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쿡기자] ‘타협과 설득의 예술’인 정치에서 국회 상임위원장 사이의 맞고소전이 벌어질 조짐이 나오고 있습니다. 삼권 분립의 한 축인 입법부 상임위원회의 수장들이 행정부인 검찰에 수사를 해달라며 머리를 조아리는 행위 자체가 후진적 정치 관행입니다.
발단은 국회 정보위원회 서상기(새누리당·대구 북 을) 위원장입니다. 서 위원장은 국가정보원 대선 개입 의혹이 사실로 드러났지만 6월 국회에서 정보위 개최를 막고 있습니다. 국정원의 비행이 국민적 공분을 사고 있는데, 국정원장을 국회에 출석시켜 개선 대책을 듣는 일 자체를 미루고 있습니다.
서 위원장은 자신이 발의한 사이버테러방지법안 심사를 정보위 개최의 선결 조건으로 내걸고 있습니다. 이 법은 대선 댓글 개입이 문제가 된 국정원에 더 포괄적인 사이버 감시 권한을 선사하는 내용입니다. 정보위가 아예 열리지도 못하고 있는데 대해 민주당 정청래 정보위 간사는 “서 위원장의 셀프 보이콧”이라고 명명했습니다.
이런 서 위원장이 18일에는 같은 상임위원장급인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박영선(민주당·서울 구로 을) 위원장을 명예훼손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습니다. 박 위원장이 지난 16일 기자간담회에서 정보위 파행 사태와 관련 ‘남재준 국정원장과 서 위원장의 거래 의혹’을 제기했다는 것입니다. 서 위원장은 “모종의 거래가 있는 것처럼 허위사실을 유포해 내 명예를 크게 훼손했다”는 요지로 소장을 작성해 서울 남부지검에 고소장을 접수시켰습니다.
서 위원장은 6월 국회 정보위 파행에 대해서도 “정보위가 개최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민주당이 사이버테러방지법안 상정을 일방적으로 거부하고 검찰 조사가 진행 중인 국정원 사건 등만을 안건으로 요구하기 때문인데도 마치 내 책임인 것처럼 왜곡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박 위원장은 이에 맞대응 방침을 밝혔습니다. 박 위원장은 19일 오전 민주당 의원총회에 나와 “정보위원장의 역할은 국민 궁금증을 풀어주는 현안 질의를 하는 게 핵심”이라며 “서 위원장은 3개월간 정보위원장으로서 무슨 일을 했냐”며 “의원으로서 국가의 녹을 먹고 있고 상임위원장 판공비 등을 비롯, 1000만원 이상의 돈을 받는데 이를 내놔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박 위원장은 서 위원장에 대해 수사의뢰를 하는 방안도 검토하겠다고 했습니다. 명시적으로 맞고소를 언급하지 않았지만, 소취하가 없다면 물러서진 않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것입니다.
서 위원장 역시 19일 아침 국회 정론관 마이크 앞에 섰습니다. 정보위 문고리를 잡고 있단 비판엔 답변하지 않은 채 뜬금없이 “국정원과 검찰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 발언을 즉각 공개하라”고 촉구했습니다. 그는 “이 기회에 NLL 발언 논란에 마침표를 찍자”면서 “국정원은 스스로 전문을 공개하던지 아니면 국회 정보위원들에게 전문을 열람하도록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서 위원장 역시 야당과 마찬가지로 국정원 관련 국정조사도 요구했습니다. 단 원세훈 전 원장의 대선 개입 관련 부분 보다는 누가 야당에 국정원 자료를 유출했는지 쪽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그는 “국정원 자료 유출자는 반드시 색출해야 한다”며 “국가 최고 정보기관의 장이 누구와 직접 통화한 사실과 내용, 그리고 외부에 공개되지 않는 전직 대통령 발언 내용이 야당에게 제보된다는 것은 야당발 신종 국정원 정치공작”이라고 했습니다.
정치인 사이의 고소고발은 물론 있을 수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도 새누리당 비대위원장 시절이던 지난해 5월 부산저축은행 로비스트였던 박태규씨와 자신이 수차례 만났다고 발언한 박지원 당시 민주당 원내대표를 고소한바 있습니다. 무분별한 의혹 제기에 대해 억울함의 표시로 읽히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걸 알아야 합니다. 고소장이 접수되면 담당 검사와 수사진이 배정되고, 이들이 발언의 진위와 사실 관계를 추적하는 등 국가의 행정력이 투입됩니다. 세금이 들어간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럼에도 정작 실제 처벌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극히 드뭅니다. 화가 가라앉으면 소 취하 등 합의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지요. 수사해 놨는데 소 취하되면 검찰이 얼마나 허탈하겠습니까.
국회 상임위원장은 소관 행정 및 사법 기관을 총체적으로 감시하는 헌법 기관입니다. 오죽하면 3부 요인과 마찬가지로 전시 특별 비상 대피 계획도 세워져 있겠습니까. 해당 상임위원장께서는 국회관련 고소 고발이 몰리는 남부지검의 고충도 좀 혜량해 주시고, 무엇보다 국회 정보위를 열어 국정원 이야기 좀 듣게 해 주시길 바랍니다.
(사진=서상기 국회 정보위원장(왼쪽)이 지난 2월 북한의 3차 핵실험 당시 출석한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정보위 앞을 걸어가는 모습입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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