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노상우 기자 = “설사·혈변 증세가 있어 별 것 아닌 것 같아 내버려뒀어요. 증세가 심해져서 병원에 내원하니 ‘궤양성 대장염’이었어요.”
정재훈(52)씨는 지난 2006년 혈변 증세로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다. 불과 1, 2개월 사이에 10㎏ 이상의 체중이 줄자 주변에서는 '그러다 죽는 것 아니냐'며 걱정스러운 시선을 보냈다. 정씨는 “심할 때는 한 시간에도 화장실을 두 세번씩 들락거려야만 했다”며 “사회생활도 제대로 할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러웠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심한 설사로만 치부했지만 훗날 궤양성 대장염 진단을 받자, 정씨는 증세 초기때 꼼꼼히 건강을 살피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참고로 궤양성 대장염은 크론병과 함께 염증성 장질환의 중 하나다. 대장에 만성적으로 염증이 생기는 질환으로 염증은 항문에 인접한 직장에서 시작돼 점차 안쪽으로 진행된다. 염증이 왜 생기는지는 아직 판명되지 않았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많은 환자가 발생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꾸준히 환자가 늘고 있다. 약 1000명 중 1명꼴로 궤양성 대장염을 앓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씨의 치료를 맡고 있는 최창환 중앙대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가장 흔한 증상은 설사와 혈변인데 심해지면 고열·복부 통증·체중 저하·빈혈로 이어지기도 한다”며 “배변 급박감이 심한데, 하루에도 화장실을 수차례씩 드나들어야 해 장거리 버스를 타는 것도 어렵다. 환자들은 주변에 화장실이 있어야 안심한다”고 설명했다.
정씨의 치료 초반만해도 치료법은 많지 않았다. 최 교수는 “최근들어 생물학적제제가 개발돼 환자들의 증상도 많이 좋아지고 삶의 질도 높일 수 있었다”면서도 “아직 완치법이나 치료제는 개발되지 않아 평생 관리를 해야 하는만큼 주치의와 자주 상담을 진행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궤양성 대장염이 흔하지 않다보니 개원가에서는 더러 진단을 놓치기도 한다. 설사·혈변 등의 증상이 과민성 장 증후군이나 감염성 장염과 비슷한 탓이다. 과민성 장 증후군이나 장염은 약을 처방받아 복용하면 1~2주 안에 증세가 호전되는 반면, 궤양성 대장염은 차도를 보이지 않는다. 그러는 사이 시간이 지체돼 진단이 늦어지면, 장이 제 기능을 못 하게 되거나 오랜기간 지속되는 염증으로 인해 독성 거대결장과 대장암 발병 확률도 높아지게 된다.
처음 3년은 최 교수와 정씨 모두에게 힘든 시간이었다. 최 교수는 “환자께서 수시로 병원을 찾아와야 하는 상황이었고 설사 증상이 밤낮을 가리지 않아 잠을 제대로 잘 수도 없는 상태였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면역조절제를 사용하며 증세는 다소 완화됐지만 확실한 대안이 되지는 못했다. 오심·구역질·메스꺼움 등의 부작용과 장기 사용에 따른 위험도, 불충분한 치료 효과 등으로 지속 사용이 꺼려졌기 때문이다. 고심끝에 생물학적제제인 '휴미라'를 치료에 사용했고, 만족스러운 개선 효과를 보였다.
휴미라 투여 후 정씨는 일상에 자신감을 되찾았다. 정씨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잦은 병원 내원에 어려움이 많았다”면서 “지금은 격주마다 집에서 직접 주사를 놓으면 되고 석달에 한 번만 병원에 가도 큰 무리가 없을만큼 회복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약을 중단하면 다시 악화되기 때문에 궤양성 대장염은 평생 같이 사는 친구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조언한다.
최 교수는 “정씨가 질환을 앓은 지 벌써 15년째인데, 관리를 잘하고 있다”며 “이 질환을 갖고 있어도 철저한 관리를 하면 되기 때문에 우울해하거나 좌절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인터뷰 말미 최 교수는 “주치의는 평생동안 환자의 건강을 맡아주는 동반자”라고 했다. 동반자라는 말의 어절마다 '희망'이 배여 있었다. 사진 촬영을 위해 포즈를 취한 이들을 보고 있자니 고된 시간을 함께 보낸 오랜 벗 같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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