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외고 신입생 B군은 지난달 스쿨버스에서 낯선 폭력을 경험한 이후로 스쿨버스를 타지 않는다. 등굣길 버스 안에서 동급생과 가벼운 대화를 나눴는데 “조용히 하라”는 3학년 선배의 꾸중을 듣고 1학년생 모두가 고개를 숙인 채 학교까지 가야 했기 때문이다. A군은 “학교 안에서 느끼지 못한 폭력에 대한 두려움을 스쿨버스에서 느꼈다”고 말했다.
교육당국이 학기 초를 맞아 각 학교의 CCTV 운영 현황을 점검하고 학교폭력 실태조사를 하는 등 각종 대책을 시행하고 있지만 최근 경남 진주의 C고교에서 잇따른 학생 사망사건을 계기로 새로운 접근방식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2건의 폭력사건이 모두 기숙사나 옥상 등 교사의 감시나 CCTV가 없는 곳에서 발생했다. 특히 이 학교에서는 Wee센터의 상담이 이뤄진 날에도 폭력사건이 발생한 것으로 밝혀져 예방 대책의 실효성에 의구심까지 제기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학교폭력 ‘발생장소’에 대한 발상의 전환이 시급히 이뤄져야한다고 입을 모은다. 심각한 학교폭력은 옥상·스쿨버스·동아리방 등 감시의 사각지대에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정제영 이화여대 교육학과 교수는 14일 “학교폭력은 ‘힘의 불균형’이 일어나는 곳, 즉 교사가 없는 사각지대에서 많이 일어난다”며 “점심·저녁시간, 쉬는 시간 등 학교폭력의 ‘사각시간’에 대해서도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교육당국의 설문조사 위주, 성공사례 위주의 학교폭력 대책에 전환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학기 초 마다 학교폭력 실태조사가 이뤄지지만 대책은 제자리 걸음이라는 것이다. 각종 제도에도 불구하고 사각지대가 남아 있다면 학교폭력은 더욱 은밀하게 이어질 수밖에 없다. 조정실 학교폭력피해자가족협의회(학가협) 회장은 “학교폭력을 막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교사의 눈’”이라며 “학생들의 학습공동체와 생활공동체가 겹치는 기숙사에 폭력의 사각지대가 남아 있지 않은지 먼저 점검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 교수는 “영국의 중·고교 ‘오픈 아카데미(open academy)’는 학교의 벽을 허물고, 화장실 맞은편에 교사휴게실을 배치하는 등 적극적으로 사각지대를 없앤 사례”라며 “우리 교육당국도 폭력의 사각지대를 없애기 위한 대안 마련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한편 C고교의 법인 이사장 이모(61·여)씨는 이날 법인 이사장직을 사퇴했다. 이씨는 고영진 경남도교육감의 부인으로 교육감선거에 출마한 남편을 돕기 위해 학생이 사망한 다음 날에도 유아교육 관련 행사장을 찾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경남도교육청도 비판의 타깃이 되고 있다. 지난달 31일 학생 간 폭행으로 학생이 숨졌는데도 도교육청은 대책회의는 물론 해당 학교에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아 결국 2차 사고를 야기시켰다는 지적이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수현 기자, 진주=이영재 기자 siempr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