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로 박재혁은 중이염을 앓는 등 컨디션이 온전치 못한 상황에서도 제 역할을 다해냈다. 그룹스테이지 C조에서 LGD(중국)와 TSM(북미)을 연달아 격파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때문인지 6일 중국 상해에서 열린 프나틱(유럽)과의 그룹스테이지 C조 경기, ‘룰라 듀오’의 밴픽은 크게 우려되지 않았다. 상대가 ‘세나’와 ‘레오나’였지만 박재혁의 이즈리얼과 김정민의의 라칸이라면 구도가 다를 거라고 봤다. 라칸이 ‘봉인 풀린 주문서’에, 소환사 주문으로 ‘점화’와 ‘탈진’을 선택한 것도 이들의 넘치는 자신감을 엿볼 수 있어 오히려 든든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는 오만이었다.
프나틱의 ‘레클레스’와 ‘힐리생’ 듀오는 라칸에게 점멸이 없다는 것을 노려, 1레벨부터 적극적인 딜 교환을 펼쳤다. 결국 김정민의 라칸이 허무하게 전사하면서 구도가 망가졌다.
기분 좋게 선취점을 따낸 프나틱은 집요하게 젠지의 바텀을 노렸다.
‘셀프메이드’의 ‘그레이브즈’가 시야를 확보하러 부시로 진입한 라칸을 빈사 상태로 만들었고, 이에 세나와 레오나가 과감히 다이브를 시도해 이즈리얼과 라칸을 모두 잡아냈다.
다급해진 박재혁의 판단력도 흐려졌다. 곧바로 ‘텔레포트’를 이용해 바텀으로 복귀했지만 ‘힐리생’의 레오나가 기다렸다는 듯 다시 타워로 진입, 박재혁을 잡아냈다.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아지르’와 ‘레넥톤’이 텔레포트로 합류해 만회점을 올렸지만, 이로 인해 탑-미드 구도 역시 망가졌다. 사실상 프나틱이 승기를 잡는 순간이었다.
이후에도 프나틱은 합류전을 통해 이즈리얼과 라칸을 지속적으로 괴롭혔다. 젠지는 상체의 분전으로 좋은 흐름을 가져오기도 했지만 이즈리얼이 성장할 시간을 벌기엔 역부족이었다. 27분 중단에서 열린 교전에서 대승을 거둔 프나틱은 그대로 넥서스를 함락시켰다.
자신감은 능력을 온전히, 혹 그 이상을 발휘할 수 있는 동력으로 작용하지만 지나치면 때때론 독이 되기도 한다. 젠지의 이날 경기는 후자에 가까웠다.
이른 시점에 호되게 매를 맞은 점은 긍정적이다. ‘룰러’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다는 걸 알게 된 젠지다. 2라운드에서 더욱 단단해져 돌아올 그들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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