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이은지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5월 광주 민주화운동 추념식에서 추도문을 낭독하던 5·18 희생자의 딸을 안아주던 장면은 온 국민의 눈시울을 붉히기 충분했다. 그만큼 광주는 대한민국 근현대사에서도 유독 국민들의 아픈 손가락이다. 민주화운동이 알려지지 않았던 당시의 상황과 총칼 앞에 쓰러져간 시민들, 그리고 민주화운동이 폭동으로 잘못 알려져 ‘빨갱이’라는 누명을 써야 했던 이들. 영화 ‘택시운전사’(감독 장훈)는 당시의 실상을 서울에서 택시를 운전하던 만섭(송강호)의 눈으로 그려낸다.
영화는 1980년 5월, 서울의 택시운전사 만섭이 통금시간 전까지 광주에 다녀오면 큰돈을 준다는 말에 독일기자 피터(토마스 크레취만)를 태우고 아무것도 모른 채 광주로 가게 된 이야기를 그린다. 독일기자 피터는 실존인물인 故위르겐 힌츠페터를 모티브로, 만섭은 위르겐 힌츠페터를 태우고 갔던 김사복 씨를 모티브로 했다. 위르겐 힌츠페터는 당시 라디오를 통해 광주의 상황을 전해 듣고 오로지 취재를 위해 광주로 떠났다. 본래 외신기자들은 취재를 위해 해외홍보원에 목적을 알린 뒤 프레스카드를 발급받아야 취재가 가능했으나, 그는 기자의 신분을 숨긴 채 계엄 하에서 광주의 상황을 촬영해 전 세계에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알리게 됐다. 일명 ‘푸른 눈의 목격자’로도 불린다.
피터 역을 맡은 토마스 크레취만은 할리우드에서 활동하는 독일 배우다. 영화 ‘피아니스트’ 등을 통해 국내 관객에게 알려졌다. 재미있는 것은 그의 전작들을 살펴보면 대부분 토마스 크레취만은 나치 역할 등 전형적인 ‘악한 독일인’을 연기해 왔다. ‘택시운전사’로 ‘푸른 눈의 목격자’가 된 그의 감상은 어떨까.
20일 서울 CGV압구정점에서 열린 영화 ‘택시운전사’ 제작보고회에서 토마스 크레취만은 행사에 참석하지는 못했으나 제작기 영상을 통해 자신의 소감을 피력했다. 토마스 크레취만은 "시나리오에 쓰여 있는 것만으로 충분했다"며 "인권을 위해 싸웠던 실존 인물을 잘 표현해야 했고, 동시에 상상 속 인물 또한 함께 표현해야 했다"고 당시의 어려움을 전했다. 또 영화에 관해서는 “아주 진실된 영화다”라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아직까지는 여러 면에서 정치적으로 예민한 사안이니만큼 할리우드 배우가 아닌 국내 배우들의 출연 또한 망설여지는 대목이었다. 송강호는 이날 제작보고회에서 ‘택시운전사’를 한 차례 거절했었음을 밝히며 “아픈 현대사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부담감이 있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치적 눈치를 본 것은 아니라고 밝히며 “근현대사의 큰 부분을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었다”며 “건강한 부담감이라 할 수 있겠다”고 강조했다.
송강호는 이미 영화 ‘변호인’으로 정치적 부담감을 맛본 바 있는 배우다. 이에 관해서도 송강호는 “‘변호인’도 마찬가지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택시운전사’가 내 마음 속에서 떠나지 않고 점점 더 커졌다”며 “힘들겠지만 이 이야기의 뜨거움과 열정, 열망을 많은 분들과 공유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고 출연 계기를 밝혔다. 또 함께 출연한 유해진·류준열에 대해서도 “개인적으로 이렇게 어려운 영화를 흔쾌히 출연하고, 열정적으로 뛰어난 연기를 해준 후배 분들이 대견스럽다”고 자랑스러움을 드러냈다.
자리에 함께한 류준열 또한 “제가 태어나기 이전의, 전혀 겪어보지 못한 시간이기 때문에 도전의식이 있었다”며 “벅찬 경험이었다”고 밝혔다. 영화 ‘택시운전사’는 오는 8월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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