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외교관은 야동으로 포섭” CIA 요원 폭로

“북 외교관은 야동으로 포섭” CIA 요원 폭로

기사승인 2013-04-04 19:53:00


첩보의 기술/헨리 A. 크럼프턴/플래닛미디어

[쿠키 문화] “가서 놈들을 해치우게.”

미국이 9·11테러 사건에 대한 보복으로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개시하기 한 달 전인 2001년 어느 날. 워싱턴 DC 외곽 캠프 데이비드 별장에서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조지 테닛 중앙정보국(CIA) 국장과 함께 나타난 저자에게 투박하지만 분명한 어조로 이렇게 지시했다. 테러 배후 알카에다를 상대로 한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CIA가 국방부를 제치고 주도권을 쥐게 되는 순간이다.

CIA는 9·11테러 직전 알카에다의 미국 내 테러 계획을 누차 보고했다. 백악관은 번번이 허위 정보에 놀아났다고 판단해 보고를 묵살했고 테러는 터지고야 말았다.

냉전 시기 명성을 떨쳤던 CIA는 1989년 ‘철의 장막’이 붕괴된 이후 위상이 추락했다. 미 의회는 정보 예산을 대폭 삭감했다. CIA 내부에서는 회의를 느껴 조직을 떠나는 이들도 많았다. 하지만 9·11테러 이후 CIA는 실지를 회복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처음엔 ‘반(反)CIA 노선’을 취하며
CIA의 심문 기법을 폭로하기도 했지만 이내 CIA에 의존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CIA는 2011년 빈 라덴 사살 작전 과정에서 핵심 정보를 제공했다.

‘첩보의 기술’은 세계 최강 미국의 정보기관인 CIA의 활약상을 다룬다. 그것도 그 내부에서 24년간 정보 공작의 핵심 업무를 담당한 베테랑 첩보원의 입을 빌려 한줌 정보에 목숨 거는 숨 막히는 정보전의 세계를 소개한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저자는 아프가니스탄 전쟁 당시 현장을 진두지휘했던 핵심 요원이었다. 그래서 책은 훈련 과정, 정보원 포섭 및 정보수집 활동 등의 기본적 첩보 활동뿐 아니라 타국의 정치 체제에까지 CIA가 관여하는 과정 등 비교적 상층부에서 행해지는 공작정치의 이면까지 보여준다.


일례로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수행하면서 아프가니스탄 내 부족 동맹을 포섭하고, 적 은신처 부근에서 이슬람교도 요원을 채용하는 활약상 등이 소개된다. 아울러 전쟁 종식 후 새 대통령으로 누가 적합한지를 현지에서 조사하고, 현 하미드 카르자이 대통령을 당시 점찍는 활동 등은 미국의 대외 정책이 얼마나 공작정치에 토대를 두고 있는지 짐작케 한다. 저자는 백악관 상황실에서 테닛 CIA 국장,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 콜린 파월 국무장관, 콘돌리자 라이스 국가안보보좌관 등 핵심 파워들과 자리를 함께 하기도 해 미국 의사결정과정의 윤곽을 보여주기도 한다.

아무래도 흥미 있는 대목은 영화에서나 봄 직한 은밀한 정보수집 활동이다. CIA 재직 기간 중 10여년을 미국을 위해 일할 첩보원을 포섭하는 일을 한 저자는 이 대목은 비교적 상세하게 풀어놓는다. 능통하게 구사하는 외국어 하나 없었지만 미국 주재 각국 외교관 등 정보원 포섭 업무에는 발군의 능력을 발휘했던 그가 말하는 포섭 이유는 다양하다.

“악의 없고 재미있는 사람으로 간주해 동료들이 그에게 비밀을 잘 털어놓는다.” “그는 말이 많은데다가 탐욕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이념, 복수심, 돈, 병든 아내에 대한 의료 지원 등 미끼로 던지는 수단도 가지가지다. 북한 외교관들에게는 개인적 용도든, 되팔기 위해서든 포르노 잡지와 야동이 가장 좋은 미끼였다고. 저자는 정보의 핵심이야말로 ‘인간 첩보’라고 주장한다.

외국 지도자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 유명 호텔 직원을 협력자로 끌어들이는 것은 필수다. 그들로부터 투숙 예정 외국 지도자 명단을 건네받고 표적의 방에 음성신호를 감청할 수 있는 리모트 컨트롤기기를 바꿔치기한다. 이를 통해 ‘대박 정보’를 건지기도 한다. 하지만 저자가 털어놓는 정보는 여기까지다.

그래서 위키리크스 설립자인 줄리안 어샌지의 위키리크스식 민감한 폭로를 기대했다면 책은 심심할 수 있을 것이다. 조직에 가급적 피해를 입히지 않겠다는 그의 균형 감각은 이렇듯 다소 재미를 반감시키는 요인이 된다. 하지만 대사관에 도청기를 설치했으나 감청할 수 있는 인근 아파트를 구하지 못해 쩔쩔매거나, 어떤 수확물도 얻지 못하고 목숨을 걸고 도청 장치 회수에 나섰던 에피소드 등에서는 애환이 느껴진다.

교환근무 프로그램을 통해 연방수사국(FBI)에서 대테러활동을 수행한 그가 CIA와 FBI를 비교한 대목도 흥미롭다. FBI의 경우 수사관들이 지출할 수 있는 금액에 제한이 많지만, CIA 공작원의 경우 일상적으로 수천 달러의 현금을 갖고 다닌다. 잠재적 포섭자에게 향응을 제공하고, 정보원에게 보상금을 지급하고, 외국 공무원에게 뇌물을 먹이고 비행기를 전세 내는 등 돈을 뿌리고 다닌다. 미국 외교사에서 CIA 공작정치의 파워는 이처럼 자금 동원력과 무관하지 않은 것이다.



저자는 CIA 근무 20년이 되는 해 안식년을 갖고 국제학대학원에서 공부하는 기회를 얻었다. 그때 미국 대중과 정책 입안자들이 갖는 정보에 대해 냉소적 시각과 양면성을 느낀 게 베일에 싸인 CIA 공작 임무를 책으로 쓰게 결심하게 된 출발이다.

“전쟁의 본질이 계속 변화하는 한 정보의 역할은 점점 더 커질 것이며, 미국은 국가 차원에서 정보의 능력과 한계를 더 잘 파악할 필요가 있다.” 말하자면 이 책은 한 전직 베테랑 CIA 요원이 털어놓는 자신의 일에 대한 자긍심의 표현인 셈이다. 김홍래 옮김.

국민일보 쿠키뉴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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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기 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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