하면 얼굴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렸다.

잔뜩한 긴장한 얼굴의 한 40대 여성은 "해외에 다녀온 적은 없지만 기침이 심해 검진을 받으러 왔다. 혹시 옮았을까봐 남편도 같이 왔다"고 말하고는 이내 말문을 닫았다. 한 20대 여성은 "폐렴 증상이 혹시 신종플루가 아닐까 검진을 받으러 왔다"고 말했다. 이들은 모두 정상 진단을 받았다. 줄을 지어 진단을 받은 시민들은 대개 신종플루 사망자가 발생했다는 소식을 듣고 사소한 기침에도 겁이 나 보건소를 찾아왔다. 이들은 마스크를 쓴 기자의 질문에도 짧게 끊어 대답하거나 외면할 정도로 혹시나 있을지 모를 전염을 꺼렸다.

30분 정도 기다린 후 진단을 받을 수 있었지만 막상 진료 시간은 짧았다. 해외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느냐는 질문으로 시작된 문진은 증상 등을 짧게 묻고는 체온기로 체온을 측정한 뒤 2분여 만에 끝났다. 정밀 검진을 받을 수 있는 '의심환자'의 기준은 체온 37.8도. 0.1도 낮은 37.7도를 기록해도 정밀 검진 대상에서 제외된다. 시민들의 불안을 덜어주기에는 턱없이 짧고 간단한 진단이다.

인력 부족에 시달리는 보건소의 대응 역시 시민들의 공포를 덜기에 미흡했다. 동작구 보건소 뿐 아니라 대부분 보건소는 검진을 위해 찾아온 시민들에게 "고열이라도 해외에 다녀온 적이 없으면 감기이니 일반병원으로 가라"는 처방을 내리고 있다. "기침이 심하지만 체온이 높지 않으니 신종 플루는 아니다" "체온이 37.8도를 넘어도 최근 해외여행을 다녀오지 않았거나 신종 플루 확진환자와 접촉한 전력이 없으면 정밀검사 대상이 아니다"는 것이 보건소 측 입장이다. 영등포구 보건소에서는 "의사에게 먼저 진찰을 받고, 그 뒤에도 의심이 되면 보건소에 찾아오라"고 말하기도 했다.

보건복지가족부는 "외국에 다녀오지 않았거나 확진환자와 접촉 경험이 없어도 정밀 진단을 받을 수 있지만 실시 여부는 보건소 재량에 맡긴다"고 밝혔다. 보건소 관계자는 이에 대해 "한정된 인력 때문에 단순한 감기 정도로 방문하는 모든 사람을 정밀검진 할 수는 없다"며 "신종플루가 발생한 4개월 동안 심각한 인력난에 시달리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양진영 서윤경 박유리 기자
hansin@kmib.co.kr
양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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