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안세진 기자 =어제부터 오늘(22일)까지 네이버에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에 들어갈 정도로 많은 주목을 받으며 성황리에 개최·완료된 한남3구역 재개발사업의 시공사 선정 총회. 그 현장에 쿠키뉴스 기자도 있었다. 당일 몇 시간동안의 찜찜함을 기사로 남겨본다.
◇총회 현장, 들어가 봤더니=21일 오후 2시 강남 코엑스 남쪽 1층 A홀에는 코로나19 시국에도 수많은 인파가 몰렸다. 현장에는 한남3구역 재개발 조합원들은 물론, 시공권을 두고 경합을 벌이고 있는 현대건설·GS건설·대림산업 관계자들과 취재진들, 그리고 진행요원들과 강남구청 관계자들까지 다양한 목적의 사람들이 자리했다. 지나가는 행인들도 잠시 길을 멈춰서 무슨 상황인지 연신 주변을 두리번거리기도 했으니 현장은 그야말로 ‘북새통’ 그 자체였다.
오후 2시가 조금 넘자 조합원들 대부분이 행사장에 들어갔다. 총회가 끝나려면 아직 시간이 한참 남았다. 기자는 현장 입성을 시도해봤다. 어라? 너무나도 쉽게 들어와 버렸다. 주변 기자들이 아무도 들어가지 않아서 당연히 출입이 불가한 줄 알았다. 행사장에는 우선 발열체크를 하고, 미스트처럼 흩뿌려지는 소독시스템을 지나, 손소독제를 바르면 들어갈 수 있다. 이 모든 과정이 30초가 채 안 걸렸다. 제대로 검사를 한건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그렇게 입성하게 된 행사장 내에는 또 다른 공간이 마련돼 있었는데, 이곳은 조합원 인증을 통해야만 들어갈 수 있었다. 인증을 하려면 입구에서 나눠주는 비닐장갑을 끼고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부스로 가서 체크를 하면 팔찌를 걸어준다. 이 팔찌가 있어야만 출입이 가능하다. 내부 벽면 곳곳에는 ‘마스크를 벗으면 즉각 퇴실 조치’라는 문구가 새겨진 종이들이 붙어있었다.
또 한쪽 벽면에서는 일부 조합원 무리가 입장하고 있는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서명하고 가세요”라고 외치고 있었다. 이들은 ‘비대위 척결 서명운동’을 진행하고 있었다. 비상대책위원회가 조합장 및 임원진들을 대상으로 고소·고발을 이어가자 사업 진행에 발목을 잡았다는 주장이다. 또 한쪽 구석에는 행사 진행 ‘알바’로 추정되는 무리의 인물들이 바닥에 앉아 빵을 먹으며 쉬고 있었다.
조합원 인증 팔찌는 없어도 해당 입구에서 내부 전경이 어느 정도 보였다. 아찔할 정도로 많은 규모의 사람들이 우글우글 모여 있었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당연 불가능해 보였다. 제아무리 철저한 방역을 통했다지만 그 누가 봐도 안전해 보인다고는 말하지 않을 것이 자명해보였다. 투표를 위해 사람들이 움직이자 혼란은 배가 되었다. 얼마나 사람들이 많았느냐면 조합원이 아닌 기자조차도 눈치를 보고 슬쩍 들어갈 수 있을 정도였다. 그만큼 정신이 없었다.
오후 7시 즈음되자 시공사 선정이 완료됐다. 시공사는 현대건설. 현장에서 결과를 기다리던 현대건설 관계자들은 공표와 동시에 함성과 환호를 지르며 서로를 얼싸안았다. 윤영준 현대건설 부사장은 결과 공표 직후 “‘디에이치 한남’이 완공되면 대한민국 최고의 아파트가 될 것”이라며 “누구나 만족할 수 있는 최고의 아파트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조합원들도 투표 결과에 상관없이 허심탄회한 모습을 보였다. 진행요원과 알바, 기자들도 환호했다. ‘와 이제 집에 갈 수 있겠구나!’
◇보여주기 식 경고에 그치나=그야말로 기묘한 광경이 아닐 수 없다. 코로나19가 창궐한지 반년이 되어가는 시점에 이런 대규모 인원의 행사가 가능하다니 말이다. 이날 투표에 참석한 조합원 수는 2801명. 서면 결의 및 사전투표 인원을 포함한 집계라고 해도 결코 적지 않은 수다.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계속해서 찜찜했던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었다. 우리는 지금 코로나19라는 유례없는 재난상황을 지나고 있지 않은가.
가장 큰 문제는 관할 구청 측에서 ‘집합금지명령’을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불도저식’으로 총회를 강행한 조합에 있다. 앞서 강남구청은 코로나19 확산 우려로 조합 측에 집합금지 행정명령을 내렸다. 집합금지 명령을 이행하지 않아 고발조치를 하면 300만원 이하 벌금을 낼 수 있고 코로나19 확진자 발생 시 치료비, 방역비 등에 대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이날 현장에서 만난 강남구청 관계자는 “집합금지 명령을 내렸음에도 이를 따르지 않은 주최 측과 참석자들을 법률에 따라 처벌할 것”이라며 “총회 주최자와 참석자 전원을 대상으로 집합금지 명령을 위반한 혐의로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각각 최대 300만원이 부과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보란 듯이 조합 측은 이를 비웃어 넘겼다. 강남구청과 코엑스 측이 총회 이틀 전 집합금지 명령을 내렸을 때 조합 집행부 측은 “문을 안 열어주면 출입문 부수고라도 들어갈 것”이라며 협박성 메시지를 주고 받기도 했다.
이같은 불도저식 총회 강행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조합은 지난 4일에도 조합은 중랑구청의 집합금지 명령에도 불구하고 서울 중구 장충동 남산제이그랜하우스에서 정기총회를 열고 시공사 선정 입찰에 참여한 현대건설·GS건설·대림산업 등 3개 건설사의 1차 합동 설명회를 진행했다. 이날 현장 입구 유리문에는 중랑구청의 공문이 붙어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행사가 진행됐다.
강남구청 측도 문제가 없다고 할 수 없다. 구청 측은 과연 조합을 대상으로 어떤 제재를 가할 것인가? 업계 관계자들은 단순히 ‘보여주기식’ 경고에 지나지 않을 거라 보고 있다. 실제 구청 측은 이후 조합을 대상으로 한 어떤 행정처분에 대해 한 발을 빼고 있었다.
집합금지 명령을 내렸음에도 이를 어기고 총회를 강행한 조합을 상대로 벌금 300만원 등을 부과할 것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현장에서 만난 강남구청 관계자는 “우리는 명령을 내렸고 이를 어겨 경찰에 고발할 예정”이라며 “벌금을 때릴지 말지 등의 경찰이 결정하는 것”이라고 책임을 경찰 측에 돌렸다.
구청 측에서 어떠한 대응을 내놓을지는 두고 봐야 하는 상황이다. 다만 적어도 이렇게 해당 사안에 대해 끝내서는 안 될 것이다. 코로나19 안전불감증은 이미 도처에 자리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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