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정치] 서울시 상암동 일대에서 구두수선을 하고 있는 김병록(53) 씨가 4·11 총선을 앞두고 새누리당 비례대표 후보자로 거론되면서 국민들의 궁금증이 커지고 있다. 특히 김 씨의 단골 고객들은 신기하기까지 하다. 매일 아침이면 한 손에 구두걸이를 들고 사무실에 들러 수선할 구두를 수거해 가던 구두방 사장이기에 그리고 학력을 비롯해 딱히 내세울 것 없는 평범한 구두수선사이기에 더 그렇다. 정말 특별한 점이 없는 사람일까? 이른바 스펙이 안 되는 소시민에게는 쉽게 일어날 수 없는 일을 ‘현실’로 만들고 있는 김병록 씨를 만나 그의 살아온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어느 날 구두방 사장에게 일어난 일
김병록 씨는 매일 새벽 4시에 잠자리를 털고 일어난다. 교회 또는 집에서 새벽 기도를 하는 습관은 몸에 밴지 이미 오래다. 기도를 마치면 간단한 아침 식사 후 늦어도 오전 8시까지 한 건물 1층에 자리한 5평 남짓 되는 구두방으로 출근을 한다. 구두수선사로서 그의 주요 일과는 사무실과 아파트 단지를 돌며 손질이 필요한 구두를 모으는 것인데, 일손이 부족할 땐 구두방 직원들을 도와 직접 구두를 닦거나 수선을 한다. 그의 일상은 쉼 없는 성실 그 자체였다. 그런 그에게 최근 예상치 못했던 일이 생겼다.
“지난 1월 어느 교수 한 분이 제 구두방을 찾았어요. 당시엔 지난해 출간한 (저의) 책을 보고 찾아 온 사람인 줄만 알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새누리당 (비대위 인재영입분과) 조동성 위원장님이었더라고요.”
김 씨는 이때까지도 자신이 비례대표 후보자로 거론되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채지 못했다. 2월 둘째 주쯤 자신의 이름이 올려진 신문 기사를 보고서야 알았다고 한다.
“처음에는 ‘내가 무슨 정치냐’ 했어요. 그런데 생각해보니 ‘수십 년간 서민들의 어려운 사정을 보아온 만큼 비례대표 후보가 되어 (서민들에게) 용기를 주는 것도 좋겠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김 씨가 인재영입분과 현장 워크숍을 통해 제안했던 ‘현장 중심의 감동인물론’은 새누리당 인물영입의 기준이 되기도 했다. 제안의 핵심은 정치인이 가져야 할 ‘국민을 위한 주인의식’이다.
봉사를 경영하는 남자
열한 살부터 구두 닦는 일을 해야 할 만큼 평탄치 않은 가정환경에서 자란 김병록 씨는 어린시절에는 가출 등 방황을 많이 했다. 하지만 그 쓰라린 경험들이 오히려 ‘사업’의 밑천이 됐다. 경제적 이익을 내는 사업이 아니라 남을 돕기 위한 사업을 구상하게 됐다.
“떠돌이 생활을 하면서 만났던 저보다 어려운 사람들을 보면서 도움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 작은 생각이 씨앗이 되어 지금은 봉사가 저의 본업이 되었습니다.”
봉사도 하나의 기업이라고 말하는 김 씨는 기업의 대표답게 사업 확장에도 관심이 많다. 돈을 비롯해 물질적으로 도와주는 곳은 협력사이고, 몸으로 돕는 곳은 계열사이다. 생계 수단이 되는 구두수선일은 부업이란다.
“원래는 구두수선사가 본업이었지만 지금은 이웃을 돕는 것이 (저의) 가장 중요한 일이 되었어요. 비례대표 후보가 되고 안 되고는 저에게 큰 변화를 주지 않을 겁니다. 다만 그동안은 장애인시설이나 단체 등 일부 사람들에게만 내밀었던 손길을 (비례대표가 되면) 보다 많은 국민들에게 내밀 수 있는 기회를 얻을 것이라 생각하고요.”
말하자면 김병록 씨에게 비례대표 의원이 된다는 것은 계열사를 한층 늘리는 사업 확장의 의미다.
행복한 욕심쟁이 봉사자
새누리당 비례대표 후보로 거론돼 세상의 주목을 받으면서 김 씨에게는 한 가지 걱정이 생겼다. 봉사와 섬김이 전부인 자신을 정치적 욕심이 있는 사람으로 대중이 오해할지 모른다는 우려다.
“남에게 힘이 된다는 것은 자신의 마음을 씻는 일이에요. 많은 사람들이 이 행복한 일에 동참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저에게는 3명의 자식이 있는데 어렸을 때부터 봉사활동에 함께 데려갔어요. 물려줄 물질적 유산은 없지만 남을 돕는 자세를 물려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헌 구두 수천 켤레를 모아 새 것처럼 만들어 어려운 이들에게 나누어 주었고, 배고픈 아이들에겐 급식비도 지원했다. 미용 학원을 다니면서 배운 기술로 노인들의 머리카락을 깎아 드리는 일도 여전히 해 오고 있다.
‘아무리 좋은 것도 과하면 독이 된다’는 말은 김 씨에게는 예외다. ‘봉사는 돕는 자와 도움을 받는 자 모두가 행복해 지는 길’이라는 김 씨의 신념과 더불어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웃고 있다.
“정치, 행복을 나누는 통로로 만들고 싶다”
“서민의 한 사람으로서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어요. (제가 비례대표 후보가 된다면) ‘구두 수선하는 사람도 저렇게 될 수 있구나’ 하는 그런 거요.”
스스로를 ‘행복한 사람’이라 칭하며 “나 자신의 행복을 이웃과 공유하는 게 삶의 목표”라는 김병록 씨. “새누리당 비례대표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온다면 더 많은 사람과 행복을 나눌 수 있는 새로운 통로가 열릴 것 같다”고 말하는 그의 표정에서 희망을 품은 기대감을 볼 수 있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이은선 기자 ujuin25@kuki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