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人터뷰] 혀가 짧아 슬픈 홍진호, 방송 문 두드려

[쿠키 人터뷰] 혀가 짧아 슬픈 홍진호, 방송 문 두드려

기사승인 2014-01-27 17:00:01

[인터뷰]지난 18일 케이블 채널 tvN ‘지니어스: 룰브레이커’가 끝난 뒤 인터넷은 불만에 가득 찬 시청자들의 성토가 들끓었다. 강력한 전략형 플레이어가 이날 방송에서 탈락한 것에 대한 분노였다. 그들은 ‘지니어스를 볼 이유가 사라졌다’고 했다. 그렇지 않아도 출연자들 사이에 배신과 연맹이 도를 넘어섰다는 비난을 받아오던 터였다. 시청자의 외면은 다음 방송인 25일 시청률 급락으로 여실히 드러났다. 홍진호(32)의 탈락은 생각보다 여파가 컸다. 홍진호의 팬들이 그를 이렇게까지 두둔하다니. 그가 한창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로 잘 나가던 시절, ‘콩(홍진호의 별명)은 까야 제 맛’이라며 팬들로부터 무작정 까이던 것을 생각하면 이건 놀라운 일이다.

◇혀가 짧아 슬픈 남자=서울 논현동의 한 카페에서 홍진호를 만난 건 25일 오후 3시50분쯤이다. 약속 시간보다 10분 먼저 도착했는데 그는 이미 자리에 있었다. 회색 셔츠 위에 차이나 풍 코트 차림이었다. 머그잔은 비어있었다. 꽤 오래 전에 이 곳에 도착한 모양이었다. TV화면에서 보던 것보다 얼굴이 갸름했다.

“생각보다 마르셨네요?”라고 인사를 대신하자 그는 요즘 몸매 관리를 하고 있다고 했다. 인터뷰는 자연스레 다이어트 얘기부터 시작됐다. “연말연초에 모임이 많았어요. 어느 날 거울을 보니 돼지 한 마리가 있더라구요” 대화가 한 시간정도 이어졌는데 그동안 홍진호는 테이블에 있던 과자를 한조각도 집어 들지 않았다.

발음이 이상했다. 만나보니 확실히 알겠더라. 발음 얘기를 꺼내니 그가 멋쩍게 웃었다. 그는 웃을 때 눈 꼬리가 약간 쳐지고 주름이 깊게 파였다. 마피아 게임(수많은 시민 속에서 마피아를 찾아내는 게임)으로 치자면 그의 인상은 마피아보다는 선량한 시민에 가까웠다. 프로게이머 시절엔 자기 발음이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단다. “이것도 제 캐릭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지니어스를 하면서 처음으로 발음에 대해 아쉬움을 느꼈어요” 지니어스는 매주 주어진 에피소드를 플레이어들이 해결하는 예능 프로그램이다. 매 회 한명씩 탈락해 마지막까지 남은 플레이어가 우승을 차지한다. 홍진호는 지니어스 시즌1에서 우승했고, 현재 방영 중인 시즌2에서는 플레이어 13명 중 일곱 번째로 탈락했다. 지니어스는 다른 플레이어를 이해시켜야하는 경우가 많은데 자신의 발음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시즌1에서 김경란 누나나 김구라 형님은 말을 논리 있고 카리스마 있게 잘 하는데 상대적으로 저는 ‘어버버’대니까 그게 조금 불리하게 느껴졌어요”라고 여전히 혀 짧은 소리로 말했다.

◇고비서 탈락한 전략형 플레이어=지니어스는 각각의 에피소드마다 승부가 펼쳐지지만 결국 1회 때의 플레이가 최종 우승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연속성이 이 프로그램의 매력이라고 했다. 초반부터 몰아칠 수도 있지만 발톱을 숨기는 경우도 있다. 연맹을 중심으로 게임을 운영할 수도 있고, 전략에 집중할 수도 있다. 연맹은 시즌 초반에 유리한 대신 뒤로 갈수록 무력화되지만 전략이 앞서면 플레이어 수가 적어지는 시즌 후반에 유리하다고 했다. 전략형 플레이어인 홍진호는 7회 정도가 고비라고 판단했다. 그런데 그날 떨어졌다. 분리되는 주사위를 잘 조합하는 게 관건인 게임이었는데 당시 연맹을 맺었던 노홍철, 은지원 모르게 조합을 시도하다 실패했다. 셋이서 함께 하기엔 시간이 너무 촉박했다고 했다. 당시 그의 전략은 ‘본인이 우승을 한 뒤 (우승자 권한인 ‘생명의 징표’로) 노홍철을 살려준다’였다. 은지원은 최종 탈락을 결정짓는 데스매치에 지목될 리 없는 상황이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일이 이상하게 꼬였다.

데스매치 ‘인디언홀덤’에서 은지원의 올인 승부를 받아준 것에 대해선 후회하지 않았다. “칩도 많지 않았기 때문에 100% 승리를 확신할 수 있는 상황은 없어요. 지원이형이 승부를 걸어왔을 당시 상황에서 질 가능성은 제로였고, 비길 확률도 낮았어요. 승부를 하는 게 맞죠.” 가장 정이 가는 플레이어는 이두희, 인상적인 장면은 시즌1 당시 오픈패스 대결을 꼽았다.

그에게 “인디언포커를 도전해 보고 싶다”고 했더니 “기회가 된다면 언제든지”라고 답했다. 게임에 있어서는 항상 자신감이 넘쳐보였다. 혀 짧은 소리는 여전했다.

◇방송 노크한 지니어스=주변의 기대치가 높으면 부담도 커지는 법이다. 요즘 홍진호가 그렇다. 출연하는 방송마다 천재 끼를 보여주길 바란다. 인터넷엔 그가 출연했으면 하는 프로그램을 정리한 목록도 올라왔다. 팀 대결 형식으로 펼쳐지는 SBS ‘런닝맨’이나 MBC ‘무한도전’ 등이 거론됐다. 홍진호만의 독특한 전략 플레이를 다시 볼 수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감이 반영된 것이다. 실제 홍진호는 최근 고정 게스트로 합류한 SBS 파워FM ‘케이윌의 영스트리트’에서 스무고개 필승전략을 선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홍진호는 이런 이미지를 경계했다. “제 이미지가 너무 포장돼 있어요. 발음도 그렇고, 어설픈 부분이 많거든요. 그래서 빨리 바보모드로 돌아가고 싶어요.”

어떻게 비춰지고 싶다는 게 없어 보였다. 홍진호는 “저는 스스로 제가 착하고, 괜찮다고 생각해서 있는 그대로 보여드리고 싶어요”라고 했다. 본인 입으로 자기가 착하다는 얘기를 할 정도로 그는 거침없었다. 너무 솔직해서 일부 표현은 기사에서 빼야했다. “차라리 리얼 프로그램이 어울리겠다”고 얘기하자 선량한 시민처럼 슬쩍 웃었다.

폭풍 저그 홍진호와 지니어스 홍진호, 언제가 행복하냐고 물었다. 그는 잠시 고민하더니 게이머 시절을 꼽았다. 그땐 좋아하는 게임으로 돈을 벌었다. 같은 걸 좋아하는 사람들도 주변에 많았다. 항상 게임에서 지지 않을 자신도 있었지만, 지더라도 즐거우니까 그걸로 행복했다.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좋아하는 무언가를 또 찾아가는 과정이다. 그러다 지니어스 출연 제의를 받았다. 기회가 주어지자 부딪쳤다. 불안감이 아주 없는 건 아니라고 했다. 어쨌든 이것저것 부딪쳐 가면서 좋아하는 게 뭔지 경험해 볼 작정이란다. “남들은 20대 때 다양한 것들을 경험해 보고 진로를 정한다는 데 제가 여태까지 해 본 것이라곤 게임 밖에 없어요. 뒤늦게 자기 길을 찾는 중인 셈이죠. 요즘은 우연찮게 방송을 시작했는데, 재밌는 것 같아요”

◇신념 지킨 ‘까임’과 ‘불운’의 아이콘=요즘 홍진호는 tvN ‘김지윤의 달콤한 19’에 고정 게스트로 출연 중이다. 연애를 잘 못하는 이들에게 연애상담을 해주는 역할이다. “고민 사연에 제대로 답변해주는 경우가 거의 없는 것 같더라”고 은근슬쩍 지적하니 인정한다고 했다. 아니라고 반박해야 ‘까는 맛’이 있는데 순순히 그렇다고 해버리니 재미는 없었다. ‘까임 대처법’이 몸에 스며든 것일까. 그는 게이머 시절, 젠틀한 이미지로 자리 잡길 바랬다. 그런데 팬들은 그의 우스꽝스러운 표정과 춤 등을 편집해 인터넷에 올렸다. 홍진호는 팬들과 한 달여간 설전을 펼치다 결국 항복했다. “당시 블로그에 ‘죄송합니다’라고 적고 문을 닫았어요, 하도 까여서 가루가 되다보니 이젠 받아들이게 됐어요” 이제는 욕먹는 게 더 편할 정도란다.

그에겐 항상 운이 따라주질 않았다. 얼마나 운을 바랬으면, 스타크래프트의 숨겨진 아이디도 ‘굿럭(Good luck)’이다. 항상 질문에 빠른 답변으로 응수했던 홍진호는 운 좋았던 경험을 묻자 한참을 고민했다. 결국 찾아낸 답이 지니어스다. 우연찮게 지니어스를 통해 방송을 접하게 되면서 새로운 길을 찾게 됐다는 것이다. 그는 최근 책 5권을 샀다. 그 중 4권이 발음교정 책이다. 간만에 주어진 운을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가 엿보였다. 나머지 한 권의 책 제목을 물었다. ‘악마의 명언’. 홍진호가 악마라는 건 아니지만, 그는 지니어스에서 두 가지 명언을 남겼다.

“지니어스는 배신이 통용되는 곳이다” 그리고 “명분 없어 하면서 일방적으로 도움을 받고 거절하는 것도 실례다”

모든 술수가 통용되는 지니어스의 룰을 인정하면서도 자신의 신념은 지켜나가겠다는 것이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이용상 기자 sotong203@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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