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쿡기자] 우리가 꿈꿨던 인사청문회란 이런 거야. 어쩌면 이런 감탄을 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청문장에는 사구체신염이니 근시, 위장전입, 농지법 위반 같은 지루한 단어들 대신 A값과 공적부조, 임의가입자, 소득대체율 같은 신선한 말들이 오가겠죠. 청문회장을 달굴 복지 용어들이라니. 중학생이 ‘vocabulary 33000’을 완독한 뒤에나 갖게 될 어휘력 상승효과를 기대해도 좋지 않을까요.
주목할 건 달라질 말들이 담고 있는 질문의 질적 변화입니다. 그간 인사청문회에서 탈세, 병역기피 같은 단어가 묻는 건 일관되게 한 가지였습니다.
“너도 똑같은 놈이지?”
듣고 싶은 답도 정해져 있습니다. 사람들은 청문석 한가운데 주인공을 앉혀 놓고 “잘못했다”는 공개 실토를 듣고자 합니다. 그건 엘리트 계층의 도덕성이 의심받는 우리 사회가 치러내야 할 희생양 의식 같은 것일 수 있죠. 누군가는 나쁜 놈이 돼야 그나마 세상이 살 만하다고 생각하게 되는 마음. 권력이든 돈이든 많이 가진 이들에게 이참에 돌팔매 한번 해보는 기분. 그게 이해되지 않는 건 아닙니다. 다만 한풀이에도 끝은 있어야겠습니다.
그런 점에서 한국개발연구원(KDI) 선임연구위원 출신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는 기대해볼 만한 이벤트입니다.
“너도 도둑놈이지?” 대신 “당신의 철학은 무엇입니까?”로 질문을 바꿔볼 기회를 잡아보자는 거죠.
아쉽게도 벌써 세금 지각납부 의혹이 3건이나 터졌습니다. 그래도 상대적으로 도덕성 시비는 덜한 청문회가 될 전망입니다. 논문표절 같은 지뢰밭이 있긴 하지만 본인은 12개월 보충역으로 병역을 필했고 아홉 살 아들의 병역 문제가 터질 일은 없는 데다 12억원 정도라는 재산도 57세 전문직 종사자가 무리해서 모은 돈으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야당도 장관으로서의 진짜 자질 검증을 벼르고 있습니다.
경제학도 출신의 연금 전문가인 문 후보자에게는 물어볼 말도, 들어야 할 대답도 많습니다. 당장 전임 장관의 발을 걸었던 기초연금에 대한 생각을 따져봐야 합니다. 국민연금과 연계하는 방식의 기초연금법 제정안에 대해 문 후보자는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찬성해 왔습니다. 언제부터, 어떤 이유로 국민연금 연계를 지지했는지, 반대편 논리에 대한 반론은 뭔지 들어야 합니다. 가뜩이나 쥐꼬리인 국민연금을 보험료만 더 올리고 수급 시기는 2년 더 늦추자는 신념, 의료기관 영리법인을 허용하는 게 형평성에 맞는다는 주장의 근거에 대해서도 우리에겐 설명을 요구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의 답변으로 학자로서 철학과 정책 추진자로서 융통성 간 거리가 얼마쯤 되는지 가늠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문 후보자는 어느 복지부 관계자의 평처럼 “정말 일관된 얘기를 해온 학자”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소신 있는 학자라는 사실은 장점이자 그의 발목을 잡는 최대 약점이 될 수도 있습니다. 전임 진영 장관은 자신이 반대한 국민연금 연계안으로 국민을 설득할 수 없다며 사표를 냈습니다. 알려지기로는 진 전 장관이 직을 걸며 반발한 국민연금 연계안은 문 후보자의 소신이자 기초연금 사태를 진두지휘해 온 청와대의 복심이기도 하죠.
‘지시’와 ‘소신’이 겹치는 문 후보자에게 갈등 같은 게 있을 리 없습니다. 뒤집자면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말이죠. 200일 근무한 정치인 장관이 복지정책에 대한 소신을 논하며 장관직을 던진 마당에 문 후보자가 무슨 명분으로 수십 년 신념을 바꾼단 말입니까.
문 후보자에게는 퇴로가 없습니다. 이 말은 문형표란 카드가 어떤 이들에게는 타협 없는 선전포고로 들린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걱정스러운 건 이 대목입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이영미 기자 ym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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