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가수 김건모가 소주 뚜껑을 활용해 청혼하는 모습이 공중파 방송에 등장했다. 이날 방송에서 김건모는 대형보드에 소주 뚜껑 수백여개를 이어붙여 결혼해달라는 문구를 새겼다. 충남대병원 연구팀에 따르면, 65세 이하 한국 성인 남성의 1회 최대 음주량이 3잔을 넘으면 폭음으로 진단한다. 수많은 소주뚜껑이 활용된 '폭음 청혼'이 방송에서는 로맨틱하게 연출됐다.
우리나라에서는 음주로 인해서 매일 13명이 사망한다. 2018년 기준 알콜 사용장애 질환으로 쓰이는 진료비는 연간 2조원이 넘는다. 음주로 인한 총 사회경제적 손실은 9조 45000만원으로 흡연이나 비만보다 높고, 매년 급격하게 증가하는 추세다. 알코올 중독 문제가 나날이 심각해지고 있는 가운데 미디어가 폭음을 미화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미디어 속 음주 장면은 성인 뿐만 아니라 청소년에 악영향을 미친다. 한 연구에 따르면 주류광고와 음주장면을 시청한 청소년 10명 중 1명은 음주를 하고 싶은 충동을 느낀 것으로 나타났다. 음주장면을 자주 접한 청소년은 음주에 긍정적 인식을 갖기 쉽다. 그러나 성장기인 청소년기 음주는 뇌 발달 및 중독 회로 형성에 영향을 미쳐 알코올 의존 등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정부는 '미디어 음주장면 가이드라인'을 통해 ▲음주 장면을 최소화해야 하며, 반드시 필요한 장면이 아니면 넣지 말아야한다 ▲음주를 긍정적으로 묘사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 ▲연예인 등 유명인의 음주장면은 그 영향력을 고려해 신중하게 묘사한다 ▲잘못된 음주문화를 일반적인 상황으로 묘사해서는 안 된다 등을 권고하고 있다.
그러나 음주 장면과 음주에 대한 미화된 모습들은 버젓이 방영되고 있다. 한국건강증진개발원이 국내 드라마·예능 프로그램을 대상으로 회당 음주장면 방영빈도를 조사한 결과, 2017년 1.1회, 2018년 1.0회로 회당 1회 이상 나온 것으로 확인됐다.
의료계에서는 미디어 속 음주 장면이 관대하게 비춰지는 현상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정재훈 아주편한병원장(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은 "미디어에서 비춰지는 음주 장면은 술은 즐거운 것 또는 술이 힘들 때 위로 된다는 잘못된 인식을 심어 준다. 알코올이라는 화학물질은 즐거움이나 위로를 주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뇌를 마비시켜서 무감각하게 만들 뿐"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정 원장은 "술에 대해 관대한 문화로 젊은이들이 술에 거부감없이 노출되고 있다. 이는 알코올 중독 소인을 가진 사람들, 또는 이미 알코올 중독 문제를 겪는 환자들에게 치명적이다. 문제있는 음주를 '괜찮은 것'으로 합리화하게 만들고, 치료에서 멀어지게 만든다"고 우려했다.
전미옥 기자 romeok@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