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를 의심했다. 프로농구를 주름 잡았던 레전드의 발언은 충격적이었다.
최근 프로농구는 팬서비스 논란에 휩싸였다. 지난 23일 전주 KCC 선수단은 KGC와의 맞대결에서 패배한 후 퇴장하는 과정에서 팬들과의 스킨십을 소홀히 해 비판 받았다. 라커룸으로 향하는 통로 옆 난간에 선 어린이 팬들이 손을 내밀어 하이파이브를 요청했지만 라건아와 한정원을 제외한 대부분의 선수들이 이를 외면하고 지나쳤다.
논란이 거세지자 KCC는 공식 사과문을 발표했다. 다음 홈경기에서 해당 어린이 팬과 사진을 찍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전창진 KCC 감독은 언론을 통해 미안한 마음을 전했다.
그런데 김승현 스포티비 해설 위원의 발언이 논란을 재점화했다.
김 위원은 지난 29일 EBS 팟캐스트 ‘우지원 김승현의 농구농구’ 21화에서 KCC 팬서비스 논란에 대해 입을 열었다. 그는 “NBA를 굉장히 즐겨보는 농구인으로서 아이들이 하이파이브를 해달라고 해서 모든 선수들이 다 해주지 않는다”며 “점수 차가 30점 넘게 지게 되면 선수들이 의욕이 상실되고 화가 많이 난다. 부모님이 그날만큼은 하이파이브를 하지 말도록 뒤에서 잡아줬으면 어땠을까. 하이파이브를 할 기분이 누가 있겠습니까”라고 말했다.
김 위원은 이어 “선수, 팬 둘 다 잘못이다. 그런데 100% 선수들의 잘못으로 몰고 가고 있다. 내가 선수출신이라 그런지 몰라도 대패를 당한 상황에서는 선수들이 팬을 못 볼 수도 있다. 라건아는 키가 커서 봤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선배로서 후배들을 감싸려 했던 마음은 이해한다. 하지만 표현이 적절치 못했다. 논란에 대한 책임을 팬들에게 전가하려 했던 부분이 문제였다.
착각을 단단히 했다. 참패에 기분이 상하는 건 선수뿐만이 아니다. 돈과 시간을 지불해 경기장을 찾은 팬들도 기분이 나쁘다. 여기에 선수단이 기본적인 스킨십마저 거부하면 더 참담한 심정이 된다. 경기장과 같은 공간에서까지 팬들이 선수단의 눈치를 봐야 할 이유는 없다. 프로 선수단은 팬이 있기에 존재한다. 이기든 지든, 세심하게 팬들을 돌봐야 하는 것이 프로 선수다.
프로축구 울산 현대의 김보경은 1일 우승이 좌절된 뒤 퇴근길에서 인상적인 팬서비스를 펼쳤다. 크게 상심했을 법도 한데, 그는 장대비를 맞아가며 팬들에게 직접 미안한 마음을 전했다. 사인은 물론이고 팬과 함께 ‘셀카’도 찍었다. 그가 내어준 짧은 시간은 팬들에게 적잖은 위로가 됐을 터다.
최근 프로농구는 부흥을 위해 안팎으로 노력 중이다. 유도훈 인천 전자랜드 감독과 서동철 부산 KT 감독은 마이크를 차고 경기장에 나선다. 팬들에게 제공할 영상 콘텐츠 제작을 위해서다. 전술 노출 등의 불편함이 있지만 농구 인기를 끌어올리기 위해 희생을 마다 않는다. SK 구단은 홈경기 종료 후 팬들과 공식적인 만남의 장을 제공하고 있다. 이들의 노력 덕에 프로농구도 모처럼 활기를 되찾았다. 지난 시즌에 비해 시청률, 관중수에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나온 KCC 선수단과 프로농구 레전드의 불찰은 짙은 씁쓸함을 남긴다. 직업을 떠나 프로농구의 팬으로서 기자도 기분이 상한다.
문대찬 기자 mdc0504@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