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채윤의 뮤직에세이(6)] Adele ‘Make You Feel My Love’, 좌회전하기
“미국에서 운전을 할 때는 하나만 주의하면 돼. 비보호 좌회전.”
겁이 없는 편이다.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다고 생각한다. 하던 대로 하면 되겠지 싶어 운전대를 잡았다. 어디든 친절하게 안내하는 네비게이션이 자신감을 더해주었다. 시동을 걸고 기어를 바꾸고 악셀를 밟았다. 슬슬 차가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늘 그렇듯.
비보호 좌회전은 한국에도 있다. 운전경력 10년에 그게 염려되어 운전을 못할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막상 도로에 나가보니 좌회전 신호가 있음직한 구간에 아무리 기다려도 파란색 화살표가 나타나지 않았다. 뒤에 있던 차가 경적을 울렸다. 맞은편에서 차가 오는지 짧게 확인하고는 얼결에 좌회전을 해버렸다.
STOP 신호에서 잠시 멈춰 좌우를 확인하고 다시 주행하는 것도 한국과 달랐는데 그건 별로 어렵지 않았다. 그 외에는 평소대로만 하면 크게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번번이 좌회전을 앞두고는 바짝 긴장이 되었다. 문득 연애와 닮았다는 생각이 들더라.
기다릴 줄 알아야 하고 눈치를 잘 봐야 한다
좌회전 차선에 서면 신경 써야 하는 것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도로가 넓고 곧게 뻗어있고 차들이 많지 않아 한국보다 운전하기 편하다고 말 할 수 있을 것 같은 이 곳에 모든 장점을 한방에 날려버리는 비보호 좌회전. 일단 좌회전을 잘 하려면 기다릴 줄 알아야 했다. 안전해 질 때까지. 눈치도 잘 봐야 한다. 마주 오는 차의 속도나 거리, 직진 신호의 변화, 보행자의 유무. 눈치가 빠른 사람이 전적으로 유리하다.
적절한 순간이 오면 과감하게 실행해야 한다
사실 이 부분이 가장 어려웠다. 지금인데, 생각하는 순간 놓쳐버리고 만다. 눈 앞에서 좌우로 차들이 이동하기 시작한다. 다음 기회에. 이번에 못 하면 다음에 하면 되지. 그런데 뒤에 서있는 운전자는 급한 모양이다. 빵빵. 미안한 마음이 든다. 한가로운 여행자라 오늘은 그렇다 쳐도 나 역시 언젠가는 여유를 부릴 수 없는 순간이 올지도 모른다. 어차피 할 거라면 좀 더 과감해 질 필요가 있다. 나를 위해, 함께 기다리고 있는 그를 위해.
어렵다고 안 할 수도 없다, 근데 하다 보면 는다
좌회전이 어려워 어떤 경우는 그냥 직진을 하기도 했다. 그러면 친절한 네비게이션씨는 곧바로 경로를 재 탐색해서 알려준다. 좌회전 한번이면 되는 걸 직진을 해버리면 다음에는 두 번의 좌회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참 공평했다. 좌회전이 싫다고 직진과 우회전만 할 수도 없고. 한번이면 되는 좌회전을 두 번씩이나 해가며 훈련 아닌 훈련을 한 결과 열흘쯤 지나니 좌회전 차선에서 조금은 편안해진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무척 어렵고 하면 할수록 새롭지만 그래도 계속 하다 보면 조금 늘긴 하는 것 같았다.
좌회전 이렇게 하세요
현지인에게 들은 노하우를 전하자면, 일단 직진 신호에서 반대편 차가 오는지 확인하고 없으면 휙 하고 돌면 된다. 이건 차가 많지 않을 때 가능한 일. 직진 신호가 끝날 때까지 차가 꼬리를 물고 이어지면 노란 신호가 빨간 신호로 바뀌기 전 그 짧은 순간 맨 앞에 두 대가 좌회전을 하게 되어있다고 한다. 들으면 별로 어려운 것 같지 않은데 막상 해보면 어렵다. 그리고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는 무관하다. 실전이 중요하다.
복잡한 도로에서 가끔씩 등장하는 좌회전 신호등이 있다. 어찌나 반가운지. 그런 경우 좌회전이 수월하다. 조금도 어렵지 않다. 초조해 하며 기다릴 필요도,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된다. 적당한 때가 저절로 오고 달려 가는 것에도 주저함이 없다. 인연이다. 사랑이다. 우리 모두는 드물게 나타나는 파란색 화살표를 기다리며 오늘도 비보호 좌회전을 하기 위해 잔뜩 긴장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I know you haven't made your mind up yet
당신이 아직 마음의 결정을 하지 못했다는 거 알아요
But I would never do you wrong
걱정 마요, 내가 정말 잘할게요.
I've known it from the moment that we met
우리가 만난 그 순간부터 나는 알고 있었어요
No doubt in my mind where you belong
당신은 내 사람 이예요
(Adele ‘Make You Feel My Love’ 2008)
한채윤 / 배우 & 싱어송라이터 서강대학교 영미어문 졸업. 오랫동안 잘 안 팔리는 배우로 지내면서 넘쳐나는 시간 동안 기타도 배우고 피아노도, 노래도 배우다가 이렇게 하면 되지 않을까 해서 어느 날부터인가 곡을 쓰기 시작. 지난 3월 자작곡 미니앨범 '한채윤 첫번째_너무 흔한 이야기' 발매. 여러 편의 단편 영화와 작은 역할로 다수의 영화와 드라마에 출연. 대표작으로는 뮤지컬 '심야식당'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