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확인 의혹에 덜컥 ‘내사·수사착수’ 발표=경찰은 지난 18일 이 사건에 대한 내사를 시작한다고 밝혔다. 경찰이 내사에 착수하면서 언론에 공개하는 경우는 이례적이다. 경찰은 당시 “신속하게 국민적 의혹을 풀겠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의혹의 핵심은 ‘성접대 여부’였다. 발표를 접한 국민들은 성접대 의혹이 사실인 것처럼 받아들였다. 의혹에 휘말렸던 김 전 차관은 “모든 것은 사실이 아니지만 소임을 수행키 어렵다는 사실을 통감한다”며 물러났다.
경찰은 내사 착수 3일 만에 다시 ‘본격 수사’로 전환했다. 수사 전환은 고위공직자에게 성접대를 했다는 여성의 진술이 결정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수사는 범죄혐의가 있을 때 하는 게 수사기관의 기본 상식이다. 단순 의혹만으로 수사에 착수할 수는 없다. 그러나 현재 고위층 성접대가 있었는지, 건설업자가 얼마나 이익을 얻었는지는 오리무중이다. 따라서 경찰은 당초 내사나 수사착수 대신 “의혹만으로 수사할 수 없다”고 발표했어야 수사기관으로서 옳은 처신이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성접대 동영상’에 좌충우돌한 수사=성접대 의혹의 핵심 증거는 유력인사가 등장한다던 동영상이다. 동영상을 경찰에 건넨 여성사업가 A씨는 “이 동영상에 김 전 차관이 등장한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 영상은 화질이 나빠 등장인물의 신원 확인이 어려운 상태였다. 경찰도 동영상의 상태를 알고 있었다.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분석을 맡겼지만 ‘해상도가 낮아 (김 전 차관인지) 동일성 판단은 곤란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사건의 핵심으로 판단했던 동영상이 증거효력을 잃자 경찰은 다른 성접대 동영상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 고위층 성접대 로비 의혹에서 성접대 동영상이 없다면 수사의 수레바퀴 중 하나가 빠져버리기 때문이다.
경찰 관계자는 “윤씨의 불법행위를 규명하는 모든 증거를 찾는 과정에 또 다른 성접대 동영상을 찾는 것도 포함돼 있다”고 말했다.
◇계좌추적이나 압수수색 없이 비리수사?=경찰은 수사의 핵심이 성접대가 아니라 윤씨의 불법 비리 여부라고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이 부분도 수사에 진척이 더뎌 보인다. 경찰은 내사 착수 후 열흘이 지났지만 아직까지 윤씨의 돈거래를 살펴보기 위한 계좌추적이나 압수수색 등을 밟지 못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기본적인 ABC대로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비리수사를 위해선 장기간 물밑에서 증거를 확보해도 수사가 성공할 확률이 낮은데 압수절차 없이 수사가 되겠느냐는 지적이 나온다.
◇검찰, ‘경찰의 불순한 의도’ 부글부글=검찰은 경찰의 수사 의도를 의심하고 있다. 경찰이 성접대에 검찰 간부가 연루됐다는 ‘호재성 첩보’를 입수하고는 너무 섣불리 공개수사로 전환한 게 아니냐는 것이다. 정부 출범 초기 검·경 수사권 조정 등 현안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 이번 사건을 활용하려 했다는 시각도 있다. 한 검찰 간부는 “경찰이 물밑에서 확인되지 않은 풍문을 흘리면서 검찰 흠집내기를 한 것 아니냐”며 “지금 수사로 봐서는 결국 ‘사건 실체가 없다’는 쪽으로 결론 날 가능성도 크다”고 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이용상 기자 sotong20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