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방 “한약, 독성 간 손상 원인물질 중 1위”
한방 “손상된 간 치료…양약과 병용 시에도 간 손상 적어”
한약·식품재료 이중 유통구조도 문제
소비자 ‘불안’ 정부는 ‘뒷짐’
[쿠키 건강] 박아현(가명·43) 씨는 지난 7월, 퇴행성관절염 진단을 받고 서울 영등포구에 위치한 한의원에서 한약을 처방받았다. 한의사는 조제한 한약이 통증을 완화하고, 피를 맑게 하는 등의 효능이 있다며 꾸준히 챙겨먹을 것을 권했다. 그런데 한약을 복용한지 40일 후 박 씨의 몸에서 급성 간염 증상이 확인됐다. 현재 대학병원에 입원해 간 기능을 회복시키는 치료를 받고 있는 박 씨는 “한약 복용 후 오히려 기운이 없어지고 피부와 눈이 누런색을 띠는 황달증상이 나타났다”며 “이 증상은 분명 한약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해당 한의원 측은 “처방한 한약에는 문제될 성분이 없다”고 일축했다.
지난해 10월, 경기도 용인에 있는 한의원에서 지어 준 다이어트 한약을 복용한 김지은(가명·29) 씨도 박 씨와 비슷한 경험을 했다. 김 씨는 “한약을 복용한지 2주 정도 지나자 소변 색이 진해지고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이 버거울 정도로 힘이 빠져 일상생활이 힘들었다”고 하소연했다. 김 씨 또한 급성 간염 진단을 받고 입원 치료를 받았는데, 당시 간 기능 수치는 1200(IU/L)을 넘어섰다. 이는 정상인의 40배 수준이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최근 3년 간 한방서비스와 관련된 상담은 무려 40%가량 증가해 지난해에는 1,377건을 기록했다. 이 가운데 한약 관련 상담도 지난 2009년 359건, 2010년 393건, 2011년 419건으로 꾸준한 증가세를 보였다. 부작용 관련 상담에서는 피부 가려움증과 위장장애, 구토 등을 포함한 여러 증상 가운데 간염을 호소하는 경우가 57건으로 가장 많았다. 강남성심병원 소화기내과 박상훈 교수는 “간 기능이 정상적인 사람도 한약을 먹는 동안 한 달에 한 번 정도 간 기능 검사를 받아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더불어 박 교수를 비롯한 양방 전문의들은 ‘한약 복용이 간에 무리를 주게 되면 독성 간염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대한의사협회 한방특별대책위원회 조정훈 위원은 “지난 2006년 식약청이 발표한 ‘독성 간 손상’ 연구가 한약으로 인한 간 손상을 보여 주는 근거 자료”라고 주장한다. 해당 연구·분석 결과를 보면 전국 17개 대학병원을 통해 수집된 간 손상 사례 314건 가운데 한의사가 처방한 한약이 원인물질로 추정되는 경우가 82건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이에 대해 한방 의료진들은 ‘유언비어에 불과하다’며 강하게 반박한다. 강동경희대학교병원 한방내과 고창남 교수는 “한약은 ‘간을 손상시키는 것’이 아닌 ‘손상된 간을 치료한다’는 개념을 갖고 있으며, 임상연구 결과 역시 ‘한약이 간 기능에 좋다’는 것을 뒷받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고 교수가 발표한 ‘한약과 양약의 병용 투여 중 간효소치 이상에 대한 후향적 연구’에 따르면 한약과 양약을 함께 복용한 환자 892명의 간 기능 검사 내용을 분석한 결과 독성 간 손상으로 이어진 경우는 전체의 0.56%인 5건으로 낮은 유병률을 보였다.
대한한의사협회 장동민 대변인은 “의약품용 한약재 547종 가운데 인삼과 홍삼, 산수유 등을 포함한 189개 품목이 식품으로도 유통되는 우리나라 한약재의 이중적 유통구조가 잘못된 편견을 만들었다”고 비판한다. 식품으로 소비되어야할 식품용 한약재를 약처럼 복용하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부작용이 빈번하게 발생했고, 이 같은 사례들은 한의사가 처방한 한약에 대한 불신으로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서로 엇갈린 주장만 내세우는 한방과 양방 간 첨예한 대치 속에 결국 소비자의 혼란만 가중되고 있는 형국이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남은경 사회정책팀장은 “현재 한방과 양방 간 논란은 합리적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아닌 감정적 대립양상으로 흐르고 있다”며 “정부가 향후 방향을 논의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는 논란이 확산되는 것을 경계하며 여전히 뒷짐을 지고 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한방과 양방의 대립으로 인한 문제를 인식하고 있지만 정부가 나서는 것은 곤란하다”며 선을 그었다. 문제 해결에 있어 소극적 자세를 갖는 건 식약청도 다르지 않다. 한의사가 한약 처방 시 사용하는 한약재는 ‘의약품’으로, 농산물 등으로 유통되는 경우에는 ‘식품’으로 나눠 관리할 뿐 공용 품목에 대한 별도의 관리체계는 사실상 갖춰지지 않고 있다.
현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여러 대안을 검증해 볼 수 있는 공식적 논의의 장이 절실하다. 양·한방이 제시하고 있는 한약재 독성 연구, 한약 조제내역 공개, 식약 공용 품목 축소 등은 모두 논의 대상에 포함된다. 과연 국민건강을 위해 보다 적절한 대안은 무엇인지 또 누가 이 판단을 검증해 줄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때이다.
쿠키건강TV ‘건강레이더 THIS’ 다시보기
국민일보 쿠키뉴스 이은선 기자 ujuin25@kuki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