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문화] 전두환 전 대통령의 29만원,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박근혜 대통령 미국 국빈 방문 성추문, 남양유업 대리점 폭언사태에 이어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우경화 움직임까지.
시사와 허무를 버무린 개그콘서트의 ‘오성과 한음’ 코너가 선보인 주제들이다. 88만원 세대를 대표하는 트레이닝 복장에 하릴없이 야구공을 주고받으며 대화하는 푸른 김진철과 빨간 이혜석, 그리고 막판에 등장하는 땡땡이 곽범이 주인공이다. 한국에선 불모지나 다름없는 시사개그 장르에서 이처럼 ‘핫’한 아이템을 과감히 선보인 전례는 찾기 힘들다. 그것도 매우 심드렁하고 쿨한 방식으로 말이다.
개콘 오성과 한음은 23일 전두환 전 대통령의 29만원을 선보였다. 시점은 절묘했다. 국가에 내야할 1672억원을 외면한 채 전 재산이 29만원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전 전 대통령의 추징 시효 만료를 7일 남기고 방영됐다.
뒤늦게 골프백을 메고 무대에 등장한 곽범은 “여행가서 골프치고 소고기 먹자. 돈 많다”며 통장을 들이밀었다. 청년실업자로 추정되는 그가 던진 말은 “29만원 모았다”였다. 그는 이어 “이 돈이면 평생 호의호식할 수 있다”면서 “경호원 붙이고 떵떵거리며 살 수 있겠더라”라고 했다. 퇴장하면서는 “본인은 돈이 많은 사람입니다”라고 했다.
동네 백수인 이들 눈에는 아이돌도 대단치 않다. 이혜석이 “2PM 춤추는 거 봤냐”고 말을 건네자 김진철은 “그게 춤이냐, 흔드는 거지”라고 답한다. ‘응답하라 1997’ 세대의 추억이 깃든 H.O.T의 춤을 재현한 이들은 서로를 위로한다. “아직 몸이 기억하고 있네. 까치산 문희준. 화곡동 장우혁.”
오성과 한음은 지난달 19일엔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을 정조준했다. 곽범이 영어 공부를 하며 등장하자 이혜석은 “갑자기 영어 공부는 왜?”라고 물었고, 곽범은 “응. 공부 좀 해서 미국가려고”라고 답했다. 이어 “그래? 미국가서 뭐하려고?”라는 질문이 들어오자 곽범은 “대변인”이라고만 말했다. 그런데도 객석은 뒤집어 졌다.
지난 2일에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를 도마 위에 올렸다. 김진철과 이혜석이 캐치볼을 하다 끝말잇기를 시작했다. ‘아’가 제시어로 나오자 이혜석은 “아베”라고 했고, 김진철은 “아베? 할 말이 없다”고 말했다. 이때 곽범은 “아베 아베 아베 아베”라며 노래를 부르며 나타나 “오디션에 나가려고 노래 준비 중”이라고 했다. 김진철이 “그거 누구 노래인데?”라고 묻자 곽범은 “십센치. 아니다. 십팔센치인가?”라고 답했다.
남양유업 대리점주 욕설파문도 오성과 한음을 피해갈 수 없었다.
5월말 방영 분에서 이혜석은 “우리집 집값이 계속 떨어지네”라고 하자 김진철은 “남향이냐? 남향 좋은 거잖아”라고 물었다. 그러자 이혜석은 “뉴스도 안보냐? 요즘 남향(남양) 인기없대”라고 답했다. 이때 갑자기 욕을 하면서 등장한 곽범은 “취업 준비 중이야. 우유회사”라고 말했다. 상반기 한국사회를 강타한 갑을관계의 모태 남양유업 사태를 최종 정리한 것이다.(사진=방송화면 캡처)
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