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쿡초점] 가학적이고 관음적인 '아이돌학교'… 시대착오도 정도가 있다

[쿡초점] 가학적이고 관음적인 '아이돌학교'… 시대착오도 정도가 있다

기사승인 2017-07-14 16:14:52

[쿠키뉴스=이은지 기자] 성장과 육성이 목표다. 실력보다는 외모와 마음을 본다. Mnet ‘아이돌학교’ 제작진 측의 말이다. 그러나 지난 13일 베일을 벗은 ‘아이돌학교’ 1회는 제작진의 포부가 그저 가면이었음을 증명하는 방송이었다. 차라리 “오로지 예쁜 것만을 추구했다”고 제작발표회에서 밝혔으면 납득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1회에서 스스로 퇴교한 1인을 제외한 출연 학생은 40명이다. ‘아이돌학교’는 그 중 아이돌 멤버로 데뷔할 9명을 뽑는 프로그램이다. ‘프로듀스 101’의 축소판이다. 걸그룹 교육 기관을 콘셉트로 잡아 잠재적 가능성을 지닌 학생들을 뽑겠다는 프로그램이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오디션보다는 관음적 자세가 프로그램 전체에 만연하다. 일반인인 연습생들을 성장해나가는지 지켜본다는 목표 하에 카메라는 40명의 학생을 낱낱이 분해한다.

▲ ‘예쁘니까’라는 교가를 부르며 핑크색 이불에서 화장한 얼굴로 잠드는 소녀들

‘아이돌학교’의 신입생 입학 조건은 ‘예쁘면 된다’다. 얼굴뿐만 아니라 마음과 끼까지 포함했다지만 프로그램이 담고 있는 어떤 프레임 속에서 마음이나 끼는 찾아보기 어렵다. 40명의 학생들은 ‘예쁘니까’라는 교가를 부르며 온통 핑크색으로 꾸며진 학교 안에서 생활한다. 여성은 핑크라는 구시대적 관념을 그대로 나타내는듯한 세트다.

학생들은 한국식 교복이 아닌 일본식 세일러 교복을 입고 몸매를 과시한다. 일본이라면 당연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아이돌학교’는 한국 프로그램이다. 세일러 교복은 한국에서는 다분히 암묵적 섹슈얼 코드로 소비돼왔다. 이에 더해 체육복 또한 일본의 부르마(하의가 극단적으로 짧은 일본의 학생 체육복)를 연상하게 한다. 부르마는 일본에서도 성장기 청소년들에게 필요 없는 노출을 의식하게 한다는 지적 하에 이제는 거의 사라진 복장이다. 교복도 불편하다며 학교에서는 편안하고 헐렁한 생활복을 입는 최근의 한국 10대들을 생각하면 당황스러울 지경이다.

핑크색 이불에서 화장한 얼굴로 잠드는 학생들의 ‘아이돌학교’를 바라보면 이 프로그램의 정체성을 자연스럽게 깨닫게 된다. 포르노 금지 국가인 한국에서 비뚤게 자라난 관음적 성의식과 더불어 어린 여성들을 극단적으로 성 상품화하는 시선, 그런 점들을 다 알고 있으면서도 ‘아니다’라고 딱 잡아떼게끔 만드는 성엄숙주의와 그 사이를 교묘하게 관통하는 여성에 대한 사회적 프레임이 만들어낸 ‘이상한 학교’다.

▲ 이상한 학습 목표… 아이돌이 꼭 극한직업이어야 하는가

지난해 그룹 여자친구가 미끄러운 무대에서 몇 번이나 넘어지면서도 다시 일어나 춤을 추는 영상이 화제가 됐다. 이를 의식한 듯 ‘아이돌학교’에서 아이돌이 되기 위한 훈련 과정이라며 내세운 ‘폐활량 훈련’과 ‘무대위기대처술’등은 훈련이 아닌 강요에 가깝다. 학생들에게 얇은 교복을 입힌 채 물 속에 빠지게 하는 것이 어떻게 아이돌 가수가 되는 훈련일 수 있을까.

가수가 되기 위한 훈련은 노래와 춤, 무대에서의 멋진 태도 등이면 충분하다. 그룹 여자친구가 무대에서 위기를 극복한 것에 주목하며 그들을 찬사하고, 다른 이들에게도 그런 것을 강요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아이돌을 보는 시선이 병들어있음을 증명한다. 정상적인 사고로 돌아가는 사회라면 아이돌이 무대에서 위기를 맞은 것에 반성하고 방재에 힘써야 한다. 아이돌이 위기를 극복하는 것에 박수를 보내는 게 아니라, 무대를 안전하게 만들어 위기 자체를 막아야 하는 것이다.

이에 그치지 않고 ‘아이돌학교’의 카메라는 물에 빠진 학생들의 젖은 체육복 등을 지나칠 정도로 가깝게 관찰한다. 성장기가 채 지나지도 않은 어린 여학생들이 물에 젖어 맨몸이 다 비치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면서도 성 상품화가 없다고 말하는 제작진은 단순히 무신경한 걸까.

▲ 담임선생님과 교장선생님의 놀라운 멘트, 참교육자는 어디에 있는가

지난 12일 서울 여의도 63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아이돌학교’ 제작발표회에서 담임선생님을 맡았다는 슈퍼주니어의 김희철은 “(프로그램을 두고)인터넷에서 (성 상품화라는)글들을 봤을 때 불편했다”며 “제가 촬영했을 때는 전혀 그런 게 없었다”고 밝혔다. 또 “그런 이야기가 오가는 것은 취향의 차이다”라며 “남성과 여성이 편을 나누어 싸우는 것이 이해가 안 간다”고 말하며 방송을 통해 성 상품화 여부를 확인하라고 당부했다.

데뷔한지 10년이 훌쩍 넘은 연예인이 하는 말 치고는 지나치게 순진한 감이 없지 않지만, ‘아이돌학교’를 보고 나면 김희철의 말은 그의 입장에서는 분명 진실이다. 왜냐하면 카메라는 여학생들의 성 상품화에만 치중하고 있으며, 남성 연예인인 김희철에게는 참으로 무던한 시선을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김희철 본인에 대한 성 상품화는 조금도 존재하지 않는다. 또 프로그램의 어떤 부분들은 남성들에게는 아주 당연하고 보편적인 것이다. 그러나 ‘아이돌학교’를 보는 여성들은 여러 모로 불편하다. 남녀의 시선은 갈릴 수밖에 없다.

교장선생님으로 등장한 이순재는 이날 “그녀들이 어느 기간을 넘어서면 시집가서 아내와 엄마가 돼야 한다”며 “은퇴 후에도 떳떳하게 훌륭한 아내와 어머니로서 역할을 하도록 우리가 뒷받침해야한다”고 밝혔다. 아이돌이 되겠다는 소녀에게 아내와 어머니로서의 역할 교육을 하겠다는 교육 방침이라니. 지금은 2017년이고, 프로그램의 제목은 ‘현모양처 학교’가 아니라 ‘아이돌학교’다.

온갖 불협화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돌학교’ 1회 시청률은 평균 2.3%(닐슨코리아 기준)를 기록했다. 제작자 입장에서는 시청률만 잘 나오면 된다고 생각할 수 있다. 2013년 종영한 ‘방송의 적’ 존박의 멘트를 곱씹게 된다. 방송국 놈들. 

onbge@kukinews.com

이은지 기자
onbge@kukinews.com
이은지 기자
이 기사 어떻게 생각하세요
  • 추천해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추천기사
많이 본 기사
오피니언
실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