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을 기록한 활판인쇄로 발행된 창간호인 ‘조선독립신문’과 일본에 의한 고종황제 독살설을 주장한 필사본 ‘국민회보’가 처음 공개됐다.
부산시(시장 오거돈) 시립박물관은 부산 남구에 거주하는 김석동 씨로부터 부친 김장오 씨가 귀중하게 보관해 온 지하신문(정상적으로 발간되지 못하고 암암리에 발간돼 단속을 피해 배포되는 신문) 2점을 지난 1일자로 기증받았다고 26일 밝혔다.
기증 유물은 1919년 3월 1일 발행한 ‘조선독립신문’ 창간호와 1919년 3월 1일 손으로 직접 써서 배포된 발행자 미상의 ‘국민회보’이다.
‘조선독립신문(신문사장 윤익선)’은 1919년 3월 1일 서울 천도교 인쇄소인 보성사에서 이종일, 이종린, 윤익선이 주도해 창간했으며, 당시 독립선언서와 함께 인쇄돼 3월 1일 전격적으로 배포한 지하신문이다.
손병희, 김병조 등 민족대표 33인이 태화관에서 3월 1일 오후 2시에 독립 선언한 사실과 민족대표 33인의 체포사실(종로경찰서 연행), 독립운동을 촉구하는 내용(비폭력운동 방침 포함)을 담고 있다.
시립박물관에 기증된 ‘조선독립신문’은 활판인쇄 1만부(윤익선의 경찰 신문에서 1만부 발행 진술) 중의 한 점으로 추정되며, 규격은 가로 19.4cm, 세로 22.5cm으로 A4크기보다 조금 작은 크기이다.
함께 공개된 ‘국민회보’는 1919년 3월 1일자 필사본인 발행처 미상의 지하신문으로 “아대행태상황제폐하 붕어에 원인” 이라는 제하에 일본에 의한 고종의 독살설을 제기하고 “가칭선일동화함을 증명한 역적들”로 귀족대표 이완용 등 6인을 지목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국민회보’는 실물이 거의 남아있지 않고 간접적인 기록으로만(극비문서, ‘독립운동에 관한 건’, 제7보,1919.3.6, ‘독립운동에 관한 건, 제43보 4.10, 해외의 한국독립운동사료에서 확인, 이번에 실제로 그 존재를 확인했다.
3월 1일로 날짜는 표기되어 있으나 지하신문들은 대부분 3.1일 이후 발행됐기 때문에 이후에 발행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규격은 가로 38.2cm, 세로27.2cm 크기이다.
경술국치 후 총독부는 한국인이 발행하는 일간지를 모두 폐간해 1910년대에는 한국인은 신문을 발행할 수 없었다.
1919년 3·1일 이후의 지하신문 발행은 대안언론으로서의 역할을 하며 독립운동의 실상을 알리고 독립사상을 고취시켜 독립운동을 전국적으로 확산시키는 데 큰 기여를 해왔다.
시 관계자는 “이번에 기증받은 사료들은 올해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더욱 큰 의미를 가지는 사료로 향후 독립운동사료 전문가들과 협의해 그 가치를 명확히 할 계획이다”고 밝혔다.
한편 이번에 공개된 자료들은 다음달 1일부터 6월 9일까지 부산근대역사관(중구 대청동) 기획전시실에서 개최되는 3·1운동 100주년기념 특별기획전 ‘저항×2–3·1운동과 명정학교’ 전시를 통해 일반시민에게 공개할 예정이다.
부산=강민한 기자 kmh0105@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