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사회] “하루만 시간을 주세요.”
큰아들이 누워 있는 중환자실 앞에서 의사가 “인체조직을 기증하겠느냐”고 물었을 때 한승희(59·사진·경남 하동)씨는 간신히 이 한마디를 했다. “아드님이 워낙 건강해서 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어요.” 의사의 권유가 비수 같았다.
서울에서 취업을 준비하던 큰아들이 119에 실려 갔다는 전화를 받은 건 1년 전인 지난해 2월 20일 새벽이었다. 12년 전 갑자기 세상을 뜬 남편의 기일이었다. 전날 밤 11시쯤 잠자리에 든 아들은 뇌혈관이 터져 그 길로 수술대에 올랐다. 5일 뒤 뇌사판정을 받았을 때 아들의 나이는 서른 한 살이었다.
처음에는 인체기증 같은 건 할 마음이 없었다. 남을 살리는 일이라지만 아이 몸에 또 칼을 대는 게 싫었다. 생각을 바꾼 건 8살 아래 둘째아들 때문이었다. 방학 때면 대만으로, 태국으로 봉사활동을 떠났던 형의 꿈 얘기를 했다.
“둘째 아이가 ‘형이 세상에 뭐라도 남겼으면 좋겠다’고 그래요. 젊어서 떠났으니 형이 뭘 남길 수 있었겠느냐고. 나이차가 많아서 둘째에게는 아버지 같은 형이었거든요. 어쩌면 큰애가 이렇게라도 남을 살리는 게 하나님 뜻인지도 모르겠다 싶더군요. 그래서 (인체조직) 기증을 결심했어요.”
2012년 2월 25일 인근 병원으로 옮겨진 아들은 장기와 피부, 뼈를 사람들에게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1년 뒤인 지난달 말 한씨는 둘째 아이의 손을 잡고 서울 용산동 한국인체조직기증지원본부(KOST) 사무실을 찾아왔다. “기증사업을 알리는 데 도움을 주고 싶다”는 뜻을 전하기 위해서였다.
기증본부 관계자는 25일 “유가족이 직접 찾아와 돕겠다고 나선 건 처음 있는 일”이라며 “앞으로 인체조직 기증이 무엇인지, 왜 필요한지를 알리고 체험담을 전하는 홍보대사의 역할을 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아들의 몸은 지금 누구에게 가 있을까. 한씨는 “100명쯤 살렸다고 하는데 누구인지는 전혀 모른다”며 “그저 착한 사람으로 살아가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홍보대사를 자청한 이유에 대해서는 이렇게 답했다. “제 아들 이름이 안병요예요. 세상이 그 아이의 이름을 기억했으면 좋겠어요.”
국민일보 쿠키뉴스 이영미 기자 ym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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