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품도 ‘특허’ 전쟁시대 돌입, 국내 제약업계 갈등 증가
세계 스마트폰 시장에서 1, 2위를 겨루고 있는 삼성과 애플의 거듭된 휴대폰 디자인 관련 특허분쟁이 각계의 관심을 모았다. 이는 비단 전자제품 분야 뿐 아니라 의약품 시장에서도 충분히 발생할 수 있는 문제다.
바야흐로 전세계는 의약품 ‘특허’ 전쟁시대에 돌입했다. 이는 우리나라에서도 한-미FTA, 한-EU FTA가 체결되면서 더 심화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오리지널 의약품의 특허권 강화를 핵심으로 한 한-미 FTA 등의 발효를 앞두고 지직재산권(이하 지재권)을 보호하려는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실제 다국적제약사와 국내제약사 간의 특허분쟁은 현실화되고 있다. 최근 CJ제일제당, 한미약품, 유한양행, 동아쏘시오홀딩스 등 국내제약사 5곳이 한국화이자를 상대로 제기한 통증치료제 ‘리리카의 특허무효소송 2심에서 패소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는 국내에서 의약품의 용도특허를 인정한 첫 사례로, 향후 제약업계에 어떤 변수로 작용할 지 귀추가 주목된다.
◇용도특허 인정, 특허 보호 강화 움직임= 용도특허는 ‘어떤 물질을 특정용도에 사용하는 발명’에 대한 특허를 일컫는다. 일례로 리리카는 본래 ‘간질 발작보조제’로만 쓰이다가 화이자의 연구 끝에 당뇨병성 신경병증 통증 등의 통증에도 치료효과가 있다는 사실이 입증됐다. 지금은 통증 치료제로 더 널리 사용된다. 리리카의 특허 만료일인 2017년 8월까지 리리카 제네릭은 ‘간질 발작보조제’로만 사용 가능하며 통증치료 용도로는 사용할 수 없다. 이를 최근 법원이 인정한 것이다.
의약품 용도특허 보호 강화는 앞으로 계속될 전망이다. 그간 용도특허는 다른 의약품 특허에 비해 크게 인정 받지는 않았다. 현행 제도하의 복제(제네릭) 의약품 허가 과정에서 신약에 대한 ‘물질특허’ 외에 ‘용도특허’ 보호범위는 배제돼 있다. 때문에 국내사들은 신약의 물질특허나 재심사기간이 만료되면 용도특허 유무와 상관없이 제네릭을 출시해왔다.
이번 사례와 더불어 의약품 ‘허가’와 ‘특허’ 간의 충돌이 생길 수 밖에 없는 현 복지부 제도와 시스템에 대한 지적도 일고 있다. 다국적사의 한 관계자는 “특허권이 약가 보호로까지 이어지지 않아 제네릭이 발매되면 특허침해 여부와 상관없이 오리지널약의 약가를 인하하는 것도 이치에 맞지 않다”고 주장했다.
◇카피캣이라고?, 국내사 “제도 등 여건 강화돼야”= 오리지널의약품을 다수 보유한 제약사들은 지재권이 매우 중요한 가치라고 주장한다. 신약 개발은 물론 의약품 쓰임새 발명을 위해 투자한 막대한 비용과 시간에 대한 무형가치가 ‘지재권’으로 보호될 수 있는 기회를 쉽게 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분명한 것은 제약산업에서의 특허권의 보호가 혁신적인 연구개발을 장려하고 지속적인 투자를 이끌어내기 위해 매우 중요한 부분이라는 것이다. 무분별한 복제약 생산은 제약산업 발전을 저해할 소지가 있다.
그러나 국내제약사들의 사정도 여의치는 않아 보인다. 그간 제네릭으로 먹고 살기 바빴던 국내사들의 오리지널 의약품 의존 현상을 단숨에 끊기 어렵기 때문이다. 또 적게는 수백억에서 많게는 수천억원까지 들이는 의약품 개발에 모든 것을 걸기에는 리스크가 크다. 정부가 혁신형제약기업 등을 육성한다고 발표했지만 지원액수도 극히 미비해 혁신형 신약, 개량신약 등을 개발하기에는 부담이 큰 것도 사실이다.
우리나라에 의약품 특허와 관련한 전문가도 부족한 게 현실이다. 국내 제약계의 한 관계자는 “의약품 특허 소송과 관련된 수많은 경험과 노하우을 쌓아온 다국적기업을 국내사가 이기기란 쉽지 않다”며 “국내에서도 의약품 특허와 관련된 전문가가 필요하고 제도적 보완도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카피캣(copycat·잘 나가는 제품을 모방해 만든 제품을 비하하는 용어)’. 최근 이 말이 심심찮게 들리고 있다. 혁신적인 제품을 만드는 데 사용하는 시간, 비용, 인력 등은 숫자로 환산하기 어려울 것이다. 국내 제약산업이 좋은 의약품을 복제약으로 만들어 저렴한 가격에 공급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창조경제’의 핵심 산업인 국내 제약산업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최고의 ‘원조’제품을 만드는 노력도 필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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