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이은지 기자] ‘여배우는 오늘도’(감독 문소리) 를 보고 임순례 감독은 배우 문소리를 향해 말했다. “연기도 잘하는데 연출까지 잘하면 어떻게 하지?” 영화 ‘여배우는 오늘도’는 연기도 잘하고, 연출도 잘하지만 배역 러브콜은 끊긴 데다가 엄마이자 며느리, 딸 역할까지 해내야 하는 데뷔 18년 차 문소리의 일상을 그린 영화다. 한국 대표 여배우 문소리의 첫 번째 감독, 각본, 주연작이며 부산국제영화제, 전주국제영화제, 로카르노국제영화제 등 국내외 영화제에 초청돼 호평 받은 단편 연출 3부작을 모았다.
단편 3부작은 1막부터 3막까지로 바뀌어 문소리의 일상을 그려낸다. 분명 픽션인데, 너무나 리얼한 영화 속 문소리의 일상은 가슴을 찌르며 다가온다. 1막은 “그 작품 안 됐어, 나보다 더 젊고 예쁜 애가 하겠지.”하고 아무렇지 않은 듯 이야기하다가도 “메릴 스트립처럼 하라”라는 친구의 말에 버럭 화내며 “네가 더 나빠!”라고 말하는 배우 문소리의 이야기를 다룬다. 2막은 여배우이며 엄마이자 며느리, 딸, 그리고 아내의 삶까지 모두 아울러야 하는 문소리의 일상이 담겼다. “하나만 줄이라”라고 말하는 남편에게 “어머니도 한 명이고 딸도 한 명이고 작품은 1년에 한 개 할까 말까 하는데, 내가 뭘 어떻게 줄이냐”고 말하는 술 취한 문소리의 모습은 우리를 닮았다.
‘여배우는 오늘도’는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라는 찰리 채플린의 말을 절로 떠올리게 한다. 영화는 올해 개봉한 그 어떤 코미디보다도 웃기지만, 눈물까지 줄줄 흘리며 웃고 난 뒤에는 씁쓸함이 그 자리를 채운다. 배우들은 마냥 영화처럼 멋지게 살 거라고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너무나 일상적인 비극들 앞에 ‘문소리마저’ 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어떤 업계에서든 18년차 전문가쯤 되면 멋지게 살아야 하는 것 아닐까 싶지만 삶은 녹록치 않다.
거기에 더해 ‘예쁘다’는 말에 대해 집착하는 문소리의 모습에서 관객들은 우리 사회의 자화상을 본다. ‘여배우’는 젊어야 하고, 예뻐야 하며, 매력도 넘쳐야 하는데 연기는 당연히(?)잘해야 한다. 그 모든 것을 갖춘 여배우들은 수두룩한데, 배역은 없다. ‘시나리오가 없다’ ‘배역이 없다’던 수많은 베테랑 여배우들의 이름을 우리는 열 명은 꼽을 수 있다.
문소리는 31일 오후 서울 자양동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점에서 열린 '여배우는 오늘도' 언론시사회 및 기자간담회에서 “신인으로서 행운을 거머쥐고 영화 ‘박하사탕’ 오디션에 합격해 데뷔했었는데, 그 때 종종 나에 대해 ‘여배우 할 만큼 예쁘지 않다’는 주변인들의 말이 많았다”고 말했다. 이어 문소리는 “그 때 ‘예쁜 게 뭐지?’ 싶었다”며 “이창동 감독님께 여쭤 봤더니 '소리야, 넌 충분히 예쁘다. 그런데 다른 여배우들이 지나치게 예쁘다. 하지만 넌 배우를 하기에 충분히 아름답다'고 하시더라”라고 설명했다. ‘배우를 하기에 충분히 아름다운’건 어떤 기준일까. 이창동 감독의 말은 비단 여배우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여성들이 고민하고 의문을 가질 만한 이야기다.
이어 문소리는 “이 영화는 픽션이지만, 100% 진심이다”라며 “작중 내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유사한 감정이 든 일들이 합쳐져 이야기가 만들어졌고, 진실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나도 실제 있었던 일인지 가끔 헛갈릴 정도였다”고 설명했다. 문소리의 진심이 담긴 ‘여배우는 오늘도’는 다음 달 14일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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