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추석을 보내는 사람들’(혼추족)이 늘어나는 추세다. 그 이면에는 취업난, 경기 불황, 가족 관계 단절 등 사회 문제가 자리하고 있다.
취업포털 ‘인크루트’와 아르바이트 O2O 플랫폼 ‘알바콜’이 지난 19일 직장인·구직자 1106명을 대상으로 추석 계획에 대해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 53%는 “귀향 계획이 없다”고 답했다. 명절 의미가 퇴색되면서 가족들과 차례를 지내기보다는 개인 시간을 가지는 이들이 늘어난 것이다. 혼추족들이 고향을 찾지 않는 이유는 시험 준비, 해외여행 등 다양하다.
▲계속되는 취업난·경기 불황…명절에도 쉬지 못하는 혼추족
통계청이 지난 12일 발표한 ‘8월 고용 동향’에 따르면 청년실업률은 외환위기 이후 처음으로 10%대를 기록했다. 고용쇼크가 이어지면서 취업준비생(취준생)은 추석에도 고향으로 향하지 못한다. 지난 18일 서울 노량진에서 만난 공무원 준비생 박모(28)씨는 “이번 추석에 본가가 있는 대전으로 가지 않는다”며 “공부 흐름이 끊길 수도 있고,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지 못한 상황에서 가족들을 볼 면목이 없다”고 이야기했다. 또 지난달 대학교를 졸업한 최모(25)씨는 “자기소개서 작성, 면접 스터디 등을 하면서 추석 연휴를 보낼 예정”이라고 말했다.
고용 문제에 경기 침체까지 겹쳤다. 이번 해 경제성장률은 지난 2012년(2.3%) 이후 최저치를 기록할 전망이다. 이에 추석 연휴에 쉬지 못하고 일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불경기 속에서 자영업자들은 연휴 중 쉬는 날을 줄이는 분위기다. 서울 용산 한 대형마트에서 일하는 윤모(42)씨는 “고향에 가지 않고 계속 일할 예정”이라며 “명절에는 음식재료 비용, 조카 용돈 등 돈 나갈 곳이 많다. 차라리 일하면서 돈 버는 게 낫다”고 말했다. 윤씨와 같은 이유로 일부 직장인들은 교대 근무를 자처하기도 한다.
▲고향 대신 해외로…취업·결혼 질문은 ‘NO’
추석 연휴에 고향 대신 해외로 떠나는 사람도 늘었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추석 연휴 출국자 수는 지난 2010년 이후 완만한 증가세를 보여왔다. 지난해에는 열흘간의 황금 휴일을 계기로 100만 명을 넘어섰다. 이는 전년 대비 3배 이상 급등한 수준이다. 이번 연휴에 싱가포르로 떠난다는 직장인 이모(31)씨는 “평소에 해외여행 가기 쉽지 않아 명절이 기회”라며 “가족에게 미리 양해를 구하고 다녀오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가족의 잔소리를 듣기 싫어서 일부러 귀성하지 않는 혼추족도 많다. 구인구직 사이트 사람인이 지난 11일 ‘추석 연휴 스트레스 원인’에 대해 조사한 결과 미혼자들은 ‘어른들의 잔소리’(33.5%)를 첫 번째로 꼽았다. 가장 듣기 싫은 잔소리는 ‘결혼은 언제 하니’(30.7%)였다. ‘취업은 했니’(9.6%) ‘월급은 얼마야’(8.8%) 등이 뒤를 이었다.
▲1인 가구 증가도 영향…“가족 관계 멀어져”
1인 가구의 증가도 혼추족 양산과 무관하지 않다. 통계청 조사 결과 지난해 1인 가구가 562만 명에 이르면서 전체 가구 중 28.6%를 차지하게 됐다. 이는 4인 가구(17.7%)와 5인 이상 가구(5.8%)를 합친 것보다 높은 수치다. 오는 2035년에는 763만 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숭실대학교 인근에서 자취를 하고 있는 김모(26)씨는 “혼자 지내는 게 익숙해졌고 편하다”며 “부모님 사이가 좋지 않아 추석에 가족을 만나러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동아대학교 A 교수는 “취업이 힘들고 주머니 사정이 나빠지면서 명절에 개인적인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다”며 “명절을 보내는 방식이 과거처럼 일률적이지 않고 다양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다만 가족 간 사이가 멀어진 점이 아쉽다”면서 “여건이 된다면 명절만큼은 가족과 보내면 좋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김도현 기자 dobest@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