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사회] 간호사들이 의사들의 술자리에 불려나가 술 접대를 강요당하거나 의사나 환자의 성희롱에도 노출되는 등 업무 외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 7월 충북의 한 종합병원에 근무하는 간호사 A씨는 담당의사의 전화를 받고 술자리에 불려나갔다. 쉬는 날이었지만 거부할 수 없었다. 술자리엔 119구급대원들이 앉아 있었다. 응급 상황 발생시 119구급대원들로부터 환자를 이송받기 위해 의사가 마련한 접대 자리였던 것이다. A씨는 “다음 날 출근해 알아보니 다른 동료 간호사들도 대부분 비슷한 경험을 갖고 있었다”고 말했다.
병원 회식자리에서 험한 꼴을 당하는 간호사들도 있다. 서울 구로구 한 개인병원에 근무하는 간호사 B씨는 지난달 회식자리에서 병원장에게 성추행을 당했다. B씨는 “병원장이 몸을 수차례 더듬었고 ‘사랑한다’며 볼에 뽀뽀까지 했다”고 털어놨다. 그러나 간호사들은 성추행을 당해도 보복성 인사나 해고 우려 때문에 문제 삼기를 꺼리고 있다.
환자들의 성추행도 스트레스다. 간호사들은 “환자들이 간호사의 손을 어루만지거나 음담패설을 하는 것은 예삿일”이라고 입을 모은다. 서울의 한 개인병원 간호사는 “주사를 놔달라면서 바지를 내리고 엉덩이를 내미는 환자도 봤다”고 말했다.
보건의료노조 관계자는 “병원 자체적으로 성 문제를 다루는 기구를 설치해 가해자를 징계하는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간호사들 사이의 엄격한 위계 때문에 겪는 고충도 만만치 않다. 한 간호사는 “간호사들 사이에선 ‘태우다’라는 은어가 있는데 ‘괴롭히고 못살게 군다’는 의미로 군대에서 쓰는 ‘갈구다’와 비슷하다”며 “우리는 ‘백의의 천사’가 아니라 ‘백의의 전사’에 가깝다”고 말했다.
‘태우기’는 주로 신입 간호사들이 많이 겪는다. 전직 간호사였던 임설희(26·여)씨는 “선배 간호사와의 대면식에서 무릎을 꿇은 채 술을 마시기도 했다”며 “여자들만 있는 집단이 이렇게 무서울 줄 몰랐다”고 말했다.
지난 3월 보건의료노조 조사에 따르면 간호사 31.9%가 의사로부터 폭언 및 성희롱을 당했고, 환자에게 성희롱을 당했다고 응답한 간호사도 12%였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이용상 기자 sotong20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