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이소연 기자 =정의기억연대(정의연)을 둘러싼 논란과 관련해 진보 시민사회단체의 침묵이 이어지고 있다. 사회 문제를 선봉에서 지적, 해결에 힘써온 궤적과는 다른 모습이다.
검찰은 21일 서울 마포구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과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 쉼터 ‘평화의 우리집’에 대한 압수수색을 마쳤다. 정의연의 사무실은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에 주소를 두고 있다. 평화의 우리집은 의혹의 중심에 선 윤미향 전 정의연 이사장의 주민등록상 주소지다. 검찰은 회계 및 각종 사업 관련 자료들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보수 시민사회단체의 고발에 따른 것이다. 사법시험준비생모임과 법치주의바로세우기행동연대 등은 윤 전 이사장과 정의연 관계자를 업무상 횡령·배임, 사기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앞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92)씨가 정의연과 정의연의 전신인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로부터 제대로 된 지원을 받지 못했다고 주장해 논란이 일었다. 정의연의 회계내역이 투명하지 않다는 비판도 나왔다. 이에 정의연은 기자회견을 열고 회계내역 등을 공개했다. 일부 공시 오류에 대해서는 사과하며 개선을 약속했다. 그러나 부실한 회계와 윤 전 이사장이 본인의 명의 계좌로 기부금을 받았다는 의혹, 경기 안성의 위안부 피해자 쉼터를 고가에 매입해 방만하게 운영했다는 의혹 등이 재차 수면 위로 떠 올랐다.
회계 관련 의혹이 불거진 초기, 다수의 진보 시민사회단체에서는 정의연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다. 330개 시민사회단체가 모인 시민사회연대회의는 지난 14일 “정의연은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들의 침해된 권리를 되찾으려는 시민들의 선한 의지를 대변하고 결집해왔다”면서 “최근 정의연을 둘러싸고 제기된 의혹과 논란의 상당 부분은 사실과 다르거나 크게 왜곡됐다. 정의연을 악의적인 공격으로부터 지켜내야 한다”고 말했다. 참여연대와 한국여성단체연합,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과거사청산위원회 등도 정의연 지지에 힘을 보탰다.
시민사회단체의 연대는 두텁다. 이들 단체는 그동안 연대를 통해 사회 문제를 해결을 위한 목소리를 모아왔다. 정의연도 지난 1990년 37개 여성단체가 정대협을 발족한 것에서 시작했다. 지난 2016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당시에도 시민사회단체들이 연대해 ‘박근혜정권퇴진 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을 꾸렸다. 퇴진행동은 서울 광화문광장 등에서 촛불집회를 주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의 동력을 모았다.
각각 집회에 참여해 서로 연대의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비슷한 문제를 지니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인권을 중시하고 국가폭력에 저항해야 한다는 의견 등도 일치한다. 지난 3월 강정마을해군기지반대주민회의 ‘구럼비 발파 8주기 성명서’에 소성리사드철회 성주주민대책위원회, 금속노조 인천지부 콜트악기 지회·쌍용자동차 지부, 참여연대 등이 참여했다. 경북 성주 소성리는 제주 강정마을처럼 주민들이 원치 않는 군사시설이 들어왔다. 콜트악기 지회와 쌍용자동차는 ‘폭력적인’ 해고를 경험했다.
조철민 경희사이버대학교 NGO사회혁신과 교수는 “연대는 자원이나 권력이 없는 시민사회단체가 힘을 모으는 유일한 방식”이라며 “연대를 통해 권력을 비판·감시하고 사회적 어려움을 극복해왔다”고 설명했다.
다만 연대의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끈끈한 관계로 인해 각 단체에 대한 비판이 무뎌질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 2015년 시민단체 ‘손배가압류를 잡자! 손에 손을 잡고!(손잡고)’에서 부당해고 논란이 일었다. 손잡고 설립을 주도한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가 활동가를 괴롭히고 부당하게 해고했다는 주장이다. 한 교수는 이러한 문제 제기를 한 손잡고 운영위원들에게 명예훼손으로 소송을 제기했다. 손잡고 측은 지난 2018년 한 교수와의 명예훼손 소송에서 승소한 후 “일련의 사태에 대해 시민사회는 애매한 태도를 보여왔다”며 “한 교수의 잘못을 지적하고 반인권적 태도를 시정하도록 요구해야 했으나 친분관계로 또는 진보진영 인사라는 이유로 잘못을 감싸왔다. 시민사회 상층 인사들의 태도는 활동가들을 절망하게 했다”고 지적했다.
정의연 사태에 대해서도 진보 시민사회단체에서 적극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참여연대 공동집행위원장을 지낸 김경율 경제민주주의21 대표는 “드러난 부정에 대해 침묵하는 것은 덮어주겠다는 이야기밖에 되지 않는다”며 “짚어야 될 문제는 외면하는 것은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의 자세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정의연의 회계 논란과 관련해 똑같은 문제가 재벌기업에서 일어난다면 이를 비판할 수 있겠느냐. 문제 제기가 어려워지는 상황이 올 수 있다”며 “시민운동 하는 사람들은 칼날 위에 서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soyeon@kukinews.com / 사진=박태현, 박효상 기자 pth@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