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前대통령 서거] 6년 옥고… 10년 가택연금… 다섯 차례 생사 고비

[김前대통령 서거] 6년 옥고… 10년 가택연금… 다섯 차례 생사 고비

기사승인 2009-08-18 14:22:00


파란만장 인생역정

[쿠키 정치]
인동초(忍冬草).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은 생전 자신을 추운 겨울에도 잎과 줄기의 푸름을 지키는 덩굴풀 인동초에 비유하곤 했다. 그의 인생사는 파란만장한 형극의 세월을 이겨낸 뒤 대권 도전 4수 만에 제15대 대통령의 자리까지 오른 오뚝이 그 자체다.

대통령에 오르기 전까지 그는 언제나 소수파였다. 정치적으로는 야당, 지역적으로는 호남, 학력으로는 상고 출신이라는 한계가 따라다녔다. 다섯 차례의 죽을 고비, 6년간의 감옥살이, 10년간의 가택 연금, 정계 은퇴와 번복이 있었다. 그는 짓밟혀도 다시 일어서는 들풀처럼 질긴 생명력을 유지했다.

김 전 대통령은 전남 신안군 하의도에서 소작농 김운식씨와 장수금씨의 둘째로 태어났다. 호적상으로는 1925년 12월3일, 실제로는 1924년 1월6일생이다. 아홉 살 때 목포로 이사해 보통학교를 마친 뒤 목포상고에 수석합격했다. 해방 후 목포상선 회사관리인이 된 그는 목포일보를 경영하는 등 청년사업가로 성장했다. 한때 건국준비위원회(건준)에 참여했다가 좌익 계열이 주도권을 잡자 탈퇴했다. 그러나 이 경력은 이후 반평생 그를 따라다닌 '색깔론'의 계기가 됐다.

김 전 대통령은 삼수 끝에 61년 5월 인제 보궐선거에서 승리해 국회의원이 됐다. 하지만 사흘 만에 5·16 군사 쿠데타가 발발해 국회가 해산됐다. 그는 의사당 문턱도 밟지 못하고 의원 직을 박탈당했다. 63년 6대 총선에서 목포로 지역구를 옮겨 당선된 그는 이후 중견 정치인으로 성장한다.

68년 5월은 평생의 라이벌이자 정치적 동지이기도 했던 김영삼(YS) 전 대통령과의 질긴 인연이 시작된 시점이다. 그는 그해 민주당 원내총무 경선에 출마해 YS와 첫 번째 대결을 벌였으나 패했다. 이어 70년 대선 후보 지명전에서 두 번째 대결이 이뤄졌다. 당시 '40대 기수론'의 깃발을 올린 김영삼 이철승씨와 맞붙어 2차 투표 끝에 458대 421표로 YS를 누르는 대역전극을 펼쳤다. 71년 4월 7대 대선에 출마, 박정희 전 대통령과 겨뤘다. 그는 비록 패했으나 46%의 득표율로, 불과 94만표의 차이밖에 나지 않는 선전을 했다.

72년 10월 유신이 선포된 이후부터는 형극의 연속이었다. 73년 일본 도쿄에서 발생한 '김대중 납치사건'을 비롯해 그는 투옥과 망명, 가택연금을 되풀이했다. 또 71년 말에는 승용차가 의문의 대형 트럭과 충돌해 죽을 고비를 간신히 넘겼으나 다리를 다쳐 이후 지팡이에 의지하게 됐다. 유신 치하인 74년에는 명동성당에서 '3·1 구국선언'을 주도했다가 3년간 복역한 뒤 가택연금을 당했다. 10·26 사건 후 잠시 '서울의 봄'으로 정치 해방기를 맞았으나 5·17 군사쿠데타를 주도한 신군부에 의해 내란음모죄 혐의로 군사재판에서 사형 선고를 받았다.

82년 가까스로 죽음의 그림자를 피한 뒤 미국으로 망명한 김 전 대통령은 85년 2·12 총선을 앞두고 전격 귀국했으나 김포공항에서 바로 연행돼 또다시 가택연금에 들어갔다.

87년 5월 사면 복권된 김 전 대통령은 13대 대선을 앞두고 김영삼 당시 통일민주당 총재와의 야권 후보 단일화에 실패, 평민당을 창당하고 두 번째 대권에 도전했다. 그러나 노태우·김영삼 후보에 이어 3위에 그쳤고, 단일화를 못해 정권 교체에 실패했다는 비난을 받아야 했다. 그에게 지역 감정의 수혜자냐, 피해자냐는 논란이 뒤따른 것도 이때부터다.

92년 세 번째 대권 도전 실패는 김 전 대통령에게 최악의 시련이었다. 그는 선거 다음날 "오늘로서 평범한 시민으로 돌아가겠다"는 말을 남기고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2년 후 지방승리를 계기로 정계 복귀를 선언한 그는 97년 12월18일 마침내 대선에서 승리했다.

김 전 대통령은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책으로 영국 역사가 토인비가 쓴 '역사의 연구'를 꼽았다. 역사를 '도전과 응전'으로 보는 관점을 갖게 한 책이라는 것이다. 그의 일생은 말 그대로 도전과 응전이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
신은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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