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정희의 시사소설] 경제부총리 현경제, 親朴 공세에 ˝김친박 이놈 내 사정 맛 좀 보거라˝

[전정희의 시사소설] 경제부총리 현경제, 親朴 공세에 ˝김친박 이놈 내 사정 맛 좀 보거라˝

기사승인 2013-07-18 10:36:01


[친절한 쿡기자 - 전정희의 시사소설 ‘조선500년 익스트림’] 영의정 현경제는 선혜청 도제조(都提調·경제부총리 격)를 겸하고 있었다. 청주유수 출신으로 경기서원에서 학문에 치중해 스물 셋의 나이에 생원·진사과에 합격, 충청도가 낳은 인재라는 소리를 들었다.

성균관 대제학도 지내 경세 능력을 따를 자가 없다고도 했다. 그는 무엇보다 대동법 등을 잘 알아 나라 살림살이에 능했다.

철종은 집권 후 이런 현경제를 영의정에 발탁했다. 정확히 철종이라기보다 당권파인 안동김씨 쪽에서 흩어진 민심을 수습할 최적의 인물이라며 그를 천거했다.

한데 양민의 살림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홑이불 한 장 없이 길거리에서 자도 몸이 온전한 7월인데도 백성은 기력을 잃고 천렵조차 나가질 못했다. 장리빚 갚지 못한 이들은 초근목피로 봄을 버텨왔으나 성하에 접어들자 이마져도 힘들어졌다. 나물 무쳐 먹을 수 있었던 풀은 성겨져 독성이 생겼기 때문이다.

"실물경제 좋다. 집집마다 게장을 몇 독씩이나 담는다"

상참(常參) 때였다. 현경제가 철종 앞에서 정사를 아뢨다.

“백성의 집마다 귀한 게장이 몇 독씩 있습니다. 한양 저잣거리를 다니다 보면 여기저기 간장 담는 아녀자들의 손길이 바쁩니다. 대추와 밤 등속은 한길 가에 굴러다녀도 누가 줍지도 않습니다. 말이나 노새조차 풀을 먹지 아니하고 종놈들 먹고 난 걸진 음식을 먹습니다.”

철종은 현경제의 말에 감탄하며 반응했다.

“경께서 하신 얘기가 사실이오? 오호 참으로 훌륭하오. 세상에 그 귀한 게장을 집집마다 몇 독씩이나 담는다 하니 이게 다 영의정의 탁월한 식견과 상평(常平) 능력 때문 아니겠소? 무릇 대신들도 본받아야 할 일이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대통령, 안동김씨 덕에 하루아침에 적통돼

기분이 좋아진 철종은 상참이 끝날 즈음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내가 강화 교동도에서 나무하며 살 때 갯벌에 나가 게를 잡아 그거를…”

그때 갑자기 영은부원군 김문근이 “험 험”하며 기침소리를 냈다. 금위대장, 총융사, 훈련대장을 지낸 그는 딸이 왕비로 책봉되자 안동김씨 세도의 중심 인물이 됐다. 바로 철종의 장인이다.

이조판서 김병기도 “전하, 상참 후엔 경학에 들 시간이옵니다”하고 거들며 철종의 말을 잘랐다. 김병기는 안동김씨의 살아 있는 실세 권력이었다.

철종은 안동김씨 척족에 의한 허수아비 임금이었다. 헌종이 아들 하나 남기지 못하고 세상을 뜨자 왕실은 가장 가까운 왕가의 적통을 찾게 됐는데 그가 바로 강화도령 철종(1849~1863)이었다. 그는 정조 임금의 동생 은언군의 손자였다. 은언군은 정조가 죽고 정순왕후가 수렴청정을 하게 되자 우선 제거야 해야 할 대상으로 지목돼 강화 교동도로 유배되었다.

그런 은언군은 신유교난 때 처 송씨와 며느리 신씨가 야소교를 믿고 영세를 받은 일로 사사되었다. 그런 가운데서도 간신히 살아남은 그의 아들 광은 그야말로 초근목피로 살아갔다. 철종은 그런 광의 셋째 아들이었다.

철종, 즉 이원범은 당연히 배움이 없어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농투성이였다. 양반 유배가 3대째 이르자 왕가의 자손이나 갯내 것이나 차이가 없었다. 깨복장이로 교동 갯벌에서 개흙 뒤집어쓰고 게를 잡아 구워 먹곤 했다. 무명옷조차 없어 거웃이 옅어질 정도로 자랐는데도 다 자란 놈이나 다 큰 년이나 헤벌쭉 하체를 드러낸 채 말이다. 철종은 교동도 갯가 노비 자식이나 진배없었다.

그런데도 안동김씨는 이런 원범을 적통이라며 하루아침에 왕으로 만들었다. 허수아비 왕이었다.

어쨌든 새로운 왕이 등극했으니 백성에게 광명한 세상이 됐음을 알려야 했다. 그깟 백성들이야 민란 일으키지 않을 정도로 배 채워주면 그만이었다.

金親朴, 부산포 토호로 왜와 밀무역을 통해 축재

철종임금을 내세운 안동김씨의 통치 지략은 홍문관부제학 김친박의 머리에서 나왔다. 부산포 출신의 그는 갯가 사람 특유의 추진력과 있었고, 배짱도 두둑했다. 선대로부터 왜와의 교역을 통해 축재, 부산포 토호로 군림했다. 김친박은 막대한 부를 바탕으로 무과급제를 했으나 지략이 뛰어나 문신 벼슬을 얻었고 안동김씨 모사꾼으로 등장했다. 안동권씨의 숙적인 조씨문중에 맞서며 당권을 지켜내는 인물이었다.

그럼에도 헌종 때부터 썩을 대로 썩은 삼정 문란은 좀처럼 잡히질 않았다. 전정, 군정, 환곡 비리가 극에 달했고 그 정점에 늘 안동권씨 토호의 부정부패가 있었다. 중앙은 그보다는 좀 나았지만 도끼니 개끼니였다.

‘이대로 가다간 곳곳에서 민란이 일어나겠어. 그런데도 현경제 저 인간 뭐? 장독대마다 게장 담는 아녀자들의 웃음소리가 담을 넘는다고? 영평군(철종 동생)에게 안국동별궁 내주더니 안국동 그 언저리 정도 가보고 나라 살림 윤택해 졌다고 허풍을 떠니…안국동이 상것들 사는 동네인가 말야. 지 놈이 지금 누구 덕에 그 자리 지키고 있는 줄 모르고 입으로만 나불거리는가.’

김친박, 대통령에게 현경제 파직 요청

김친박은 전날 상참에서 현경제를 내칠 요량으로 임금께 상언했다.

“팔도는 전하의 덕치로 종사가 편안 하옵니다. 하지만 무지한 백성은 등 따숩고 배부를수록 더 많은 요구를 하기 마련인데 선혜청 도제조의 능력으로는 혜량이 없어 많은 것을 기대할 수 없나이다. 그가 대동법에 대해 탁상에서 알 뿐이지 실물이 어찌 돌아가는지 모를뿐더러 아랫사람인 제조 등을 잘못 다루어 물가 관리에도 실패했나이다. 낙관적인 전망으로 남인으로부터 ‘존재감 없는 영의정’이란 비난을 듣고 있습니다.”

철종이 비록 무식하다고는 경연에서 딱 하나 잘하는 것이 있었다.

“백성 배고픈 것을 나라가 해결해야 할 것이오. 내가 교동도 살 때 지주란 놈들이 워낙 악독해 자식들 노비로 내줘야 그나마 장리빚이라도 내주오. 선혜청은 지체 말고 세수를 확보하고 이를 각 조창을 통해 내보내 굶는 백성이 없도록 하시오.”

임금다운 말은 한마디뿐이었다. 그리고는 김친박이 일러준데로 “경의 뜻대로 하시오”가 전부였다.

"민란이 일어났다고? 부산포 내 재산은 안전한가?"

그날 밤 진주부사가 장계를 보냈다. 진주에서 민란이 일어나 진주성이 역도 등에게 함락 당하고 부산포, 내이포, 염포 등도 굶주린 백성이 낫을 들고 설친다는 장계였다.

“부산포까지? 허 참. 현경제 이 놈이 도성 안에서만 뱅뱅 돌더니 결국 사고를 치는구나. 그런데 그 많은 한선(韓船)은 안전한겐가. 진주가 그 정도면 부산포라고 온전할 리 없겠는데…”

김친박은 부산포 한선을 독점하고 있는 선주이기도 했다. 그 한선으로 왜와의 밀무역을 통해 경상도의 맹주로 떠오를 수 있었다. 김친박은 장계를 가지고 좌장 김병기를 찾았다. 굳이 한문을 모르는 철종에게 보일 필요도 없었다. 김병기에게 현경제를 갈아 치우자고 설득할 생각이었다.

현경제, 한강뱃놀이 하며 "김친박 이놈 사정 맛 좀 보거라"

그로부터 사흘후. 현경제는 김친박이 경연에서 노골적으로 자신을 책망했다는 얘길 듣고 흠칫 놀라 각 선혜청 도제들에게 민생 시찰을 지시했다. 도제들은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압구정에 소경연장을 준비했다. 경기도제가 먼저 나서며 말했다.

“대감께서 보시듯 세수선들이 쉴 새 없이 위 아래로 들고 있습니다. 경기가 호황이라 경강은 이처럼 마포나루에 닿으려는 한선들로 밤에도 호롱불을 밝힐 정도입니다.”

팔도 도제들도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김친박이 놋숟가락이 얼마인지도 모르면서 허튼소리를 하고 있다고 수군댔다.

현경제는 갑자기 기분이 좋아졌다. 그러나 그는 저간의 사정을 여전히 모르고 있었다. 경기 도제가 급하게 세수선을 동원, 볏섬에 겨를 가득 채워 압구정 나루를 종일 오르내리게 한 사실을 그만 몰랐다. 현경제가 말을 이었다.

“내 공들의 노고가 너무 감사할 따름이오. 어여 대기 시켜놓은 기생들 부르시오. 공들과 마음껏 취해봅시다. 유희선도 띄우시오. 흔들리는 유희선에서 방사는 구름 위에서 내쏘는 사정처럼 후련한 것 아니오. 크 하하하. 모르긴 해도 부산 갯가놈 정수리에 내 씨가 떨어질 것이오.”

도제들은 현경제의 얘기가 끝나자 박장대소를 했다. 삼남지방 민란이 걷잡을 수 확대되던 칠월 열여드렛날이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전정희 기자·시사소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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