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검찰의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재판거래’ 의혹 관련 자료 제출 요구에 일주일째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대법원은 25일 “임의제출이 개인정보보호법 등 관련 법령에 위배되지 않는지 검토할 필요가 있는 등 여러모로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며 “제출 가능한 자료의 준비가 완료되는 대로 검찰에 제출하는 등 수사에 협조하겠다”고 밝혔다. 양 전 대법원장 등의 하드디스크를 ‘통째로’ 넘겨달라는 요구가 나온 만큼 제출에 신중을 기하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검찰은 앞서 대법원이 공개한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특별조사단’의 조사 관련 내용 일체에 대한 임의제출을 요구했다. 양 전 대법원장을 비롯해 당시 법원행정처 간부 및 심의관들이 사용했던 컴퓨터 하드디스크 제출도 요청됐다.
검찰은 고발인 조사를 진행하며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부장검사 신자용)는 같은 날 오전 10시 전국공무원노조 법원본부(법원노조) 조석제 본부장을 소환, 고발 취지를 청취했다. 조 본부장은 출석에 앞서 “사법농단의 전모가 명명백백히 밝혀질 수 있도록 철저한 수사를 촉구할 것”이라며 “대법원은 치외법권 지역이 아니다. 검찰이 압수수색할 수 있도록 (대법원은) 적극 협조해야 한다”고 말했다. 법원노조는 지난달 30일 양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 전 법원행정처장,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등을 직권남용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재판거래 의혹 관련 검찰의 고발인 조사는 이번이 세 번째다. 검찰은 지난 21일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소장인 임지봉 서강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를 소환해 고발 경위를 물었다. 지난 22일에는 민주주의법학연구회 대표인 조승현 방송통신대 법학과 교수가 고발인 자격으로 검찰에 출석했다. 이들은 각각 양 전 대법원장과 당시 법원행정처 고위직 등을 직권남용 혐의로 고발했다.
고발인 조사가 발 빠르게 진행되고 있으나 수사 속도는 지지부진하다. 검찰이 수사 자료를 확보하지 못 한 상태에서 속도를 내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장고 중인 대법원이 검찰의 요구에 온전히 응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대법원 내에서는 요구한 자료에 대한 임의제출이 불가하다는 의견이 일고 있다. 대법원 내부 검토 결과, 법원행정처에서 대법원장과 대법관 등이 쓰던 하드디스크 일체를 임의처분할 수 없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으로 전해졌다.
일각에서는 향후 대법원이 자료를 선별 제출할 경우, 검찰이 법원행정처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할 것이라는 지적이 인다.
앞서 대법원 특별조사단에 따르면 양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에서 상고법원 입법 추진을 위해 재판개입과 판사사찰을 시도한 정황이 확인됐다. 지난 2015년 법원행정처에서 작성된 ‘상고법원 관련 BH 대응전략’ 문건에는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국정원)장의 ‘국정원 댓글 사건’을 청와대에 대한 접근 소재로 활용 가능하다는 내용이 기재됐다. ‘세월호 7시간 의혹’을 제기한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 사건, 박지원 당시 민주통합당 의원의 정치자금법 일부 유죄 판결 등도 거론됐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지난 15일 재판거래 의혹 해소를 위해 검찰에 직접 고발하는 대신 수사에 적극 협조하는 방향을 택했다. 그는 “수사가 진행될 경우, 미공개 문건을 포함해 특별조사단이 확보한 모든 인적·물적 조사 자료를 적법한 절차에 따라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이소연 기자 soyeon@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