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파업 철회 물밑 협상의 전모… “형님, 철도 문제 이대로 놔두실 겁니까”

철도파업 철회 물밑 협상의 전모… “형님, 철도 문제 이대로 놔두실 겁니까”

기사승인 2013-12-31 01:47:01

[쿠키 정치] 정치가 모처럼 국민들의 답답한 가슴을 뻥 뚫어줬다. 철도노조 파업 철회를 이끌어낸 여야 합의는 정치에서 왜 소통과 대화가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협상가로 나선 새누리당 김무성 의원과 민주당 박기춘 의원은 반나절 만에 영화 같은 정치 스토리를 만들어냈다.

◇“형님, 철도 문제 이대로 놔두실 겁니까”=먼저 물밑협상을 제안한 것은 민주당이었다. 박 의원은 지난 29일 김한길 민주당 대표와 독대한 자리에서 “철도파업은 이런 식으로 못 푼다”면서 유연한 대응을 요구했다. 김 대표의 동의를 얻어낸 박 의원이 협상의 전권을 쥐게 됐다. 그는 먼저 민주당사에 와 있던 철도노조 최은철 사무처장을 만나 협상안 마련을 시작했다.

하지만 협상 파트너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새누리당의 공식 라인과 접촉하기 위해 황우여 대표와 김기현 정책위의장,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강석호 간사 등에게 의사를 타진했지만 딱히 나서겠다는 사람이 없었다. 민주당 관계자는 “새누리당의 한 의원은 ‘아시면서 왜 그러냐. 청와대 지시 없으면 못 움직인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그래서 떠오른 인물이 김 의원이었다. 하지만 김 의원이 2007년 남북 정상회담 대화록 유출 의혹을 받고 있는 게 민주당의 부담이었다. 김 의원이 2010년 당시 한나라당 원내대표를 맡고 있을 때 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였던 박 의원은 김 의원의 정치력을 믿었다. 두 의원 모두 코레일을 피감기관으로 둔 국회 국토교통위 소속이라는 점도 명분으로 작용했다.

박 의원이 김 의원에게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한 것은 29일 오후 4시쯤이었다. 박 의원은 “형님, 철도 문제 이대로 놔두실 겁니까”라며 협상에 참여할 것을 부탁했다. 그러나 김 의원은 “내가 무슨 당직을 맡고 있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나서느냐”고 고사했다. 그러나 박 의원은 뜻을 굽히지 않았다. 김 의원은 “협상에 무슨 조건이 있는 것 아니냐”고 물었고, 박 의원이 “조건은 없다”고 답했다. 본격적인 협상이 시작된 것이다.

◇“아무 성과 없을까봐, 민주노총 가기가 부담스러웠다”=협상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이들은 오후 4시부터 9시까지 수시로 전화하며 협상안의 얼개를 만들어냈다.

두 의원은 오후 9시 국회 의원회관 내에 있는 박 의원 사무실에서 만나 협상안을 문서화했다. 이제 바빠진 사람은 김 의원이 됐다. 김 의원은 청와대 고위 관계자, 황 대표, 최경환 원내대표 등과 전화 통화를 하며 협상 상황을 전했다. 박 의원은 “김 의원이 접촉한 청와대 인사는 조원동 경제수석”이라면서 “김 의원이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과 직접 통화하지는 않았지만 김 실장은 조 수석을 통해 ‘청와대도 동의한다’는 뜻을 보냈다”고 설명했다.

김 의원은 “손놓고 있으면 철도 파업은 내년까지 가고, 이렇게 되면 예산안 연내 처리는 어렵게 된다고 청와대를 설득했다”고 말했다. 또 철도노조가 박 의원을 통해 징계 해제를 요구했지만 “그런 것은 받을 수 없다”고 거절했다는 뒷얘기도 전했다.

마지막 관문이 하나 남았다. 민주당과 철도노조는 김 의원이 민주노총 사무실로 찾아와주길 원했다고 한다. 여·야·노 3자 대면이 필요했던 것이다. 김 의원은 국민일보 기자와 만나 “만약 민주노총에 갔는데 ‘아무 성과 없이 나오면 어떻게 되나’ 하는 걱정에 협상을 하면서도 그 순간이 가장 부담스러웠다”면서 “‘야당과 철도노조에 이용만 당했다’는 비난을 받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고 털어놓았다.

김·박 의원은 취재진을 피하기 위해 경찰에 미리 연락해 길을 터놨다. 이들은 오후 11시 민주노총에 도착, 1시간 만에 합의서에 서명했다. 30일 0시쯤 두 의원은 지하주차장을 통해 빠져나왔다.

김 의원과 박 의원은 각각 당 지도부에 협상 타결 소식을 전했다. 철통보안은 양당이 언론에 공개하기로 약속했던 오전 9시까지 지켜졌다. 협상을 이끈 두 중진의 노력과 상호 신뢰에 정치권은 찬사를 보냈다.

특히 김 의원은 새누리당 차기 지도자로서의 입지를 확고하게 다지는 발판을 마련했다는 평가다. 하지만 새누리당 내에서 비판적인 시각도 없지 않다. 정우택·유기준·한기호 최고위원 등은 김 의원이 합의안을 최고위원회에 보고하자 반발하기도 했다.

새누리당 한 의원은 “합의안이 불쑥 튀어나와 공기업 개혁의 기회를 놓쳐 버렸다”면서 “김 의원이 후폭풍을 맞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하윤해 엄기영 기자 justice@kmib.co.kr
김철오 기자
justice@kmib.co.kr
김철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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