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쿡리뷰] '더 테이블' 카페 옆 테이블의 이야기를 궁금해한 적이 있나요?

[쿡리뷰] '더 테이블' 카페 옆 테이블의 이야기를 궁금해한 적이 있나요?

기사승인 2017-08-21 16:59:36


[쿠키뉴스=이은지 기자] 카페는 사람들에게 단순히 커피를 마시는 곳 이상의 의미가 된 지 오래다. 카페에 앉아있는 많은 사람들은 대체 어떤 이야기를 나눌까. 영화 '더 테이블'(감독 김종관)은 한 카페의 테이블 위에서 하룻동안 머물렀던 네 가지 이야기를 다룬다. 여덟 명의 사람들이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나누는 대화가 영화의 전부지만, 단조롭기는 커녕 갈수록 흥미롭다. 관객들은 스크린을 통해 자신이 몰랐던 다른 테이블의 이야기를 관음한다.

한 여자가 선글라스에 마스크까지 쓰고 얼굴을 꼭꼭 숨긴 채 카페에 들어와 앉는다. 알고 보니 누구나 얼굴을 알 만큼 유명한 여배우다. 그녀가 그렇게까지 꼭꼭 얼굴을 숨기면서도 굳이 나와 만나는 건 예전에 사귀었던 남자친구다. 추억 속에 남아있던 남자친구를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렸건만, 막상 만나게 된 그는 아름답기는 커녕 생판 남보다 못한 소리를 지껄인다. 눈치가 있는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눈치라고는 아예 없는 데다가 무례하기까지 하다.

알쏭달쏭한 소리를 나누는 남녀가 있다. 언뜻 보기에는 서먹한 사이 같은데, "집에 두고 갔다"며 시계를 꺼내준다. 그 다음 손님들은 더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예쁘장하게 생긴 젊은 여자에게 기품있는 느낌의 중년 부인이 눈웃음을 치며 "이번에는 돈 좀 있는 사람인가 봐?"하고 묻는다. 마지막 손님으로 온 커플의 대화는 의미심장하다. 헤어지라면 헤어지겠단다. 대체 뭐 하는 사람들일까.

'더 테이블'은 한 마디로 관음증을 서정적으로 충족시켜주는 영화다. 카페에 앉아있을 때, 언뜻 들린 옆 테이블의 대화 일부분에 궁금함을 느낀 경험이 있는 관객이라면 '더 테이블'로 궁금증을 조금이나마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낡고 오래된 테이블 위로 오가는 대화들은 너무나 개인적인 나머지 모든 이들이 그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게 만든다. 톱스타와 전남친, 하룻밤 자고 난 뒤 바로 긴 여행을 떠난 남자와 남은 여자, 역할 대행으로 만난 가짜 모녀와 헤어졌지만 헤어지지 않은 연인. 언뜻 자극적인 조합이지만 그 대화를 일상으로 뭉뚱그리는 것은 그들이 떠난 자리를 무심하게 닦아내는 카페 주인의 손길이다.

김종관 감독이 전작들에서 익히 보여준 섬세함은 '더 테이블'에서도 찬란하게 빛난다. 테이블 위에 머무르는 꽃잎의 색, 빛, 바람소리와 빗소리 하나하나 모두 테이블이 관객에게 건네는 대화다. 핑퐁핑퐁, 탁구를 치듯 작중 인물들이 주고받는 대사들에는 탁월한 센스가 녹아 있다. '막장 드라마도 인스타그램 필터로 찍으면 로맨스가 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더 테이블'은 그 농담을 스크린에 실현해냈다. 물론 인스타그램 필터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재미가 있다. 남의 대화만 엿듣기에 70분은 긴 시간일지도 모르지만, '더 테이블'에서는 짧디 짧다.

onbge@kukinews.com

이은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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