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쿡리뷰] '비밥바룰라' 노인이라고 해서 민폐가 정당해지지는 않는다

[쿡리뷰] '비밥바룰라' 노인이라고 해서 민폐가 정당해지지는 않는다

기사승인 2018-01-20 00:00:00

손주와 며느리를 끔찍이 아끼는 노인 영환(박인환)은 친구 순호(신구)와 현식(임현식)과 함께한 미팅에 실패한 후“다들 하고 싶은 거 한 가지씩 해 보자”고 나선다. 영환이 가장 하고싶었던 것은 집을 한 채 지어 친구들과 함께 사는 것. 버킷리스트를 실행하기 위해 영환은 오래 전 연락이 끊긴 친구 덕기(윤덕용)를 찾아나서는 것부터 시작한다.

‘비밥바룰라’(감독 이성재)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노인 세 명의 좌충우돌을 그린다. 영환은 경찰인 아들까지 동원하며 건강식품 다단계 조직에서 덕기를 구출하는가 하면, 치매에 걸린 순호의 아내 미선(최선자)의 기억 복기를 위해 어설픈 연기까지 시도한다. 첫사랑 혜자를 아직도 잊지 못한 현식을 위해 혜자가 경영하는 양장점 앞까지 현식을 데리고 가 문 안으로 밀어 넣기도 한다.

젊은 남자, 혹은 중년의 남자들만 가득한 한국 영화에서 노인들의 인생을 그린 시도는 그 자체로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영화의 안팎에서 느껴지는, 의도가 좋다고 해서 결과물까지 좋게 평가되리라는 생각은 기만이다. 자칭 연애학박사, 카사노바를 표방하는 현식은 “이 집 음식이 기똥차다”며 식당 여주인의 어깨를 쓰다듬는다. 이 장면은 캐릭터를 설명하려는 의도도, 성희롱에 대한 사회적 비판도 없이 그냥 지나간다.

혜자의 급한 일 때문에 과속하고 불법 주행을 하던 순호의 택시는 경찰에게 붙잡힌다. 이 과정에서 현식은 혜자에게 합의되지 않은 스킨십을 시도한다. 법을 어겼으면 벌금을 내야 하지만 영환은 “환자가 있다”며 거짓말하고, 현식은 뒷좌석에서 아픈 척 연기한다. 경찰은 결국 “먼저 길 안내하겠다”며 순호의 택시 앞에서 길을 인도한다. 노인들의 재치와 ‘유우-머’를 설명하려던 장면은 그렇게 불편한 민폐만 남긴다. 노인들을 따뜻하게 바라보고 싶었던 관객의 시선은 비슷한 장면들이 거듭될수록 차게 식는다.

영화의 전개는 기-승-전-결이 아닌 기-결-기-결을 반복한다. 차라리 일일드라마였다면 납득할 수 있는 방식이다. 반복되는 디졸브는 영화의 맥을 끊는다. 노인들이 나온다고 해서 연출까지 올드할 필요가 있을까. 19일 오후 서울 영동대로 메가박스 코엑스점에서 열린 ‘비밥바룰라’ 언론시사회 후 기자간담회에서 이성재 감독은 “그동안 한국 영화에서는 노인을 바라보는 시선이 젊은 사람들과 대등하기보단 '노인이니깐'이었다”며 “이런 부분을 벗어나 누구나 즐겁고, 경쾌하게 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연출 의도를 피력했다. 경쾌하게 보기에는 많은 것들이 경박하다. 맥없는 연출 앞에 노배우들의 명연기마저 빛이 바랜다. 24일 개봉. 

이은지 기자 onbge@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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