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3월 A매치 평가전을 향한 관심사 중 하나는 한국 축구를 이끌 차세대 재목들의 출전 여부였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백승호(22·지로나)와 이강인(18·발렌시아)은 단 1분도 경기에 뛰지 못했다. 이에 상당수의 팬들은 파울루 벤투 감독의 대표팀 운영에 비판을 보내고 있다.
벤투 감독이 평가전에서 지나치게 ‘진지’했던 것은 맞다. 평가전은 총 6개의 교체카드를 사용할 수 있는데 벤투 감독은 볼리비아전과 콜롬비아전 모두 교체카드를 남겨뒀다.
팬들로선 의아할 수 있다. 평가전은 의미 그대로 실험하고 평가하는 무대다. 아시안컵이나 월드컵 등과 같이 결과로 증명해야 되는 자리는 아니다. 승패에 대한 부담감이 덜한 평가전에서 전술, 선수기용 등을 이것저것 시도해봐야 한다는 것이 보편적 인식이다.
하지만 벤투 감독의 생각은 다르다.
볼리비아전이 종료된 뒤 벤투 감독은 ‘교체 카드가 남았는데 이강인을 투입할 생각은 없었느냐’는 질문에 “6장의 교체카드는 다 쓸 수도, 쓰지 않을 수도 있다”며 “4명을 바꾼 이후 더 변화를 주는 게 좋지 않다고 판단했다”고 답했다.
평가전을 대하는 벤투 감독의 태도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에 따르면 그는 실전과 같은 평가전을 선호하는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보아온 그는 경기력과는 별개로 승리 여부에 초점을 맞추는 감독이기도 하다. 타이트하게 경기를 운영해 결과물을 가져온 뒤, 단계적으로 문제점을 보완해나가는 방식을 선호하는 듯하다. 승리를 거머쥐기 위해 신경전도 불사한 콜롬비아는 아마 벤투 감독에겐 최적의 상대였을 것이다.
이강인, 백승호 등을 투입하지 않은 것도 아쉽지만 이해할 수 있다. 접전에서, 대표팀 선수들조차 승리하기 위해 악을 썼던 경기에서 검증 되지 않은 자원을 내보내는 것은 '모험’도 아닌 ‘도박’에 가까웠을 터다. 국내 축구팬의 기대감을 모를 리 없지만, 벤투 감독은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축구 철학을 철저히 지켰다. 누군가는 고집이라 폄하해도 말이다.
성과를 내지 못했다면 상황은 달라졌겠지만 어쨌든 벤투호는 FIFA 랭킹 12위의 강호를 꺾었다. 스포츠에서 ‘위닝 멘탈리티’는 매우 중요하다. 이기는 것도 습관이다. 대표팀은 전력으로 맞불을 놓은 콜롬비아를 꺾었다. 아시안컵 이후 가라앉았던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실험은 도대체 언제 하느냐’는 반문이 나올 수는 있다.
하지만 벤투호는 나름의 실험과 테스트를 지속하고 있다. 이승우 등의 사례로 볼 때 벤투 감독은 실전보다는 대표팀 훈련과 소속팀에서의 활약을 통해 선수를 파악하는 스타일이다. 대표팀에 필요한 자원인지, 기존 선수들과 비교해 경쟁력이 있는지를 신중하게 분석한다.
이강인과 백승호은 이제 막 벤투 감독의 레이더에 포착됐다. 시간이 더 필요하다. 어린 선수들을 바라보는 국내 팬들의 시선과 외국인 감독의 시각에는 분명한 차이가 존재한다.
벤투 감독은 콜롬비아전 종료 후 이강인과 백승호에 대해 “앞으로도 계속 관찰할 예정”이라면서 “이번 소집을 통해 어린 선수들의 능력을 확인했다. 소속팀에서 어떤 활약을 하는지 계속 체크하겠다. 대표팀에서 어떤 활약을 펼칠 수 있을지, 이 선수들을 알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고 말했다. 이는 계획에 따라 단계적으로 이들을 대표팀에 녹여낼 것이라는 말로 읽힌다.
볼리비아전과 콜롬비아전에서 아예 실험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최전방 공격수로 손흥민을 기용했고 권창훈과 이재성, 나상호, 이승우 등을 차례로 투입하며 2선 자원을 검토했다. 여러 선수 조합을 시도해 한국 축구의 새로운 '색깔'을 만들려 노력 중이다.
주장 손흥민의 말처럼 대표팀은 그 누구의 팀도 아니다. 벤투호의 궁극적인 목표는 ‘원 팀’이다. 일부 축구팬들의 원성에 떠밀려 감독의 철학이 무너진다면 팀도 덩달아 흔들릴 수 있다.
손흥민은 콜롬비아전이 끝난 뒤 작심발언을 했다.
그는 골을 넣은 자신에게 관심이 주목되는 것이 미안하다면서 “이 팀은 내 팀이 아닌 모두의 팀이다. 오늘도 선수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골을 기록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어린 선수들도 중요하나 나머지 선수들도 중요하다. 대표팀은 한국에서 축구를 제일 잘하는 사람만 오는 곳”이라면서 “어린 선수들이 캠프에 와서 열흘 훈련하고 경기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성장한다. 난 (그들의 성장이) 눈에 보였다”고 말했다.
손흥민은 마지막으로 “당장 어린 선수들이 경기에 나오지 않아 아쉬워하는 팬들이 많겠지만, 이건 장기 레이스이고 길게 봐야 한다”며 “너무 많은 관심을 쏟기보다 묵묵히 뒤에서 응원해준다면, 이 선수들은 알아서 큰 선수로 성장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