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업계에 있어 올 한 해는 그야말로 ‘동분서주’하는 해였다. 정부의 각종 규제와 해외수주 악화로 건설사들은 새로운 먹거리를 찾아 나섰거나 너도 나도 아파트 브랜드 리뉴얼을 단행했다. 그와중에 아직 가시적인 성과가 없지만 정부의 SOC예산 확대는 이들에게 있어 한 줄기 희망으로 보인다. 다만 올해에도 어김없이 건설현장에서는 사건사고가 끊이질 않았다.
◇국내외 건설경기 악화=건설경기가 2018년에 이어 하락세를 이어갔다. 경제 및 건설 관련 연구기관들은 건설투자가 작년에 이어 2년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한데 이어 이 흐름이 내년까지 이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건설투자는 올해 -3.8% 내외를 기록할 것으로 관측된다. 건설수주는 최근 몇 달간 상승세를 이어갔으나 10월 기준 건설기성은 8조6040억원으로 전년동기 대비 4.3% 줄었다.
건설기성은 지난 2018년 2월 -2.7%를 기록한 뒤 21개월 연속 하락세를 이어가며 최장 하락 기록을 경신 중이다. 전문가들은 내년 건설경기도 마이너스를 벗어나기 힘들 것으로 전망했다.
해외시장도 녹록치 못하긴 마찬가지다. 해외건설협회에 따르면 올 초부터 현재까지 국내 건설업계의 해외건설 수주금액은 190억 달러로 집계됐다. 이는 2006년 165억 달러를 기록한 이후 13년 만에 최저치다. 지난해 수주액(321억 달러)보다 42% 가량 감소했다. 중동, 아시아, 태평양·북미, 유럽, 아프리카, 중남미 등 모든 지역에서 수주 금액이 전년 대비 하락했다.
◇SOC사업 투자 확대=건설경기의 하락세에 정부는 도시재생사업과 생활SOC, 3기 신도시, 예비타당성조사 면제사업 등을 통해 건설투자 확대 추진에 나섰다.
정부가 지난 1월 발표한 총 23개 24조1000억원 규모의 예타 면제사업은 지역균형발전에 초점이 맞춰졌다. 이어 4월에는 ‘생활SOC 3개년계획’을 마련하고 10월에는 내년도 생활SOC 복합화 사업 289개를 선정해 발표했다.
5월에는 수도권 3기 신도시 공급지 2곳을 추가 지정해 30만호 입지를 모두 확정했다. 도시재생사업은 생활SOC, 스마트시티 정책 등과 연계하는 방안이 지속 발표됐다.
여기에 내년도 SOC 예산이 총 23조2000억원으로 잡히며 10년 만에 최대 증가폭을 기록했다. 올해와 비교하면 증가율은 17.6%에 달한다.
건설투자가 국내총생산(GDP)의 약 15%를 차지하는 만큼 단기간 경기를 회복시키는데 건설이 역할을 할 것으로 당정은 기대하고 있다.
해외사업에 대한 정부의 지원도 이어졌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최근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해 공항, 신도시 개발 등 국토교통 분야에 대한 정부 간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또 우리 기업이 수행하고 있는 주요 건설현장을 방문하고 현지 경제인 간담회를 열어 한국 기업인들을 격려했다.
◇재개발·재건축 물량 사업연기=올해 분양이 유력했던 서울 주요 재건축 사업들이 대다수 분양을 못 하고 해를 넘기게 됐다. 정부 규제와 조합 내부 갈등까지 여러 문제가 얽혀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건설사들도 일감확보에 더 어려움을 겪게 됐다.
일반분양분 통매각을 추진해 온 서울 서초구 신반포3차·경남아파트 재건축 조합은 지난 12일 이사회를 열어 통매각을 포기하고, 서초구청을 상대로 벌였던 행정소송도 취하하기로 했다.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에 반발해 통매각 방침을 세웠으나 꼼수라는 정부의 강력한 반대에 밀려 결국 백기를 든 것이다.
앞서 지난 6일 과도한 수주 경쟁으로 논란을 빚은 한남3구역 재개발 조합은 전면 재입찰을 통해 시공사를 다시 선정하기로 방향을 바꿨다.
입찰 공고부터 다시 시작해야하는 만큼 한남3구역 재개발 사업은 6개월 이상 지연이 불가피해 졌다. 여기에 최근 조합 내부에서도 갈등이 일어나면서 사업 진행은 불투명해졌다.
이같은 사건들로 2020년에 공급되는 재개발·재건축 아파트의 비율은 전체 분양예정 물량의 약 47%(15만1840가구)를 차지할 전망이다.
서울 강남구 ‘대치1지구’ 489가구, ‘개포주공1단지’ 6642가구, 강동구 ‘둔촌주공’ 1만2032가구, 동작구 ‘흑석3구역’ 1772가구, 은평구 ‘수색6·7구역’ 1,223·672가구, 증산2구역’ 1386가구, 성북구 ‘장위4구역’ 2840가구 등 유망 사업장에서 공급이 이뤄질 전망이다.
◇리뉴얼 바람=건설사들도 저마다 살 궁리를 하기 시작했다. 올해는 신사업을 추진하는 건설사가 유독 많았다.
HDC현대산업개발은 최근 업계 2위 항공사인 아시아나항공을 인수 우선협상자에 선정됐다. GS건설은 최근 농장 사업에 진출을 밝혔다. GS건설은 최근 스마트팜을 신규 사업에 추가했다. 스마트팜은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 등의 기술을 이용해 농작물이나 가축이 자랄 수 있도록 환경을 자동으로 제어하는 농장을 말한다.
대우건설은 장비대여 사업에 뛰어들었다. 대우건설은 항만공사를 할 때 사용하는 바지선 같은 선박을 다른 건설사에 대여할 예정이다. 대림산업은 석유화학사업 비중을 확장해나가고 있다. 대림산업은 최근 미국 수술용 장갑 업체 사업부를 인수했다.
아파트 브랜드 리뉴얼도 상당했다. GS건설의 자회사인 자이S&D는 중소규모의 아파트 단지를 대상으로 한 프리미엄 아파트 브랜드 ‘자이르네’를 런칭했다.
현대건설과 현대엔지니어링은 함께 사용하는 브랜드 ‘힐스테이트’ 의 BI(브랜드 아이덴티티)와 자사 로고를 함께 표기하기로 수정했다.
한화건설도 지난 2001년부터 사용해 오던 ‘꿈에그린’ 브랜드를 버리고 새 주거 브랜드 ‘포레나’ 선보였다. 롯데건설은 ‘롯데캐슬’ 디자인을 업그레이드한 롯데캐슬3.0을 공개했다.
이밖에 대우건설도 ‘푸르지오’를 16년 만에 리뉴얼했다. 호반건설은 주상복합단지에 적용한 ‘호반 써밋플레이스’를 ‘호반 써밋’으로 리뉴얼하는 한편 아파트 브랜드 ‘베르디움’의 BI 디자인을 변경했다.
일부 건설사는 프리미엄 브랜드에 한해 주택전시관을 개관하기도 했다. 대림산업은 새롭게 리뉴얼한 아파트 브랜드 ‘아크로’를 강남구 신사동 아크로갤러리에서 선보였다. 롯데건설 역시 프리미엄 브랜드인 ‘르엘’을 선보이면서 강남에 르엘갤러리를 마련해 운영 중이다.
◇올해도 어김없이...=건설현장 사건사고도 여전했다. 우선 불과 일주일 전 경기도 고양시와 서울 여의도에서 땅꺼짐 사고가 잇따르면서 지역주민들의 불안이 커지고 있다. 여의도 사고의 경우 지하보도 공사현장에서 갑자기 아스팔트 지반이 무너지면서 작업 중이던 근무자 한 명이 추락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돌아가 보면 지난 1월 연초부터 사고가 발생했다. 현대건설이 시공사로 있던 김포 고촌읍 힐스테이트 리버시티 공사현장에서는 근로자 1명이 추락사하는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같은 시기에 대우건설의 경기 시흥 건설현장에서는 숯탄 교체 작업을 하던 근로자 2명이 질식사하기도 했다.
3월엔 대우건설 현장에서의 사고가 유독 많았다. 경기 부천 공사장에서 중량물 인양 중 자재가 흔들리면서 추락사가 발생했고, 서울에서 문산 고속도로 건설현장에서 말뚝을 땅에 박는 토목기계의 해머가 떨어져 그 밑에 깔린 근무자가 사망하기도 했다. 또 경기 고양 대곡에서 소서 복선전철 3공구 현장에서도 근로가가 사망하는 사고가 있었다.
GS건설이 시공한 경북 안동 경북 북부권 환경에너지종합타운 건설 현장에서는 지상 약 20m 높이에서 콘크리트 타설 작업 중이던 근로자 3명이 추락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7월에는 양천구 목동의 빗물 배수시설 공사장 깊이 40m 수로에서 현장점검 작업 중이던 현대건설 직원과 협력업체 직원 2명이 지상에서 쏟아져 내린 빗물에 휩쓸려 사망했다. 또 경기 광명 철산에 대우건설의 재건축 현장에서 철근다발이 떨어져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고가 있었다.
8월 서희건설이 시공을 맡은 속초 서희스타힐스더베이 주상복합아파트 공사 현장에서는 15층 높이에서 작업용 승강기가 추락했다. 승강기에 타고 있던 근로자 4명 중 3명이 목숨을 잃었다. 근로자들은 승강기를 타고 한 층씩 내려오며 승강기를 지탱하는 구조물을 해체하던 중이었다.
10월엔 상위 100대 건설사 중 현대엔지니어링·한신공영·에스앤아이코퍼레이션·한진중공업·경동건설·혜림건설 등 6개 건설사의 시공 현장에서 총 6명이 사망했다. 이밖에 중소기업들까지 하면 올 한해 건설현장에서는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사망했다.
안세진 기자 asj0525@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