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안세진 기자 =서울 강북의 한 지역주택조합 사업장에서 조합장과 업무대행사가 시공사 선정과 관련한 총회 안건을 ‘날치기’로 통과시키려 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해당 투표함은 현재 개표되지 않은 상태로 성동구청에 있는 상황. 투표함을 개표하려는 집행부와, 이를 저지하려는 비대위가 성동구청에 모였다.
서울숲벨라듀2차 지역주택조합사업은 서울시 성동구 성수동 1가 671-178번지 일대 인근 1만7329㎡에 총 528가구 규모의 주택을 짓는 사업이다. 2015년 사업이 시작돼 지난해 5월 성동구로부터 정식 사업인가를 받았다.
지역주택조합 사업은 무주택자나 소형 주택(전용면적 85㎡) 소유주에게만 조합원 자격이 주어진다. 원래 조합원들이 모여 직접 사업 부지를 매입하고 아파트를 건립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조합원들이 직접 원주민 토지를 매입하기 어려워 업무대행사를 낀다.
#13일 오전 8시. 성동구청 앞
13일 월요일의 공기는 전날 밤부터 줄곧 내린 비로 인해 차가웠다. 곧 있을 성동구청 앞 무력 충돌을 날씨도 예견하는 듯 했다. 전날 오후 10시경 제보자는 기자에게 연락해 오늘 이곳 9시 서울숲벨라듀2차 지역주택조합사업 집행부와 비상대책위원회 간의 충돌이 있을 거라고 알려왔다. 조폭도 동원된다는 말도 있어서 이들 간에 갈등의 골이 깊음을 간접적으로나마 알 수 있었다.
오전 8시 현장은 조용했다. 구청 직원들은 1시간 뒤 이곳에 있을 ‘소란’을 모른 채 각자의 자리에서 한 주의 시작을 부지런히 준비하고 있었다.
이날 집행부와 비대위의 격돌지는 성동구청 11층 주거 정비과이다. 이곳에 해당 조합의 임시총회 투표함이 보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이날 이들이 성동구청 앞에 모인 이유는 이들의 임시총회 결과가 담긴 투표함 때문이다. 누가 투표함을 차지하느냐에 따라 사업의 운명이 걸려있는 셈.
#10일 오후 10시. 성동구청 앞
사건의 발단은 지난 금요일(10일) 임시총회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임시총회의 안건은 시공사 선정을 통해 앞으로의 사업을 진행하겠다는 내용이다.
비대위에 따르면 당시 조합은 코로나19로 인한 정부의 집합금지명령에 따라 200명이하의 행사만 가능하다고 전달받았다. 하지만 오후 8시경 총회인원은 220명 이상이 되었고 현장에 있던 강남구청 방역과 직원은 해산 명령을 내렸다. 이에 조합장은 오후 8시20분 “임시총회 무산”을 선언했다. 하지만 10분 뒤 “무산이 아닌 끝”이라고 말을 번복하고 투표함의 개표를 시도했다.
한 조합원은 “투표가 시작된 것은 7시27분이고 구청의 해산 명령을 받은 것은 8시다. 30분의 투표 시간은 참석자 총 220여명이 투표하기에 부족한 시간”이라며 “단순 계산해 봐도 1인당 주어진 투표시간은 9초다”라고 비판했다. 또 다른 조합원은 “모두 투표하지도 않은 투표함을 무리하게 개표하려는 것은 조합원의 권리를 무시하는 행위”라고 말했다.
이날 조합 집행부와 비대위의 대치상황은 다음날인 11일 새벽 2시까지 이어졌다. 조합장은 “(해당 투표함을) 성동구청 11층 주거정비과에 투표함을 보관할 것이며 7월 13일 10시 30분 비대위와 조합측 인원수 총 3명이내의 인원이 법원에 증거보전 신청을 하겠다”라고 말하며 상황은 마무리됐다.
#13일 9시 20분. 성동구청 11층 주거정비과
8시30분이 좀 넘자 비대위 조합원들은 구청 앞에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현장에서 만난 한 비대위 조합원은 “오늘이 마지막 날이다. 이날 사업이 어떻게 될지 판가름 난다”며 “투표함을 법원 측에 증거보존 자료로 제출하던지, 그게 안 된다면 집행부 측에서 가져가지 못하게 투표함을 사수하는 수밖에 없다”며 이날의 각오를 다졌다.
또다른 조합원은 옆에 있는 한 건장한 사람을 가리키며 “이분은 몸에 수갑을 숨기고 있다. 투표함을 찾는 순간, 집행부 측에서 투표함을 못 가져가게 자신의 팔과 투표함을 묶을 것”이라며 “나머지 인원들은 가드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9시가 되자 비대위 인원들은 11층 주거정비과로 향했다. 이들은 복도 앞에 모여서 집행부 측 사람들이 오길 기다렸다. 구청 직원들은 어떤 사안인지 의아해하며, 소란을 자제시켰다.
9시20분 집행부와 비대위가 모두 모였다. 이들은 주거정비과로 발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약간의 충돌이 있었다. 현장에 모습을 드러낸 조합장이 변호사를 동행시킨 것. 비대위는 “관계자들만 들어가야 한다” “저 사람이 왜 끼냐”며 변호사의 출입 통제를 요구했다. 결국 내부 사무실에는 조합장을 포함한 집행부 측 두 사람과 비대위 측 두 사람만 들어갔다.
복도에서는 여전히 집행부와 비대위 사이 갈등이 일고 있었다. 변호사는 “수백 번 정비사업 사건을 맡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경우는 처음 본다”며 “절차가 무효라고 한다면 법원을 가야지, 개표를 무효라고 하는 게 말이 되나”라고 비판했다. 이어 자신을 촬영하는 사람을 향해 “고소할거야”라며 협박을 가했다.
집행부 측 사람으로 보이는 카메라맨에게도 비판의 화살이 날라 왔다. 한 비대위 조합원은 카메라 렌즈를 손으로 가린 뒤 “대체 뭘 찍고 있는 거냐. 당신들도 찍지 말라. 삭제하라”고 말했다. 결국 이들은 촬영 영상 소스를 모두 삭제하는 수밖에 없었다.
#13일 10시 15분. 성동구청 앞
10시가 넘어가자 소동은 다소 진정이 됐다. 구청은 대표자만 남고 모두 1층으로 내려가라 요구했고, 집행부 2명 비대위 2명만 사무실 내에서 대화를 진행했다. 그리고 결국 양측 조합원들은 투표함을 서울동부지방법원으로 가져가 증거보존 시킬 것을 합의했다. 이 과정에서 투표함을 빼돌리는 것이 아닌지 비대위 측에서 주차장 등 동선을 철저히 확인하기도 했다.
조합장은 “여기서 소란을 피우면 양 측 누구의 말이 옳던지 결국 전부 손해”라며 “투표함을 싣고 법원을 갈 것”이라고 말했다. 비대위 관계자도 “조합장의 말도 일리가 있다”면서 “투표함을 싣고 법원으로 가서 증거보전을 신청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투표함은 법원에 증거보전으로 신청된 상황이다. 비대위 관계자는 “투표함은 현재 증거보전신청이 마무리되면서 안전하게 법원에 맡겼다”며 “아직 넘어야할 산이 많지만 부정한 사건들을 밝혀나가겠다”고 주장했다. 이어 “조만간 ‘조합장 해임을 위한 임시총회 소집요구’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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