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스포츠] ‘양신’ 양준혁이 KBS ‘해피 선데이-남자의 자격'(남격) 고정 멤버로 나선다.
KBS는 14일 “양준혁을 새 멤버로 영입하기로 했다”며 “구체적인 합류 시기는 아직 결정이 안됐다. 기존에 잡혀 있던 방송 스케줄과 양준혁씨의 스케줄을 조율 중”이라고 밝혔다. 양준혁도 이날 트위터에 “야구를 좀 더 알리고 홍보한다는 마음으로 어렵게 결정을 하고 나가게 됐다”며 ‘남격’ 제7의 멤버가 된 소감을 전했다.
△야구 홍보는 구색 맞추기?=양준혁은 “예능인이 되려고 출연을 결정한 것은 아니다. 예능인이 아닌 야구인으로 새로운 프로그램의 재미를 이끌어내겠다”라며 시종일관 연예인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그의 말은 전혀 앞뒤가 맞지 않는다. ‘해피 선데이’는 KBS의 간판 예능 프로그램이고 ‘남격’은 KBS 예능국이 제작한다. 시청률 20%를 넘나드는 예능 프로그램에 고정 출연하면서도 연예인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 자체가 코미디다. 대다수 시청자들이 그가 방송에 나와도 여전히 야구인으로 바라본 이유는 대부분 1회성 출연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양준혁은 ‘남격’ 고정 멤버다. 오히려 야구인에서 멀어지고 방송인에 가까워진 연예인 직업군이다. 애매모호하게 직업군을 표현할 바에는 차라리 프로 의식을 가지고 철저하게 방송인이 되는 편이 낫다.
야구를 좀 더 알리고 홍보한다는 포부도 석연찮다. 프로야구는 2010년 한 해 동안 600만명 가까운 관중을 동원할 정도로 명실상부한 한국 최고의 인기 프로 스포츠다. 올림픽과 월드컵, 축구 국가대항전 정도를 제외하면 흥행으로 국내에서 따라올 스포츠는 없다. 프로축구, 프로농구 모두 적어도 인기 측면에서는 프로야구 보다 못하다.
야구계 안팎에서는 한국에서 야구라는 종목으로 더 알리고 홍보할 부분은 최신 구장과 인프라 확보, 유소년 및 중고교 야구부 창설, 제10구단 창단 등 크게 세 가지를 꼽는다. 양준혁이 출연할 예정인 ‘남격’은 과연 이 세 가지 중 무엇에 충족될 수 있을까. 차라리 지난해 말 폐지된 ‘천하무적 야구단’이 순수한 동기로는 더욱 적절했을 법 하다.
△해설 연마는 이상무?=앞서 열거한 이유는 그나마 해명이 가능하다. 애매모호하게 야구인, 방송인, 연예인으로 나누지 않고 프로 의식을 가진 방송인이 되겠다고 하면 제2의 인생을 찾겠다는 그의 선택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
문제는 양준혁의 현재 위치다. 그는 올해 SBS와 SBS ESPN을 통해 2011 프로야구 해설가로 나선다. ‘양신’으로 불릴 정도로 야구에 있어 통달한 양준혁이지만 방송에서 야구 해설을 해본 적은 없다. 보통 선수가 해설가로 변신하면 야구 팬들의 기대치는 자연히 높아지기 마련이다. 한·미·일 야구 팬들 모두 마찬가지다. 그러나 선수 출신 해설가에게 해박한 지식은 물론 수려한 말솜씨까지 바라는 것이 욕심이다.
양준혁은 1월 SBS와 계약 했다. 한 번도 해보지 않은 해설 실력이 불과 2개월 만에 일취월장 하기는 쉽지 않다. 짙은 사투리를 고치기에도 빠듯한 시간이다. 선수 출신들은 본인이 직접 겪은 야구 내적인 움직임을 설명하는 해설에 강하다. 반면 통계자료를 분석하고 설명하는 해설에는 그리 능통하지 못하다.
최근 야구 팬들의 수준은 전문가 못지 않게 매우 높다. 세이버 매트릭스(Sabermatrics·통계자료로 야구를 이해하고 분석하는 것)가 하나의 경향이 됐을 정도다. 허구연과 하일성 등 입심 좋기로 소문난 해설가 두 명 조차도 시간에 쫓겨 한 번도 고정 출연하지 않은 예능 프로그램을 소화하면서도 양준혁이 멋진 해설을 들려줄 수 있을지 미지수다.
방송 환경도 그리 녹록치 않다. 양준혁은 현재 SBS와 해설가로 계약된 상태다. 그러면서 ‘남격’과 고정 출연을 약속했다. 사전에 양해를 구했다고 치더라도 SBS 입장에서는 민감한 문제다. 자칫 야구 중계와 촬영 일정이 겹칠 경우 애매한 처지로 몰릴 수 있다. 같은 방송사 스포츠국과 예능국의 거리감도 상당한 편인데 하물며 다른 방송사 스포츠국과 예능국 사이의 의사소통이 원활하겠는가. 현재 지상파 3사에서 활동하는 해설가 중 누구도 예능 프로그램 고정 출연자가 없다는 것도 또 하나의 부담거리다. 자칫 해설가 프로 의식이 결여됐다는 선입견에 갇힐 수 있기 때문이다.
△‘양신'에게 바라는 것=야구 팬들이 양준혁에게 원하는 것은 그리 크지 않다. 무려 18년 동안 선수로 활약하며 개인 통산 2000안타를 비롯, 도루를 제외한 공격 9개 전 부문에서 최다 기록을 보유한 불세출의 슈퍼스타가 그라운드 밖에서 비록 신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안녕하길 바란다. 아울러 야구로 받은 사랑을 야구로 돌려주길 염원한다.
그는 트위터에서 삼성을 집요하게 비판하는 한 네티즌에게 “삼성은 내가 몸 담은 곳”이라며 “그렇게 말하지 말라”고 일침을 가한 적이 있다. 맞다. 양준혁이 푸른 피가 흐른다고 말했을 정도로 삼성은 그에게 전부, 그 자체다. 하지만 이제 그는 해설가이자, 방송인이다. 시청자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공공재인 전파에 나오는 인물에게 중립성을 요구한다. 삼성에 대해 중도적인 입장을 견지해야 하고, 김용철 변호사가 쓴 책 한 권 정도는 읽을 수 있는 여유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양준혁의 행보는 너무 빠르고 넓다. 코치 연수 내지는 유소년 야구에 올인 할 것만 같았던 은퇴 직후 분위기는 온데 간데 없이 사라지고 갑자기 해설가가 됐고, 순식간에 ‘남격’으로 예능 프로그램에 데뷔한다. 야구계도 미처 예상하지 못한 광폭 행보다. 그라운드에서는 무사 만루에서 병살타를 치더라도 박수를 쳐주는 팬들이 있지만 방송은 냉정하다. 말실수 하나로 구설수에 오르면 해설가에서 하차할 수 있고, ‘남격’에서 별다른 존재감을 나타내지 못하면 시청자 게시판에 하차를 요구하는 게시물이 빗발칠 수 있다. 야구계 선후배들이 쓴소리를 내뱉을 수도 있다.
혹시 이경규가 방송 전면에서 이끌어준 강호동을 롤 모델로 삼았다면 더욱 위험하다. 강호동은 1회성 단발 출연부터 시작해 뼈를 깎는 노력으로 일약 국민MC 유재석과 자웅을 겨루는 현재 위치에 왔다. 오히려 스포츠 선수 출신 방송인은 실패 사례가 많다. 방송사가 얼굴 마담 식으로 신설 프로그램에 이용하기만 하고 냉정하게 내친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비연예인의 연예인 전업은 방송 출연을 후회하는 순간 곧바로 은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그만큼 낯설고 어려워 돌발변수가 많다는 뜻이다.
미국과 일본, 한국 프로야구에서 신이라는 별명을 가진 선수는 양준혁이 유일하다. 한국 특유의 예찬 문화가 녹아든 탓도 있지만 그는 국내 프로야구사에서 실로 위대한 선수다. 과연 신의 선택이 어떤 결과를 낳을까. 국민일보 쿠키뉴스 조현우 기자 can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