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계획 없이 시작한 ‘제주도에서 1년 살기’였다. 언제 시작할 것인지, 어디에서 살 것인지, 무엇을 하며 지낼 것인지 등 최소한의 조사와 사전 계획조차도 없었다. 확실한 계획은 ‘제주도에서 1년’을 살겠다는 것뿐이었다. 그렇게 더위와 습도 때문에 야외활동이 쉽지 않은 7월 초에 무작정 제주에 왔다.
어찌 생각하면 참으로 무모하게 시작했지만, 그래서 제주도 1년 여행은 매우 만족스럽게 흘러왔다. 서둘지 않고 함덕 주변을 어슬렁거리고, 그 범위를 조금 더 넓히면서 내가 걷기를 좋아하고 나무와 풀과 꽃 살피기를 좋아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무리하게 많이 걸으려 하지 않고 빨리 걷지도 않았다. 그래도 제주도를 걸어서 한 바퀴 돌았고, 꼭 가 보아야 한다는 오름과 숲길은 거의 다 걸었다.
퇴직하며 마련한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먼 자연풍경과 마을을 찍었다. 서 있는 주변의 꽃과 풀과 나무를 살피고 찍었다. 걷는 거리가 늘어나며 사진을 찍고 이름을 확인한 식물의 수도 하나 둘 늘었다. 팔다리의 근육도 늘고, 한 번에 걸어내는 거리도 늘었다. 그래도 걷는 속도는 여전히 다른 사람들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눈에 들어오는 꽃과 풀과 나무를 그냥 지나칠 수 없기 때문이다. 제주에서 내 관심사는 꽃과 풀과 나무였다.
어머니가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아버지는 고단함을 벗고 안식에 들어갔다. 언제까지나 병실에서 생활할 수는 없으니 당장 어머니를 보살필 손길이 필요했다. 그나마 노인장기요양보험 제도가 시행되면서 요양시설이 생기기 시작했으나 어느 곳을 가 보아도 미덥지 않았다.
근무하던 병원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깨끗한 요양원을 찾아 어머니를 그리로 모셨다. 그리고 요양원 근처로 이사를 했다. 집에 가겠다고 조르는 어머니를 달래며 매일 출근 전에 들러 어머니를 만나고 퇴근해 어머니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 주말엔 요양원에서 살았다. 처음엔 반기지 않던 직원들도 이러한 내 일상을 점차 받아들였다. 어머니 역시 적응하고 있었다.
평온한 일상은 몇 달 지나지 않아 깨졌다. 아침과 저녁 혈당과 혈압을 확인하고, 어머니 몸을 살피며 욕창이 생기지는 않았는지, 욕창 예방을 위한 공기 매트에 이상은 없는지를 확인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부터 어머니 피부가 조금 이상했다. 요양원에 옴이 번지고 있었다. 직원들도, 원장도 알지 못했고 그냥 대수롭지 않은 피부 가려움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다. 생활하는 노인들만 엄청난 불편을 견디고 있었다. 직원과 원장 면담을 하고 노인과 직원들 모두 치료를 받도록 했다. 어머니가 사용하는 옷과 수건과 침대보 등을 별도로 분리해 집에서 삶아 사용했다. 치료가 마무리되고 조금 더 믿음직한 곳을 찾아 요양원을 옮겼다.
능선에서 바라보았던 웅장한 한라산이 눈에 밟혔다. 사람마다 생각의 차이는 있겠지만 제주도 최고의 오름은 단연 큰노꼬메오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궷물오름 주차장에서 큰노꼬메오름과 족은노꼬메오름을 거처 돌아오는 길은 하루가 아깝지 않았다. 이 길에서 느끼는 제주 자연의 다양한 아름다움과 편안함은 으뜸이었다.
큰노꼬메오름 능선에서 연신 ‘최고다’를 되뇌며 바라보다가 한달음에 갈 수 있을 듯 가까운 큰바리메오름에 눈길이 머무는 순간 거기에 또 다른 제주 풍경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도 그 위치가 절묘했다. 그 앞 바다방향과 좌우로 시선을 방해할 다른 오름이 없고 뒤쪽 한라산 역시 큰노꼬메오름 능선에서 보기와 크게 다르지 않을 듯했다. 늘 제주 동부의 숲길과 오름을 맴돌다 서부로 눈 돌린 후 제주의 새로운 모습에 마음을 빼앗기고 있었다.
‘산록서로’라는 이름의 1117번 도로를 따라 서쪽으로 가다가 궷물오름 주차장을 지나고 2.5km쯤 가면 왼쪽으로 들어가는 시멘트포장 길 입구에 세로로 ‘비타민농장’이라 새긴 커다란 돌 표지판이 보이는데 이 길로 들어서서 2 km 남짓 더 들어가야 바리메오름 주차장에 닿는다. 1117번 도로는 서쪽에서 평화로에 연결되는데 평화로 방향에서 온다면 약 1.2 km의 거리다. 바리메오름 주차장은 충분히 넓어서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사철 주차에 어려움은 없으며 깨끗하게 관리된 화장실도 설치되어 있다.
큰바리메오름은 해발 763 m, 실제높이 213 m로 인근의 큰노꼬메오름 (실제높이 234m)보다 약간 낮다. 큰노꼬메오름은 분화구가 무너지며 애월의 해안가로 많은 화산 분출물을 흘려보내 오름이 ㄷ 자 모양이지만 큰바리메오름은 정상에 분화구의 모양을 유지하고 있으며 분화구 둘레 능선 (826m)을 한 바퀴 돌아볼 수 있다.
큰바리메오름은 분화구 능선의 일부구간을 제외하고는 활엽수림이 울창하다. 오름의 분화구 능선까지는 짙은 그늘 속의 길을 걷는다. 길 주변을 자세히 살피면 오름 밖에서는 흔하게 볼 수 없는 새끼노루귀, 개족도리풀, 박새, 천남성 등이 눈에 들어온다. 5월에 작은 흰 꽃이 통째로 많이 떨어져 있다면 때죽나무 아래에 서 있음을 안다. 6월에 꽃잎이 4개인 큼직한 흰 꽃이 떨어져 있다면 그곳은 산딸나무 아래다.
큰바리메오름의 능선길은 볼거리가 한층 더 풍성하다. 인동초 꽃과 찔레꽃의 은근한 향이 산들바람에 실려 있고 조금 떨어진 곳에는 산딸나무의 흰 꽃이 요란하다. 산딸기는 부풀대로 부풀어 작고 붉은 과육이 곧 터질 듯하다. 가까운 곳의 꽃을 바라보다 문득 고개를 들면 저 아래 부드러운 분화구가 슬쩍 보이고 그 너머로 높이 솟아오른 능선 한 부분이 보이며 잠시 후에 가야 할 곳을 알린다.
뒤돌아서면 곳곳에 산딸나무의 흰 꽃으로 장식한 족은바리메오름 능선 너머로 한라산자락이 백록담을 품은 곳까지 끝없이 오르고 있다. 애월 방향으로 분화구가 벌어진 큰노꼬메오름의 능선엔 얼핏 걷고 있는 사람들이 보이고 족은노꼬메오름도 고개를 내밀고 있다. 날이 맑으면 맑은 대로, 안개가 끼면 낀 대로 애월의 바다 쪽 풍경은 넓고 부드럽다. 천천히 분화구의 높은 능선에 오르면 해마다 억새를 태우는 새별오름이 선명하고 남쪽으로 산방산이 아련하다. 큰바리메오름은 오르는 숲길보다 분화구 둘레의 능선길이 훨씬 더 많은 것을 보여주고 있다.
기고 오근식 1958 년에 출생했다. 철도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철도청 공무원으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강원도 인제에서 33개월의 군 복무를 마치고 다시 복직해 근무하던 중 27살에 성균관대학교 영어영문학과에 입학했다. 대학 졸업 후 두 곳의 영어 잡지사에서 기자로 일했으며, 인제대학교 백병원 비서실장과 홍보실장, 건국대학교병원 홍보팀장을 지내고 2019년 2월 정년퇴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