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권남영 기자] 3~4월은 극장가 비수기입니다. 따뜻한 봄 날씨에 극장 대신 나들이를 택하는 사람들이 많죠. 어둑어둑한 극장을 찾는 발걸음들은 다소 뜸해질 겁니다. 이런 극장가 분위기를 확 끌어올린 영화가 있습니다. ‘스물’이라니, 제목부터 왠지 싱그러운 느낌이 물씬 납니다.
최근 유난히 한국영화가 맥을 못 췄습니다. 지난 1~2월 박스오피스를 휩쓸어버린 천만 영화 ‘국제시장’ 이후 이렇다 할 히트작이 없었습니다. 오죽하면 지난해 12월 개봉한 국제시장이 개봉한지 40여일 만에 차트를 역주행하기도 했죠. 마땅한 적수가 없었던 영화는 두 달여 동안 꾸준히 관객을 들여 역대 흥행 순위 2위에 올랐습니다.
물론 중간 중간 경쟁작들이 없었던 건 아닙니다. 한류스타 이민호가 유하 감독과 손을 잡고 내놓은 첫 주연작 ‘강남 1970’이 호기롭게 도전장을 내밀었습니다. 세대를 아우르는 인기의 주인공 이승기도 스크린 데뷔작 ‘오늘의 연애’를 내놓았고요. 설명이 필요 없는 배우 하정우가 감독으로 도전한 ‘허삼관’도 있었습니다. 정우와 한효주가 주연한 ‘쎄시봉’이 여러 화제를 낳기도 했죠.
기대작으로 꼽힌 영화들이었으나 다들 반짝 관객을 모으는 데 그쳤습니다. 언급한 영화들 중엔 그나마 ‘오늘의 연애’가 손익분기점(180만명)을 넘겼을 뿐입니다. 참, 설날 특수를 톡톡히 누린 ‘조선명탐정: 사라진 놉의 딸’은 390만명에 가까운 관객을 동원하며 ‘중박’을 쳤네요. 신예 강한나가 뜨거운 관심을 받았던 ‘순수의 시대’도 조용히 막을 내렸습니다.
한동안 박스오피스는 ‘외화판’이었습니다.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의 흥행 질주를 따를 자가 없어 보였습니다. ‘이미테이션 게임’ ‘버드맨’ ‘스틸앨리스’등 제87회 아카데미상 수상작들이 관심을 끌기도 했습니다. 물론 ‘킹스맨’ 인기에 가려지긴 했지만요. 최근엔 ‘위플래쉬’가 입소문을 슬슬 입소문을 타는 분위기였습니다. ‘위플래쉬’와 ‘킹스맨’이 양강 체제를 이루는 듯 했죠. 비록 ‘스물’이 개봉하기 전까지였지만 말입니다.
지난 25일 개봉한 ‘스물’은 개봉 첫 날에만 15만명을 모았습니다. 심상찮은 오프닝 스코어였죠. 연일 50%에 가까운 압도적인 점유율로 박스오피스 1위를 유지했습니다. 개봉 첫 주말을 보낸 30일 누적관객수는 113만명을 찍었습니다. 불과 5일 만의 기록입니다.
‘스물’은 동갑내기 세 친구 치호(김우빈)·동우(이준호)·경재(강하늘)가 스무살이 되면서 겪는 성장통을 유쾌하게 그린 코미디 영화입니다. ‘과속 스캔들’(2008) ‘써니’(2011) 등을 각색한 이병헌 감독의 첫 상업영화죠. 시나리오 단계부터 “잘 빠졌다”는 소문이 자자했습니다. 충무로 대세로 꼽히는 김우빈·강하늘과 그룹 투피엠(2PM) 멤버 이준호까지 출연했습니다. 뚜껑을 열었더니 역시나 호평이 자자합니다.
‘스물’ 흥행 추이에 영화계 안팎의 시선이 모이고 있습니다. 또 한 편의 ‘특급’ 흥행작이 나올 수 있을까요. 오는 1일 개봉하는 ‘분노의 질주: 더 세븐’ 등 영화들이 줄줄이 개봉을 앞두고 있지만, 글쎄요.
일각에선 ‘쏠림 현상’을 우려하기도 합니다. 한 영화에 주목이 쏠리면 그만큼 다른 영화들은 관심을 받지 못할 테니까요. “요즘 영화는 대박 아니면 쪽박”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그래서입니다.
하지만 일단은 ‘스물’의 강세가 반갑게 느껴집니다. 한국영화가 두각을 나타낸 게 참 오랜만이기 때문입니다. 개봉 전 이병헌 감독은 “200만만 넘으면 좋겠다”고 했었는데, 그 목표가 이젠 왠지 소박해 보입니다.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