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 촉발’ 안태근 2심서도 실형 선고…법원의 ‘성인지 감수성’ 얼마나 달라졌나

‘미투 촉발’ 안태근 2심서도 실형 선고…법원의 ‘성인지 감수성’ 얼마나 달라졌나

기사승인 2019-07-19 06:21:00

미투(me too·나도 고발한다) 운동의 1호 가해자로 지목됐던 안태근 전 검사장이 항소심에서도 실형을 선고받았다. 미투 이후 성범죄에 있어 전향적인 법원의 판단이 속속 나오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1부(부장판사 이성복)는 18일 오후 안 전 검사장의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에 대한 선고 공판에서 1심과 같이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검찰 인사 실무를 총괄하는 법무부 검찰국장 시절이던 지난 2015년 8월 자신이 성추행한 서지현 검사가 수원지검 여주지청에서 창원지검 통영지청으로 발령되는 과정에 부당하게 개입한 혐의를 받는다. 1심 재판부는 유죄를 인정, 징역 2년을 선고하고 법정구속 했다. 

2심의 판단도 1심과 같았다. 2심 재판부는 “피고인의 추행을 목격한 검사가 다수이고 법무부 감찰관실에서 진상조사까지 나선 점 등을 고려하면 피고인은 서 검사를 추행한 사실을 인식했을 것”이라며 “피고인이 인사권을 남용함으로써 성추행 피해자인 서 검사는 인사상 불이익 외에도 제대로 된 사과조차 받은 바 없다”고 판시했다.

안 전 검사장에 대한 이번 판결은 미투 운동을 촉발시킨 사건에 대해 유죄 판결을 내렸다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서 검사는 지난해 1월 검찰 내부 통신망에 안 전 검사장의 성추행 사실을 고발하며 국내 미투 운동의 불을 지폈다. 서 검사의 미투 이후 각계각층에서 고발이 이어졌다. 파급력에도 불구하고 안 전 검사장에 대한 무죄 가능성이 높게 점쳐졌다. 그러나 법원은 이러한 인식을 깨고 안 전 검사장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법원은 미투 운동 이후 ‘성인지 감수성’을 판단의 기준으로 제시했다. 성인지 감수성은 양성평등의 시각에서 일상생활에서 성별 차이로 인한 차별과 불균형을 감지해내는 민감성을 뜻한다.

서 검사의 미투 3개월여만인 지난해 4월12일 대법원2부(주심 권순일 대법관)는 “법원이 성희롱 관련 소송의 심리를 할 때는 그 사건이 발생한 맥락에서 성차별 문제를 이해하고 양성평등을 실현할 수 있도록 성인지 감수성을 잃지 않아야 한다”고 밝혔다. 대구의 한 사립 전문대학 교수가 학생 성희롱으로 해임되자 불복해 소송한 사건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리면서다. 

당시 대법원은 “가해자가 교수이고 피해자가 학생이라는 점, 학생들의 취업에 중요한 추천서 작성 등을 빌미로 성적 언동이 이뤄진 정황 등을 충분히 고려해 피해자 입장에서 성적 굴욕감이나 혐오감을 느낄 수 있는 정도였는지를 기준으로 심리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의 판결은 하급심에도 영향을 미쳤다. 지난 2월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성폭력 사건 2심에서는 “성인지 감수성을 잊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며 1심을 뒤집고 실형을 선고했다. 1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았던 안 전 지사는 징역 3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 됐다. 

전향적인 판결은 또 있다. 대법원은 지난 11일 손을 잡는 등 일부 신체 접촉을 허용했더라도 ‘기습키스’한 것은 강제 추행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3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성폭행 피해자의 대처 양상은 가해자와의 관계 및 구체적 상황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 피해자라면 마땅히 이렇게 했을 것이라는 기준을 내세워서는 안 된다”며 무고 혐의를 받는 A씨(여)의 사건에서 무죄 취지로 파기 환송했다. A씨는 지난 2014년 최모씨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고소했다. 그러나 최씨는 ‘증거불충분’으로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최씨는 지난 2016년 A씨를 무고죄로 고소했고, A씨는 항소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다. 대법원은 A씨에 대한 무죄 취지로 원심 판결을 파기환송 했다.   

다만 여전히 법원의 성인지 감수성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광주고법 제1행정부(재판장 최인규)는 지난 17일 B씨가 광주교육감을 상대로 제기한 해임처분 취소 소송 항소심에서 1심을 취소하고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고 밝혔다. 

B씨는 광주의 한 초등학교에서 교감으로 근무하던 지난 2017년 여성 택시운전기사가 운전하는 택시에 탑승, 운전기사를 성추행해 해임처분을 받았다. 2심 재판부는 “피해자가 사회 경험이 풍부한 67세 여성인 점과 진술 내용, 신고 경위 등을 보면 피해자가 느낀 정신적 충격이나 성적 수치심이 그다지 크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고 판시했다. 해당 판결에 대해 여성단체는 “사회 경험이 없는 어린이나 청소년, 20대 여성만이 성폭력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냐”며 강하게 항의했다.   

서울고법 형사9부(부장판사 한규현)는 지난달 13일 10세 아동에게 술을 먹이고 성폭행한 혐의를 받는 30대 남성을 감형해 논란이 됐다. 

이소연 기자 soyeon@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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