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나와 같이 미쳤던 당신들, 지금은 어디 간 거야?
[친절한 쿡기자-하드윤미의 똥개훈련] 아침에 눈을 뜨니 지난주와 같은 일상이 잔잔히 흘러갑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 같은 월요일이지만, 사실 우리나라 국민 중 4만명(주최측 추산)의 가슴 속에서는 아직도 메탈리카(Metallica)의 '낫씽 엘스 매터(Nothing Else Matters)'가 요동치고 있을 겁니다. 그 열기를 품고 다른 월요일과 똑같이 일터로, 학교로 향했겠지요. 그래서 그랬나봅니다. 어제와 그제 이틀동안 잠실에서 만난 당신들이 나는 눈물겹게 반가웠습니다. 지금은 모두 자기 자리에서 정상인 코스프레를 하며 지난 주말의 후기를 찾아 읽고 있을 당신들 말입니다. 끈적한 맨살을 부비며 내 등짝을 가열차게 밀어댔던, 육수가 흥건하고 땀내가 진동하던 이틀간의 '현대카드 슈퍼콘서트19 시티브레이크' 현장 이야기, 바로 당신들과 내 이야기를 해봅니다.
첫날 베스트는 림프 비즈킷!
17일 첫날 시간표는 오후 12시부터 돌아갔건만 서울 잠실 종합운동장 내 공연장들은 오후 3시 넘게까지 한산했습니다. 햇볕이 따갑기도 했고, 워낙 한꺼번에 사람이 몰리다보니 예매 확인하고 입장하는 데만 해도 엄청난 시간이 걸린 탓이지요. 이날 야구 경기도 있어서 잠실 일대는 교통이 마비될 정도였습니다. 일찌감치 입장해 자리를 잡은 사람들 중에는 텐트까지 챙겨 오신 분들도 계시더군요. 텐트 속을 흘끔 훔쳐보니 야구장 앞에서 사온 치킨과 맥주의 환상 조합을 시전하고 계셨습니다.
일행 중 한분은 벌써 얼굴이 발갛게 익으셔서 숙면을 취하고 계셨고요. 아, 이만한 즐거움이 있을까요? 귀와 가슴에는 뜨거운 비트가 흐르고 내 식도에는 치맥이 흐르고. 어서어서 성인인증을 하고 시원한 맥주 한 잔을 들이켜야만 할 것 같은 순간이었습니다. 정각 4시에 점점 잘 생겨지는 '장기하와 얼굴들'의 공연이 시작되자 공연장은 달아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전 스탠딩 구역 뒷쪽에 자리잡고 있었는데, 여기선 한바탕 춤판이 벌어졌습니다. 여기저기 돗자리에서 일어난 맨발의 여성들이 덩실덩실 춤을 추고 아저씨랑 아줌마도 손을 맞잡고 춤을 추고 저도 추었습니다. 정말 신나게 노시는 여성분들에게 다가가서 물었어요.
"왜 스탠딩 구역 앞쪽으로 안 가세요?"
돌아온 대답은 명쾌했습니다.
좁고 땀 냄새 나서요!"
그래요, 앞은 좁고 부대끼고 땀 냄새도 진동하지요. 하지만 70세에 가까운 이기 팝 할배와 전설의 더 스투지스(Iggy and The Stooges)가 보여주는 혼신의 무대를 나만 편하게 보는 건 동방예의지국의 국민으로서 옳은 일이 아닌 것 같았습니다. 저는 경로 우대하는 여성이므로 스탠딩 구역으로 돌진했어요. 그리고 이기 팝 할아버지의 그 작고 쪼글쪼글한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로 인해 '젊은이 우대'를 받았습니다. "퍼O 땡큐(FuOOOOOO thank you)"를 외치며 아찔하게 바지를 내리던 그분, 스탠딩 구역에 나와 손을 잡아주다가 스피커에 기대 흐느적거리던 그분, 왜 이제서야 한국에 오신 거예요? 할아버지, 미워! 그치만 만수무강하세요!
이어진 림프 비즈킷(Limp Bizkit)의 무대는 감히 이번 축제에서 최고의 재미였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뜨거웠어요. 보컬인 프레드 더스트가 라이브에 강한 건 알고 있었지만 관객을 쥐락펴락하는 무대 매너에 감탄했습니다. 어디 공연장에서만 그렇겠어요? 인생사라는 게 잘 해서 호응해주면 거기에 감사하고, 주거니 받거니 열기를 더해가는 것이지요.
림프 비즈킷의 공연은 말 그대로 화산 폭발 같은 느낌이었어요. 림프가 무대에서 미쳐가는 동안 우리 역시 광란의 전차를 끝으로 몰아갔습니다. 이날 뒷쪽에 계신 분들 덕분에 등 마사지 제대로 했어요. 참 시원하고 고마웠습니다! 공연 중반 스탠딩 구역으로 돌진한 프레드, 갑자기 "대~한 민국!"을 외칩니다. 관객들은 반사적으로 '짝 짝짝 짝 짝' 1-2-2 박수와 더불어 "대~한!민!국!"으로 화답합니다. 그렇게 1분 가깝게 대한민국을 외치자 프레드와 드럼의 존 오토, 무대 위 다른 멤버들도 혀를 내두르며 우리를 구경합니다.
이것뿐이 아니에요, '페이스(Faith)'에 앞서서는 여성 관객들을 무대로 불러들였습니다. 어림잡아도 50명은 됨직한 여성들이 무대 위에 올라서 멤버들과 같이 호흡하며 한바탕 난장을 벌였습니다. 보통 멤버들 안전 문제 때문에 안간힘을 쓰며 난입하려는 관객도 경호원이 제압하기 마련인데(실제로 다음날 메탈리카 무대에서는 어떤 관객이 무대에 난입했다가 경호원들로부터 패대기 당하기도 했어요) 초대까지 해주다니요. 그렇게 해서 무대 위에 올라간 여성 관객들 얼굴은 정말로 행복해보였습니다. 보는 저까지도 만면에 웃음을 띠게 되더라고요. 그분들 무대에서 멤버들과 사진도 찍으시던데 아마 평생의 추억으로 간직되겠지요?
첫날 대미를 장식한 뮤즈(Muse)도 이에 질세라 애국가를 연주했습니다. 매튜 벨라미의 애국가 기타 연주에 관객들은 가사를 붙여 불렀지요. 비교적 한국에 자주 방문하는 뮤즈라지만 날로 늘어가는 매튜의 한국어 실력도 모자라서 애국가라니 왠지 감동적이었어요. 다른 아티스트들은 "서울! 코리아!"를 외칠 때 매튜는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사랑해요" 할 정도이니, 다음번엔 또 어떤 한국어를 들려줄 지 사뭇 기대도 됩니다.
메탈리카, 웰컴백!
첫날 열심히 놀고 다들 방전된 탓인지 둘쨋날인 18일의 공연장은 전날보다 더 늦은 시간까지 한산한 모습을 보였어요. 저도 전날 옷이 다 젖게 날뛴 결과로 시들시들했지만 오늘은 메탈리카를 만나는 날, 요동치는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잠실로 달려갔습니다.
개인적으로 메탈리카는 두 번째 만나는 거였어요. 지금으로부터 7년전인 2006년 광복절, 장소는 마찬가지로 잠실 종합운동장, 두번째 메탈리카의 내한공연이 있었지요. 8월 여름날, 같은 장소, 그리고 7년. 그 시간동안 저는 결혼해서 애 엄마가 되었고, 메탈리카도 50대에 접어들었습니다. 사실 이번 메탈리카 내한 소식이 있었을 때, 팬들 사이에서는 마지막 내한이 될 거라는 관측이 있었어요. 체력 소모가 많은 공연인데 멤버들 나이도 있으니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모른다는 예상이었죠.
저 역시 내 생애 마지막이 될 지 모른다는 생각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막상 건재한 그들을 만나고 보니 한두번쯤 더 만나길 기대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기타와 보컬의 제임스 햇필드는 여전한 근육질 몸매와 풍부한 성량, 특유의 유머까지 그대로였습니다. 드럼 치는 라스 울리히가 조금 안쓰러워보였지만, 생각해보면 2006년 내한 때도 비슷한 생각을 했던 기억이에요. 그는 아마도 이대로 가늘지만 길게 잘 연주할 수 있을 듯싶습니다. 하긴, 이기 앤 더 스투지스 할배들도 계신데요!
메탈리카의 연륜답게 둘째날 공연장에는 연령대가 높은 관객들도 많이 눈에 띄었습니다. 김창완 밴드와 신중현 그룹까지 든든하게 라인업을 차지하고 있으니 왠지 축제가 더 풍성해진 느낌이었어요. 백발의 노부부가 손을 잡고 오신 것도 봤고, 할아버지-아버지-아들의 삼대가 같이 오신 가족도 있었고요. 메탈리카의 '마스터 오브 퍼펫츠(Master Of Puppets)' 떼창(많은 사람이 떼로 같은 노래를 부른다(唱)는 뜻)에 심취한 아버지 모습에 깜짝 놀란 듯한 아들의 모습을 보고서는 집에 있던 제 딸 아이가 생각났습니다. 다음번 메탈리카의 내한 때는 제 딸 아이도 취학아동이 되어 함께할 수 있겠지요?
한국 관객들의 떼창은 이미 전매특허, 많은 아티스트들이 선망해마지않는 문화가 되었습니다. 이전 공연에서도 기타 솔로는 물론이고 웃음소리까지 떼창으로 소화하는 한국팬들에게 놀란 바 있는 메탈리카는 이번에는 아예 작정하고 떼창을 유도했습니다. '더 메모리 리마인즈(The Memory Remains)'의 끝부분을 관객들에게 맡기고 멤버들은 입을 벌리고 우리를 구경했지요. 아티스트로서 이보다 더 즐거운 순간이 있을까요? 내 노래를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함께 부른다는 것. 그리고 우리도 즐거웠습니다. 수 많은 사람 중 하나로 그 노래를 부를 수 있게 해준 당신들이 있어서요.
메탈리카는 한국팬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담아 앵콜곡을 세곡이나 불렀습니다. 두 곡 부르고 그만하겠다는 제임스에게, 이제 마지막이라는 약속을 선심 쓰듯 해주고 나서야 세번째 곡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시간이 늦었다며 어서 가서 자야한다고 포갠 손을 왼쪽 볼에 대고 고개를 갸우뚱하는 제임스의 앙탈을 보고는 박장대소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이런, 장난꾸러기! 마지막 곡이 끝나고 메탈리카는 언제나 그랬듯 기타 피크와 드럼 스틱을 듬뿍 선물했습니다. 스탠딩 구역 맨 앞에 있었던 한 관객은 "기타리스트 커크가 피크를 던지는데 컵째 새 모이 주듯 투하하더라"고 회고했습니다. 다음번에는 헬기에서 뿌려보는 건 어때요? 하늘에서 메탈리카의 기타 피크가 비처럼 내려오는 상상은 상상만으로도 몹시 행복합니다!
언제, 어디에서 다시 만나랴
록 페스티벌에 가면 항상 놀라곤 해요. 내 주변엔 록 좋아하는 사람이 많지 않은데 도대체 이 많은 사람들은 어디에서 쏟아져 나왔을까. 떼창을 이렇게 할 정도면 매일 록에 빠져 사는 게 아닐까. 그런데 이번 시티 브레이크를 즐기면서 문득 깨달은 하나가 있어요. 보령 머드 축제에는 평소에 매일 머드팩을 하는 사람들만 가는 게 아니라는 것. 보통 사람들이 축제라는 좋은 기회에 다같이 모여 함께 즐기는 것이란 말씀이죠. 이틀간 잠실에 모여든 사람들이라고 매일 록에 빠져서 록만 듣고 록부심(록의 자부심)에 쩔어 있지는 않을 거예요. 록을 좋아하고 즐겨듣던 사람들, 혹은 잘 듣지 않더라도 록에 관심 있던 사람들이 축제라는 좋은 기회가 있어서 다같이 놀았다, 생각하니 이런 행사가 더 많아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물론 지금도 매년 곳곳에서 여러 록 페스티벌이 진행되고 있지만 교통 편한 서울 시내에서 좋은 공연을 접하고 나니 종합선물세트를 받은 느낌이랄까요. 개인적으로는 너무 더운 여름 말고 시원한 가을에 진행하면 좋겠고, 가격도 조금만 착해지면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축제에 초대받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사는 게 바빠서, 학생이라 돈이 없어서 마음으로만 '마스터!'를 외쳤을 장외의 동지들에게도 인사를 보냅니다. "곧 함께 놀아요!"
김윤미/pooopdog@naver.com <사진제공=현대카드/워너뮤직코리아>
김상기 기자 kitti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