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고 합니다. 한 달 전 누구를 만났는지, 지난주 점심 메뉴는 무엇이었는지 머릿속에 쉽게 떠오르지 않죠. 반면, 수백 년 전 왕의 이름이나 수십 년 전 발생했던 전쟁 등에 대해서는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기록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기록되지 않은 일은 결국 잊힙니다.
세월호 참사 손해배상소송도 국가의 책임과 역할이 기록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됐습니다. 2년여의 지난한 심리 끝에 또 하나의 기록이 판결문에 새겨졌습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30부(부장판사 이상현)는 19일 전명선 4·16 세월호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 등 유족들이 국가와 청해진 해운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희생자 1명당 위자료 2억원씩을 지급하라고 판결했습니다.
재판부는 이날 “해경이 승객 퇴선 조치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며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할 의무를 다하지 못했다”고 지적했습니다. 또한 “유족들이 엄청난 정신적 충격을 받았다”며 “4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침몰 원인에 대한 책임소재 및 배상과 관련한 분쟁이 계속되는 점, 다시는 이런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할 필요가 크다는 점 등을 참작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정부는 판결문에 기록된 국가의 역할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언제 어디서든 국민을 보호하고 지켜야 할 의무가 있다는 점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당위적 명제 확인에 그쳐서도 안 됩니다. 참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반성과 쇄신이 필요합니다. 그동안 국가는 참사에 고개 숙일 뿐 이를 되돌아보지 않았습니다. 세월호 참사는 지난 1993년 292명의 사망자를 낸 서해훼리호 침몰사고와 판박이라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지난해 12월 발생한 충북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의 경우, 불에 취약한 마감재인 ‘드라이비트’가 피해를 키운 원인으로 지목됐습니다. 드라이비트는 지난 2015년 130명의 사상자가 나온 경기 의정부 화재에서도 문제로 지적됐죠. 또 어린이집 차량사고처럼 반복되는 참사도 있습니다.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철저한 구조 체계와 예방책 등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올바른 기록을 위해 입을 열어야 할 이들도 있습니다. 침묵 중인 박근혜 정부의 관계자들입니다. 비극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세월호 참사 당일 왜 제대로 된 구조가 이뤄지지 않았는지 규명돼야 합니다. 보고 시간 조작과 위증이 드러났지만 여전히 맞춰지지 않는 퍼즐이 존재합니다. 당시 콘트롤타워의 문제점을 알아야 개선도 가능합니다.
지난 10일 태국 동굴에 갇혀있던 13명이 무사히 구조됐습니다. 지난 2010년에는 칠레 산호세 광산에 매몰됐던 광부 33명이 69일 만에 구출됐죠. 이들의 생환은 ‘기적’이 아닙니다. 국가가 국민을 지키고자 하는 책임을 다해 이룬 결실입니다. 더 이상 타국의 사례를 부러워만 할 수는 없습니다.
이소연 기자 soyeon@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