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쿡기자 - 전정희의 시사소설 ‘조선500년 익스트림’] 승문원 서원(書員) 박윤선은 번체에 능했다. 그러한 윤선의 능력은 다분히 한어(漢語)의 중요성을 인식한 아버지 영향으로 길러진 것이었다.
그의 아버지 박경국은 승문원(지금의 국가기록원) 교리를 지냈다. 따라서 박윤선은 음서직으로 들어와 자리를 잡았다. 그러다가 명나라 외교문서 가운데 흘려 쓴 번체를 번역하는데 탁월한 능력을 보여 서원직에 올랐다.
윤선은 이마가 시원했다. 쪽머리를 하면 귀인성스러운 얼굴이어서 승문원 판교, 참교, 교리 등의 벼슬아치들이 서로 며느리 삼고 싶어 했다. 윤선은 천성 또한 밝아 누구에게나 사랑을 받았다.
윤선은 베이징 사은사 통역으로 다녀 온 후 쓰개치마를 쓰지 않고 계동 승문원에서 종로 육전을 활보할 정도로 분방했다. 이런 그녀를 승문원 서원, 박사 등의 총각들이 사모하여 분백분이나 조두(화장품의 종류) 등을 슬쩍 찔러주며 사모했다.
국가기록원, 미모의 서원 윤선 정국을 뒤흔들다
그런데 어느 날부턴가 윤선의 낯빛이 크게 어두워졌다. 말수가 줄어들고, 걸음걸이도 예전 같지 않게 조심스러웠다. 번체 번역에도 오역이 생겨 참교(종3품) 이흥진으로부터 호되게 질책을 받기 일쑤였다.
“더 없이 열심인 자네가 왜 갑자기 장마철 빨래처럼 축 쳐져 있는가? 지금 남인들이 명나라와 맺은 조·명 접경관리 양해각서를 보자고 난리네. 빨리 명나라측 문서를 봐야 할 것 아닌가? 어찌 사람이 그리 굼떠. 언제까지 마칠 텐가?”
윤선은 고름을 입에 물고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그 예쁜 이마에 송송 땀이 맺히기도 했다. 오금이 저려 제대로 답도 못한 윤선이 뒷걸음질로 참교 탁자 앞을 벗어나 한 숨을 돌리자니 목에서 꾸역꾸역 울음이 차고 올라왔다.
‘이 일을 어쩌는가. 이걸 누구에게 말해야 하는가. 내가 정녕 죽어야 하는가. ’
비서실장 허고성과의 사랑과 배신
윤선은 그날 밤 퇴청하지 아니하고 삼경(밤 11시~새벽 1시)까지 승문관 서탁 앞에서 꼼짝도 않고 있었다. 일을 핑계로 그리 앉아 있었다. 그리고 늦은 삼경쯤 쓰개치마를 머리에 덮고 창덕궁 쪽으로 천천히 걸었다.
윤선이 혀를 빼 문채 승정원(요즘 청와대 비서실 격) 대들보에 목매 숨진 시신으로 발견된 것은 오경도 훨씬 지난 아침이었다. 동부승지 유성대가 조회 준비를 위해 나왔다가 머리채를 늘어뜨리고 죽은 윤선을 발견하고 그대로 엉덩방아를 찧고 승정원 대청마루를 빠져나와 수직관을 부른 것이다.
“어허, 이런 해괴한 일이 있나. 승문원 서원이 왜 하필 승정원에서 자진했단 말인가. 꿈에 다시 볼까 두렵네.”
유성대는 도포자락을 가지런히 하며 동벽과 서벽 승지들이 입궐하기만 기다렸다. 또 이같은 변고를 정희왕후에게 어떻게 보고해야 하는지 참으로 난감한 일이었다. 승정원 도승지(비서실장) 허고성 대감이 입궐해야 상황을 처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사시 무렵이었다. 허고성이 탄 가마가 금천교 앞에서 멈춰서더니 잠시 후 그가 천천히 내렸다. 전날 비가 많이 내려 금천교 아래 거센 물살이 큰 소리를 내며 청계천으로 향하고 있었다.
유성대는 부리나케 가마 앞으로 나가 머리를 조아렸다.
“도승지 어른, 큰일 났습니다. 이런 변괴가 있습니까?”
“대체 무슨 일이기에 이리 소란이오. 평소의 동부승지 같지 않습니다. 고매하신 분이…”
동부승지는 성균관 대제학으로 공부만 하다 정희왕후 천거로 승정원에 들어왔다. 도승지는 그가 그릇이 작고 거드름을 피워 늘 불만이었다. ‘고매하다’는 상찬은 실은 서생이나 다름없다고 비꼬는 말이었다.
“도승지 어른, 승문관 서원 하나가 승정원 대청에서 목을 매 죽었습니다. 흉측합니다.”
도승지의 얼굴이 순간 사색이 됐다. 그리고 잠깐 사이 평정을 찾았다.
“어찌 그런 일이…왕후께서 아시면, 노발대발 하실 터인데…이런, 이런”
허고성은 그러면서도 무슨 딴 생각을 하는지 승문원 쪽으로 자꾸 눈길을 주며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멀리 인왕산에 먹구름이 잔뜩 걸려 있었다.
비서실장, 역모 통해 청와대 입성
승정원과 승문원은 직선거리로 300보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궁궐 쪽문으로 드나들면 연결된 거나 진배없었다.
도승지 허고성이 승문원을 드나들기 시작한 건 지난 봄부터였다. 19살에 불과한 예종이 즉위한 직후 임금의 모친 정희왕후의 신임을 얻어 도승지된 허고성이었다. 예종은 세조와 정희왕후 사이 차남이었다. 그의 형 의경세자가 비명횡사하자 왕권을 이어 받았다. 예종 또한 형처럼 병약하여 정희왕후의 걱정이 태산이었다. 민심은 조카 단종을 죽인 저주가 세조의 자식들에게 이어지는 것이라고 수군댔다.
예종은 환각에 시달렸다. 누군가 자신의 목을 누른다며 밤마다 비명을 질러댔다. 예종은 꿈에 나타나는 귀신이 단종의 비 정순왕후 송씨라고 얘기했으나 정희왕후가 입 밖에도 내지 못하게 했다.
정희왕후는 예종이 병약하다는 이유로 수렴청정을 했다. 그녀는 성격이 대담하고 판단력이 뛰어나 한명회와 같은 훈구파를 배경으로 곧바로 조정을 장악해 나갔다. 예종은 허수아비였다.
문제는 남인세력이었다. 한명회 신숙주 정인지 등 세조 권신들이 정희왕후와 손잡고 권력을 쥐고 흔들자 남인들은 시대가 바뀌었으니 한명회를 비롯한 훈구대신들은 물러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래도 그들은 꿈쩍하지 않았다.
그러자 남인들은 세조 때 북방 영토 문제를 불리하게 체결한 한명회와 허고성에게 화살을 돌리며 그 실정 최종 책임에 정희왕후가 버티고 있다고 몰아붙였다.
조·명 국경관리 양해각서 책임자였던 두 사람은 북경 사행사로 갔으나 위화도 아래 위초도를 명에 넘기고 왔다는 비난을 받았다. 그 무렵 명나라 산둥 도독 펑추엔은 위초도를 무단 점거하고 군사들을 시켜 압록강을 오르내리는 뗏목선을 막고 세수를 거둬들였다. 뗏목선 만이 아니라 명과의 인삼무역 상단에도 도독 명의의 관세를 매겼다. 이중과세였다.
그때 북경(北境) 수비대의 서희 장군이 나서 강하게 반발했으나 그들은 양해각서를 들이밀며 자기네 땅이라고 주장했다.
사실상의 대통령은 정희왕후, 삼성을 보호하다
한명회와 허고성은 양해각서 이면에 밀약을 넣었다. 이중과세를 허용하고 위초도를 넘기는 대신 신흥 인삼 상단 삼성(參星)의 대명 무역 독점권을 허락한 것이다. 삼성은 또 군기시(무기제조), 내자시(수레와 말 생산), 내섬시(관청 소요 물품공급) 등에 독점적 지위를 행사하고 있던 터라 독점에 따른 숱한 비리로 남인 정파를 자극했다. 삼성은 그때마다 정희왕후와 원정공신 등에게 뇌물을 바쳤다.
삼성의 독점 배경에는 정희왕후 친가 파평윤씨의 세도가 있었다. 파평윤씨는 세조 때 척신정치의 본산이었고, 그 정치자금은 파평에서 조금 떨어진 개성 인삼 유통 시장을 장악하면서 나왔다. 따라서 삼성은 사실상의 임금인 정희왕후의 정치자금 역할을 했다.
“삼성이라는 상단을 위해 태종께서 회군한 위화도 옆 우리 땅을 넘겨준 것은 역모 이상의 대역죄이므로 한명회와 허고성을 속히 처단하여야 하옵니다. 승문원 양해각서 원본을 공개해 그 진상을 낱낱이 밝히옵소서. 전하!”
남인과 신진 사림은 매일 돈화문 앞에서 간언을 이어갔다. ‘요망한 정순왕후’라는 악담이 쏟아지기도 했다.
한명회 등 원정공신과 당권파 서인에겐 양해각서 공개는 치명적 정치 격변을 일으킬 수 있었다. 한데 승정원 대청에서 자살 사건이라니…그것도 승문원 서원이….
비서실장, 국가기록원 여직원에 수작걸다
자진한 윤선은 어느 날 위초도 관련 양해각서를 발견하고 참교 이흥진에게 알렸다.
“아니 어찌 이 문서를 발견했느냐? 1급 비밀 문서이느니라. 허 참.”
“우연이였사옵니다. 그리 귀중한 문서이옵니까?”
“네가 양해각서를 놓고 양 당이 피튀기는 싸움을 벌이는 것을 보고도 그러느냐. 이것이 공개되면 너와 나도 온전치 못할게야. 절대 새 나가는 일이 없도록 하거라.”
그 무렵 승정원 도승지 허고성이 승문원 서고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었다. 승정원 최고위직인 판교는 승정원 도승지가 겸하게 되어 있으므로 그의 출입은 당연한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관례상 참교에 맡기고 출입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머리를 식히고 싶구나. 서고에 오면 마음이 편하다. 종이 냄새도 좋고.”
그러나 그의 진짜 속마음은 양해각서를 입수해 자신의 이름을 지우고자 하는 속셈이 있었다. 그래서 늘 혼자 서가를 찾았다.
허고성은 무인 출신이었다. 수양대군(세조)의 왕위찬탈 사건인 계유정난 선봉에 섰던 허고성의 손에선 아직도 피냄새가 났다. 그가 윤선에게 말했다.
“나도 세조 고명(명이 조선의 임금을 인정한다는 임명장을 주는 일)을 위해 사은사로 북경에 다녀온 일이 있다. 한어를 조금 할 줄 안다.”
윤선은 싹싹하게 그의 말을 받았다.
“대감께서 사은사로 다녀오신 것 잘 알고 있습니다. 저도 단종 고명을 위해 사은사로 원행을 한 적이 있사옵니다.”
윤선은 승문원 소속이었으나 사역원(통역 양성기관)에 차출되어 사은사 원행을 했던 것이다.
“대단하도다. 너 같은 미모의 아녀자가 조선에 있다니 자랑스럽구나.”
“국모가 될거야” 국가기록원 서원의 야심
두 사람은 이 같은 대화를 하며 급격히 가까워졌다. 윤선은 참교였던 아버지를 뛰어 넘어 종학(宗學, 왕족 교육 담당 관서)에서 한어를 가르치고 싶었다. 그 얘기는 곧 대군들 눈에 띄어 내명부 여자가 되어 왕실 사람이 되고 싶은 욕망이었다.
“왕비가 될 거야.”
종학은 그래서 그의 꿈이기도 했다.
허고성은 비록 나이가 들긴 했으나 강골이어서 정력이 넘쳐났다. 정실부인이나 첩에게서 느낄 수 없는 먹향의 윤선에게 홀딱 빠진 그는 참모들을 내치고 서가를 안방 드나들 듯 했는데 어느 한 날 욕망을 주체 못해 윤선 주위를 뱅뱅 돌았다. 윤선은 그런 그의 행동을 즐기는 듯 했다.
“윤선아, 내 어쩔 수 없구나. 너 때문에 아무 것도 안 보인다.”
윤선을 서가에 밀어 붙인 허고성은 솜이불 들 듯 가볍게 윤선을 들어 자신의 허리춤한 책장에 위에 올렸다. 양기가 불거져 나와 그녀의 치마폭으로 쑥 들어갔다. 갑작스런 상황에 윤선은 두 손으로 허고성의 가슴을 치며 내쳤으나 굳센 무인의 힘을 당해 낼 수 없었다.
“대감, 대감, 오늘 제가 아니 되옵니다. 부끄러워 말할 수 없습니다. 후일을 도모하시지요. 대감 이러지 마옵소서.”
넙대대한 얼굴에 고슴도치 털 같은 수염이 윤선의 얼굴에 닿자 윤선은 절로 숨이 가빠졌다. 그러면서도 한사코 치마폭을 꽉 틀어쥐고 사내의 진입을 막아댔다.
“그것이 무슨 상관이냐? 내 사정 좀 봐다오. 네가 원하는 것이면 뭐든 들어주마.”
윤선은 그 말에 허고성의 눈을 빤히 바라보며 받았다.
“도승지 어른, 참말이옵니까? 대감을 믿어도 됩니까? 약조 믿어도 됩니까?”
그 말과 동시에 허고성은 윤선의 치마를 걷어 올렸다. 허연 속살이 버선 위로 드러났다. 허고성은 숨이 멎는 것 같았다. 두꺼비 손으로 거칠게 저고리를 벗기고 가슴가리개 마저 잡아당긴 허고성의 손이 사발같이 봉긋한 그녀의 가슴에 닿자, 윤선의 눈이 반쯤 감겨 버렸다.
“아, 아 대감”
달거리가 시작될 즈음이라 극구 밀어내고자 했던 윤선의 의지도 꺾여 버렸다.
“저를 종학에 보내주소서. 대감. 대감만 믿겠나이다.”
“오냐, 오냐. 종학 정도겠느냐.”
양물이 치마를 찢을 기세였다.
비서실장의 양기가 치마를 찢을 기세였다
모두가 퇴청한 그믐날 밤. 승문원 서가에선 끊임없는 교성이 흘러 나왔다. 수십 년 전장을 굴러먹은 허고성의 단단한 어깨와 허벅지 근육의 힘은 사내를 품어보지 못한 윤선을 쾌락에 빠진 불나방으로 만들었다.
일합(一合), 이합, 삼합…그들은 지치지도 않고 서로를 탐닉했다. 그리고 낙산에 꼭대기에 달이 걸렸을 때 윤선에게서 달거리가 시작됐다. 다급한 윤선이 손을 뻗어 한지 문서로 피를 막았다. ‘조·명 양해각서’라고 쓰인 한지 종위에 검붉게 스며들었다.
그 뒷장에는 ‘하나, 조선은 압록강 위초도를 향후 100년 간 명의 조차를 허용하며 대신 삼성 상단 대명 무역 독점권을 인정한다’라고 되어 있었다. 옥쇄 도장이 선명했으며, 그 옆에 한명회와 허고성의 자필과 수인(手印)이 분명했다.
허고성을 몸에서 떼어낸 윤선은 얼굴을 붉히며 피 묻은 종이를 치마폭에 숨겼다.
그 남녀의 방사가 있은 후 당쟁은 더욱 격화됐다. 허고성은 보름 여간 하루도 빠지지 않고 윤선을 탐하더니 이를 핑계로 찾지 않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그녀가 종학으로 간 것도 아니다.
남인은 매국 문서를 찾는다며 연일 윤선을 괴롭혔다. 남인들은 두툼한 양해각서 가운데 유독 위초도와 관련된 부분만 없을 수 있냐며 공세를 높였다. 그때마다 허고성은 승문원이 분실했을 거라며 승문원 서원과 책임자들을 잡아들이겠다고 큰소리를 쳤다.
윤선은 피 묻은 양해각서를 경대 서랍에 보관하고 있었다. 바짝 마른 각서는 자신의 마음만큼이나 더럽혀져 있었다. 윤선은 그것이 정변을 일으킬 만큼 중요한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럼에도 판단력을 세우지 못했다. 사내의 몸을 받아들인 몸이 배신당했다는 치욕에 판단력마저 흐리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종학에 보내 준다 하지 않았습니까? 왜 저를 버리시니이까?”
어느 날 허고성을 간신히 면담한 그녀가 눈에 독기를 품고 말했다.
“네 년이 지금 어느 안전이라고 가당치도 않는 말을 씨불이느냐. 네년이 총명하고 아름답긴 하나 내 알아본 바로는 서녀 아니더냐. 서얼허통이라도 하라는 게냐? 서원 자리 지키고 싶지 않으면 입 다물고 있거라. 내 정리를 봐서 너를 놔두는 것이다. 네 한 목숨 거두는 것은 콩나물 한 움큼 쥐어 빼는 것과 같이 일도 아니다.”
허고성은 모질게 말했다. 그럴 이유가 있었다. 윤선의 미모와 품행이면 정비는 아니어도 빈의 위치 정도는 오를게 뻔했다. 그럴 경우 자신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무서운 여자였다. 반면 윤선은 그의 말에 공포를 느꼈다. 한갓 노리개였을 뿐이라는 것을 그때 알았다.
비서실 수석, 윤선 시신에서 비밀문서를 빼내다
시신을 처음 접한 유성대는 엉덩방아를 찧고 달아나려다 윤선의 저고리 사이에 피 묻은 종이를 발견하고 후들거리는 다리를 추슬러 종이를 빼냈다. 비릿한 피냄새가 나는 종이였다.
‘하나, 조선은 압록강 위초도를 향후 100년 간 명의 조차를 허용하며…’
유성대는 목을 맨 윤선의 치마가 자신의 코앞에서 펄럭이는 것도 모른 채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권력이 ‘고매한’ 자신의 손에 쥐어져 있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전정희 기자·시사소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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