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경남FC와 대구FC간의 K리그1 경기가 열린 창원축구센터는 유난히 떠들썩했다. 잘 나가는 도시민 구단끼리 맞붙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4.3 보궐선거를 앞두고 각 정당 정치인들이 선거 유세를 위해 경기장을 찾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부 정치인들이 연맹 규정을 어기면서까지 선거 유세를 벌인 바람에 홈 팀인 경남이 곤란한 상황에 처했다. 경남은 현재 프로축구 연맹의 징계 처분을 기다리고 있다.
국제축구연맹(FIFA)은 축구장 내 정치적 행위를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다. 프로축구연맹과 대한축구협회 역시 각각 정관 제3조와 5조를 통해 경기장 내 선거운동을 금지 중이다.
연맹 규정에 따르면 경기장 내에서 정당명·기호·번호 등이 노출된 의상 착용은 금지된다. 만약 이를 어길 경우 연맹은 홈팀에 10점 이상의 승점 감점이나 무관중 홈경기, 제 3지역 홈경기, 2000만원 이상의 제재금 부과 등의 중징계를 내릴 수 있다.
경남 측에 따르면 이날 자유한국당의 황교안 대표와 강기윤 후보는 출입구 경비원들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막무가내로 경기장에 들어섰다. 이들 중 일부는 티켓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점퍼를 입고 선거 유세에 열중인 황 대표 일행을 경남 구단이 나서 말렸지만 꿈쩍도 않았다. 오히려 “어떤 규정을 근거로 우리를 막느냐”며 고압적인 자세로 맞섰다.
경남은 억울하다는 입장이지만 프로연맹 경기위원회는 “규정을 위반해 징계가 필요하다”며 상벌위원회 회부를 결정했다. 2일 오전 열리는 회의를 통해 만약 승점 10점 감점이라는 징계가 내려진다면 사실상 경남의 우승 도전은 어려워진다.
스포츠를 정치 도구로 활용하는 정치권의 행보야 새삼스럽지 않지만 한국당의 이번 행보는 도를 넘었다는 지적이다. 경남과 한국당의 악연을 떠올리면 염치가 없다는 비아냥도 있다.
2014년 경남은 성적 부진으로 인해 승강 플레이오프까지 떨어졌다. 2006년 창단 이후 처음으로 2부 리그 강등 위기에 놓였다. 그러자 당시 구단주였던 홍준표 도지사(前 한국당 대표)는 격려는커녕 자신의 SNS에 “2부 리그로 떨어지면 구단 운영을 하기 힘들다”며 협박 아닌 협박을 했다.
결국 경남은 광주FC에게 패하며 강등됐다. 가까스로 해체는 면했지만 구조조정에 들어가며 허리띠를 졸라맸고, 2017시즌 승격하기까지 긴 암흑기를 맞았다.
이렇듯 구단의 존폐까지 운운했던 한국당이 경남FC, 그리고 K리그에 찾아온 흥행 열기에 편승해 표심을 구걸하는 모습이 곱게 보일 리 만무하다.
갖가지 논란으로 인해 폐허가 됐던 경남은 지난 시즌에야 비로소 꽃을 피웠다. 김종부 감독과 프런트의 노력으로 K리그1 준우승을 차지했다. 이는 도시민구단 역사상 K리그 최고 순위다.
올 시즌에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출신의 조던 머치를 영입하는 등 ‘통 큰’ 투자로 눈길을 사로잡았다. 이에 홈 관중도 지난 시즌에 비해 적지 않은 폭으로 늘었다.
하지만 정치권이 얹은 숟가락 하나가 밥상을 통째로 엎은 꼴이 됐다.
경남이 곤란한 처지에 놓였지만 한국당은 책임을 회피하며 변명으로 일관하는 모양새다.
한국당 측은 “이런 논란이 빚어진 것에 유감을 표한다”면서도 “사전에 선거관리위원회에 문의한 결과 후보자가 선거 유니폼을 입고 입장해도 된다는 유권해석을 받고 들어갔다. 현장에서 경남FC 측의 지적을 받고 바로 평복으로 환복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경남선관위가 “공개된 장소가 아닌,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는 경기장 안에서 선거운동을 하는 것은 위법의 소지가 있다”고 밝힘에 따라 후폭풍은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