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트맨의 실체'가 궁금해?
[친절한 쿡기자] 아침에 일어나서 컴퓨터를 켜고 인터넷을 시작하니 포털 사이트의 초록색 창 밑에 의미를 알 수 없는 단어들이 둥둥 떠다닙니다. '슈퍼맨도 못 피하는 상황' '제주 렌즈구름' '배트맨의 실체' '프로그램 몰입도 1위' '유혜리 다이어트 전후'.
인터넷 점유율 70%가 넘는다는 포털 사이트의 노른자위 자리에 차지하고 있는 이 문장들은 과연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는 걸까요?
몹시 궁금증이 일어 클릭해보지만 역시나 딱히 유용한 읽을거리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알고 보면 별 것 아닌 내용인데, 이 문장들을 클릭하고 있을 때면 심지어 '내가 지금 뭐하는 짓인가'하는 생각까지 들기도 합니다.
급한 일을 하다가 잠깐 검색할 거리가 생겨서 포털 창을 연 것뿐인데 어느새 클릭에 클릭을 거듭하다 보면 처음 검색할 게 어떤 것이었는지 생각도 안 나고요. 시계를 보고 아차 싶어 창을 닫았다가도 다음번 포털 사이트에 접속했을 때 또다시 검색어 순위를 기웃거리며 클릭 →실소 → 창닫기를 반복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건 비단 제 경우만은 아니겠지요?
스마트폰이 대중화되면서 이 현상은 더욱 심해졌습니다. 굳이 컴퓨터를 켜지 않아도 언제든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으니 말이에요. 화장실 변기에 앉아있는 시간이나 출퇴근 버스 안에서, 어색한 사이의 사람들과 마주 앉은 자리에서 우리는 위안이라도 갈구하듯 그 하찮은 이야기들을 열어보게 됩니다. 며칠 아니 몇 달을 안 봐도 그다지 궁금하지 않고, 삶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 것도 아닌, 심지어 술자리에서 우스개로 꺼내기에도 민망한 이 이야기들은 언제부터 우리 곁에 이렇게 가까이 다가오게 된 걸까요?
거의 태초의 인터넷 이슈들
고백하건대 저는 그 시작에 닿아있는 사람입니다. 2004~2005년 무렵, 인터넷 뉴스가 한참 붐이 일 때가 있었어요. 그때 포털 사이트 구조도는 네이버와 다음이 비등한 점유율을 유지하고 있었구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인터넷 이야기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저는 그때 디시인사이드(www.dcinside.com 이하 디시) 뉴스팀에서 일하고 있었어요. 국내 최대 커뮤니티 사이트라고 자랑스레 말할 수 있는 곳이었지요. 매일 새로운 패러디와 이야기꺼리들이 쏟아져 나왔어요. 저는 디시에서 일어난 재미있는 이야기들, 가령 어떤 패러디물이나 유행어 등을 소재로 기사 쓰는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디시뉴스는 포털 사이트에 서비스되지 않았지만 방문자 수나 유저들의 관심도, 충성도가 꽤 높은 뉴스였어요. 그래서 디시와 디시뉴스에서 인기 있는 소재는 포털 사이트에 개설된 카페와 블로그 등에 많이 스크랩 됐지요. 포털에 옮겨진 소재와 뉴스들은 이내 화제가 됐고 인기 검색어 순위에도 종종 이름을 올렸습니다. 예를 들어 '비 오는 날 절대 입으면 안 되는 옷'이라는 패러디물이 디시에 올려져 화제가 됐고, 그걸 디시뉴스에서 기사로 만들어 보도했다고 칩시다. 그럼 그걸 본 사람들이 포털 사이트의 카페와 블로그에 퍼다 나르고 이내 인기 검색어 순위에 '비 오는 날 절대 입으면 안 되는 옷'이라는 단어가 올라가는 순서였지요. 물론 그때의 인터넷 이슈들은 '비 오는 날 절대 입으면 안 되는 옷' 보다는 더 복잡하고 재미있는 이야기였지만 말이에요.
포털 사이트 인기 검색어 순위는 그때나 지금이나 많은 페이지뷰(특정 인터넷 페이지를 열어본 횟수)를 몰고 다녔습니다. 검색어 순위 1위에 오르면 수만에서 수십만 뷰를 기록할 수 있었지요.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그 이야기를 클릭한다는 말입니다.
사람들은 이 한 클릭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모르고 있지만, 사실 인터넷 사이트를 운영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 클릭 하나하나가 모두 '돈'과 관련이 있어요. 바로 광고 수입 때문입니다. 페이지뷰가 많아지면 광고 노출 건수도 많아지고 자연스레 광고 클릭 건수도 높아지지요. 내 사이트를 통해 광고 클릭이 유도 되었다면 나는 광고 회사 혹은 광고주로부터 일정 금액의 광고료를 받게 됩니다. 신문사나 방송사, 인터넷 매체들 역시 수입의 대부분을 광고가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신문 발행 부수나 방송 시청률처럼 인터넷 매체(여기에는 신문사와 방송사의 인터넷 사이트도 해당됩니다)의 페이지뷰 역시 중요한 수입원이 된다는 말씀이지요.
검색어 장사, 많이많이 클릭하세요!
수많은 인터넷 매체가 포털 사이트의 인기 검색어에 목을 매는 이유는 여기 있습니다. 포털 사이트에서 인기 검색어를 검색한 사람들은 신뢰도가 높은 뉴스를 통해 그 내용을 확인하길 원합니다. 인기 검색어가 제목과 내용에 들어간 인터넷 기사들은 많은 사람들이 클릭하고 광고 수입으로 직결되지요. 그래서 인터넷 뉴스들은 경쟁적으로 인기 검색어 기사를 올립니다. 기사를 올린 후에도 한두 시간 후면 다른 매체들 기사가 검색 결과 상위에 노출되기 때문에 또 다시 똑같은 뉴스를 써서 올립니다. 이번 아시아나 항공 여객기 불시착 사고처럼 며칠 째 '아시아나'라는 검색어가 인기 검색어 1위에 머무를 때면 기자들은 죽어납니다. 별로 새로울 것도 없는 기사를 하루도 모자라 이틀 사흘동안 계속 반복해야하기 때문이지요.
이제 아시겠지요? 인터넷 뉴스 기자들이 왜 연예인 트위터 기사만 줄줄이 쓰면서 검색어를 써대는지 말이에요.
이런 기사 쓰려고 대학 나와서 기자됐냐"는 댓글을 보게 된다면 그 기자들도 퍽이나 속이 탈겁니다. 업계에서는 검색어 뉴스를 써서 돈을 버는 이런 세태를 일컬어 '검색어 장사'라고 합니다. 요즘 인터넷으로 서비스되는 매체 중에 포털 사이트에 연결 안 된 매체가 몇 개나 될까요?
독야청청 꿋꿋하고 묵묵하게 제 갈 길을 가고 있는 디시뉴스 외에는 거의 없다고 보는 것이 맞겠지요. 개중에는 이렇게 검색어 관련 뉴스가 돈이 된다는 걸 알고 자체 생산하는 기사 하나 없이 검색어 뉴스만 다루는 매체들도 생겼습니다. 블로그 통해서 장사하는 홍보 전문가들 혹은 일반인들도 뒤늦게 이런 사실을 깨닫고 검색어 장사에 뛰어들었습니다. 내용은 인터넷 뉴스를 그대로 쓰되 말
끝만 "~했어요" 하는 식으로 바꿔서 말이에요.
제가 디시뉴스에서 일할 때 디시는 포털에 서비스되지 않았고 더불어 검색어 장사도 하지 않았기에 인기 검색어에 올라도 남 좋은 일만 시키는 꼴이었어요. 그래도 내가 최초로 이 이슈를 보도했고, 다른 많은 매체에서 베끼거나 포털 사이트의 인기 검색어 순위에 올랐다는 것 자체에 자부심을 느끼고 일했습니다.
그때는 제 인생에 검색어 장사를 3교대로 할 날이 오리라곤 생각도 못했어요. 아, 그리고 이 업계를 뒤흔든 공룡이 출현하리란 것도 말이에요. 다음 회에서 저의 본격 검색어 장사 풀 스토리가 공개됩니다. 기대해주세요!
김윤미 pooopdo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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