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틀 포레스트’(감독 임순례)는 눈밭을 걸어 오래된 토담집으로 향하는 혜원(김태리)의 모습으로 시작된다. 어떤 부연설명도 없이 빈 집에 들어가 쌀독에는 한 줌의 쌀이, 찬장에는 밀가루 한 줌이 남아있는 것을 확인한 혜원은 밥을 한 후 먹는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일어나 남은 밀가루를 반죽해 수제비를 해 먹는다. 밀가루 반죽이 발효되는 사이 마당으로 나가 집의 눈을 쓸고 들어갈 때, 낯익은 누군가가 저 편에서 차를 몰고 가다가 이쪽을 한 번 보고 씩 웃는다.
‘리틀 포레스트’를 조야하게나마 비유하자면 ‘한국인의 밥상’ 김태리 편으로도 요약할 수 있겠다. 원작을 보지 않은 관객들에게 “조금 쉬어가도 괜찮다”는 메시지만 담고 있는 포스터는 영화의 내용을 짐작하기에는 불충분하다. 임용고시에 떨어진 혜원이 시골에서 새 인연을 만나는 내용일까? 혹은 우정과 사랑 사이에서 고민하는 내용일까? 아니면 힘을 얻고 다시 도시로 돌아가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이야기일까.
영화는 그 모든 이야기를 다 담고 있지만, 세 사람의 서사를 다루기보다는 혜원의 삶을 그대로 화면에 펼쳐낸다. 겨울에 돌아온 혜원은 눈을 쓸고 친구를 만나며 막걸리를 담고, 봄에는 쑥을 뜯고 감자를 심는다. 예쁘게 핀 꽃을 뜯어 파스타 위에 올리고 감아 먹으며 초여름에는 잔뜩 핀 아카시아를 튀겨 씹는다. 한여름에는 수박을 먹다가 친구와 다투고, 다슬기를 잡으며 화해한다. 가을에는 감을 깎아 곶감을 만들며 친구의 지적에 제 삶을 돌이켜본다. 그 다음 날 친구는 가을 폭풍에도 떨어지지 않은 사과를 내밀며 미안한 마음을 전한다. 계절을 한 바퀴 돌아 겨울. 혜원은 아주심기를 준비한다.
두 시간 동안 캐릭터들이 가진 서사를 펼쳐내고, 에피소드가 벌려졌다 마무리되는 것을 흔히 영화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임순례 감독은 영화 전부터 있어왔을, 그리고 영화 이후로도 펼쳐질 혜원의 삶의 한 순간을 담아내는데 족한다. 그러나 관객은 ‘리틀 포레스트’에서 혜원의 한 순간이 아닌 스크린 너머로 계속될 혜원의 인생을 짐작하며 함께 길을 닦아나간다.
혜원이 수더분하게 그릇에 담아내는 제철 음식들은 혜원뿐만 아니라 그 재료를 가꾸고 만들어낸 사람들, 그리고 레시피를 알려준 사람의 인생들까지 함의한다. 한 번의 식사에 오만 가지 감정과 삶이 펼쳐진다. 오는 28일 개봉.
이은지 기자 onbg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