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정희의 시사소설] 검사, 김모래에게 〃탤런트 하나 상납 못하는 놈이 무슨 PD야〃

[전정희의 시사소설] 검사, 김모래에게 〃탤런트 하나 상납 못하는 놈이 무슨 PD야〃

기사승인 2013-07-25 12:46:01


[친절한 쿡기자 - 전정희의 시사소설 ‘조선500년 익스트림’]

“여악(여자 탤런트) 하나 못 다루는 장악원 녹관 악공(PD에 해당) 주제에 뭐 그리 할 말이 많아. 여기가 너네들 유희터인줄 알아? 조선 포도청이 그렇게 우습게 보여? 연향(宴享, 국빈을 대접하는 잔치)을 망쳤으면 알아서 기어야 할 것 아닌가. 그런데도 네가 그렇게 빳빳해. 잡놈(‘딴따라’) 주제에 뭐가 그리 당당해.”

포도부장(검사) 김공명은 악공 김모래의 머리를 육모방망이로 툭툭 치며 다그쳤다. 김모래는 40대인 김공명보다 18년 위였다. 그런데도 김공명은 잡범 다루듯 발로 김모래의 정강이를 걷어차거나 볼을 거칠게 잡아당기며 수모를 주었다.

“부장 어른, 여악은 창기가 아닙니다. 장악원(국립극장 격)에 소속된 관원들입니다. 아무리 연향이라 할지라도 그들에게 수청을 들게 할 수는 없습니다. 청나라 사신이 제 아무리 높다 한들 어찌 멀쩡한 처녀들을 그들 방에 어찌 넣겠습니까? 지금이 정묘호란의 인조 임금 때도 아니고…오랑캐들에게 공여(貢女)로 내놓으라니요. 더구나 무동(舞童, 어린이 무용가)까지 요구했습니다. 뿐입니까, 남색(동성애)도 밝히는 그들입니다. 아무리 청나라 오랑캐들이라고는 하나 어린 것들을 성노리개로 삼아서야 되겠습니까?”

김모래, “탤런트는 창기가 아닙니다. 오랑캐에게 내 놓으라니요”

“어, 이 새끼 봐라. 잡놈 말 본새가 성균관 유생 말하듯 하네. 생원진사시 겨우 합격해 한직인 장악원 나부랭 잡놈 하는 주제에 웬 허세가 그리 심해. 억울하면 나처럼 식년 무과 급제해 네가 나를 잡던지. 인조 임금 때도 아니라고? 그러면 네가 지금 순조 임금을 우습게 여긴다는 얘기냐? 너 새끼 좌당(좌파) 아냐? 대갈머리 썩은 새끼란 거 다 알고 있어. 그리고 여악은 너만 드시겠다? 그러니 건드리지 마라?”

김공명은 ‘인조임금 때도 아니고…’라는 말에 비위가 단단히 틀어졌다. 제 놈이 전임 정조 임금 때 ‘수원화성행차’ 행사를 제아무리 성공적으로 치러 ‘조선이 낳은 최고 악공’으로 불린다 할지라도 그건 어디까지나 지난 정권 때의 일이었다.

지금은 영안부원군 김조순 일문에 의한 안동김씨의 신권 조정인데 이 자가 아직도 왕권 향수에 잡혀 먹물 튀기는 소리를 하고 있다니. 잡놈은 잡놈답게 놀아야 하는 법이었다.

김공명은 흐물흐물 웃더니 김모래를 일으켜 세워 감영(검찰청) 별실 구석으로 몰아넣었다. 그리고 완력으로 냅다 김모래의 불알을 잡았다.

“으 어억”

김모래가 비명을 질러댔다. 그는 아픈 것 보다 수치스러웠다. 어찌나 세게 잡혔던지 생식기가 찢어진 듯 했다. 피가 삼베 바지에 묻어 나왔다.

김공명은 불알을 쥐어 잡고 김모래의 눈을 쏘아보며 말했다.

검사 김공명, “탤런트가 수청 들기로서니…”

“네가 수원화성행차 맡아 한강에 배다리 놓을 때 우리 아버지가 마포나루 새우젓배 선주였다 이 새끼야. 한데 배다리 연결에 동원된 배에 왜 우리 아버지 배만 쏙 뺏어. 우리 아버지 네 놈 땜에 화병으로 돌아가셨다. 포도청 들어오면서부터 니놈을 엿보고 있었다. 악공? 다 늙어빠진 주제에 젊은 년들 불러다 이리 세우고, 저리 세우니 좋냐? 요 좆이 서기는 해?”

김모래는 그제야 의문이 풀렸다. 그때까지 그는 청나라 사신을 접대하는 홍제원에 여악을 들이지 않은 죄 때문에 포도청에 끌려왔을 줄로 알았다. 잡혀 오면서까지도 ‘그 홍제원에도 기왕의 관기들이 있는데 왜 여악들을 부를까’ 이상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김공명은 포도대장(검찰총장 격) 채충성에게 사신 일행 안전을 이유로 관기 대신, 여악을 넣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데 윗선이 허락한 일을 김모래가 내친 것이다.

바짝 독이 오른 김공명은 연향 망친 건 국법 질서인 대명률에 반하는 거라며 그를 잡아 들였다.

“부장 나리, 당시 새우젓 배를 동원 안한 건 냄새 때문입니다. 제 아무리 물청소를 한다 하여도 쩐 냄새를 감당 할 수 없습니다. 더구나 배다리는 가설 구조여서 배의 형태가 같지 않으면 배 위로 길을 낼 수가 없습니다.”

“오호라, 그래서 광나루와 삼밭나루(三田渡, 지금의 서울 잠실 부근)의 나룻배까지 수만 냥씩 주며 동원했다? 그리고 가까이 있는 마포나루 배는 한 척도 동원하지 않았다? 그 바람에 마포상권이 노들나루(노량진)와 양화나루(합정동)로 넘어 간거 알아 몰라? 너는 인마, 민심 선동죄야. 국율로 다스려야해.”

이런 억지도 없었다. 배다리에 동원된 배들에 대해선 제 값을 주었을 뿐이다. 국가적 행사였다. 또 여드레간의 원행(遠行) 과정에서 다양한 음악과 무용이 정조 대왕을 위해 펼쳐졌다. 그는 조선 개국 이래 세종 다음으로 태평성대를 이룬 임금이었다.

“대통령이 진주검무 1인자 고혜린이를 좋아한다”

그런 행사가 끝나면 배다리에 동원된 선주들은 임금이 밟은 배라 하여 백성에게 두어 냥씩 받고 승선케 해 돈을 벌었다. 그 돈은 쏠쏠했다. 특히 여염집 여자들이 주로 올랐는데 정조와 같은 현명한 아들을 낳을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반면 마포나루는 동원됐던 배가 없어 인파가 끊겼다. 김장때가 아니면 사람들의 발길이 뜸했다. 이에 마포 새우젓배 선주들은 김모래라면 이를 갈았다.

“홍제원에 가지 않겠다고 한 년들이 누구냐? 순조 임금께서 예뻐하는 진주검무 일인자 고혜린이더냐? 아참, 사내놈도 있었지? 승전무의 이재희더냐? 똑바로 불지 않으면 네 거웃 털과 수염을 다 뽑아 버릴 테니 잘 생각해라. 사헌부까지 나서면 너는 극형을 면치 못할 것이다. 마포나루 상인들의 진정과 화성행차 행사 착복 내용만으로도 내 인생은 끝난 것이나 다름없다.”

김공명이 김모래를 매몰차게 족치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었다. 임금이 대신에게 베푸는 연회 때마다 진주검무의 고혜린을 불러 넋이 나간 사람처럼 즐겼는데 바로 그녀를 자신이 챙겨 보호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김공명의 머릿속에 그렇게 복잡한 잇속이 오가고 있는 줄 모른 채 김모래는 그저 수치스러워 죽고 싶을 뿐이었다. 칠순이 다되는 나이에 뿌리가 잡히는 수모를 겪다니.

중참(점심)이 되자 김공명이 다시 돌아와 취조하겠다며 자리를 비웠다. 이때 그를 잡아들인 사령 하나가 다가와 말했다.

“썩은 안동김씨 세상” 김모래 결국 마포나루서 자살

“김 악공, 내 어려서 배다리행차 장관 너무나 잘 기억하네. 그때만 해도 백성이 참 살만했네. 하지만 지금은 안동김씨 세상이네. 민심이 흉흉하고, 검계(조직폭력배)들이 판을 쳐. 포도부장에게 바짝 엎드리게. 그게 살길일세. 우리 부장 모시고 삼밭나루(지금의 강남) 쪽으로 뱃놀이 가소. 그 늘씬한 고혜린이 하고 몇몇 여악들 더 데려와 포도청 종사관들 회포 좀 풀어주면 안되겠나?”

그로부터 3일후였다. 임의동행에서 풀려난 김모래는 마포나루 큰 버드나무에 올라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그리고 발밑에 유서 한 장이 돌멩이에 눌려 있었다.


‘나는 단지 억울할 뿐이오. 처벌 받을 사람은 따로 있소. 나는 그저 악공으로 평생을 살고 싶었을 뿐이오.’

국민일보 쿠키뉴스 전정희 기자·시사소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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