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동안 인류애를 충전하려면 [방구석 특별전③]

일주일 동안 인류애를 충전하려면 [방구석 특별전③]

기사승인 2020-12-25 07:00:03
[쿠키뉴스] 이은호 기자 =2020년을 집어삼킨 전염병은 뜻밖에도 인류의 시험대 역할을 했다. 누군가의 이기심과 누군가의 희생정신이 부딪혔고, 누군가를 향한 혐오는 그들과의 연대를 불러왔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런 어지러운 와중에도 삶은 계속된다. 2021년을 딱 일주일 앞둔 지금. 당신에게 한줌의 인류애와 한줌의 희망, 한줌의 용기를 불어넣어줄 작품들을 소개한다.

▲ tvN ‘유퀴즈 온 더 블록’ 5화에 등장한 사넬 미용실
■ 25일 예능의 날

성탄절인 이날엔 예능 프로그램을 보며 근심을 잊고 웃어보자. tvN ‘유퀴즈 온 더 블록’을 네댓 편만 봐도 반나절이 훌쩍 지나갈 것이다. 시즌3 첫 번째 에피소드였던 47화 ‘전사들’ 특집은 벌써 1년 가까이 이어지는 코로나19 시국에 무력감이 드는 요즘 보기에 제격이다. 방역 최전선에서 사투를 벌이는 이들의 이야기를 보며 동료시민으로서 내가 해야 할 몫을 되새기자. 법조인을 초대한 63화 ‘정의란 무엇인가’ 특집, 소방관들이 주인공이 된 80화 ‘퍼스트 인 라스트 아웃’ 특집도 인류애 회복을 위한 좋은 선택이 될 것이다. 오늘의 ‘유 퀴즈 온 더 블록’을 있게 한 주역들, ‘일반인 레전드’도 빼놓을 수 없다. “안 합니다!”를 외치며 5화를 틀자. 전설의 ‘사넬 미용실’이 등장하는 에피소드다. 서울 여의도를 찾은 25화도 좋다. “뭐든 다 도전해보고 싶다”는 문현숙 자기님의 이야기가 새해를 맞이하는 당신에게 큰 용기를 줄 것이다. 실컷 웃었다면 MBC ‘가시나들’을 틀어보자. 경남 함양의 ‘문해학교’를 배경으로 삼은 리얼리티 예능으로, 70대에서 80대 사이의 농촌 여성 다섯 명이 한글을 배우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 프로그램의 미덕은 시혜적인 시선을 거두고 등장인물 각각을 삶의 주인공으로 존중하는 데 있다. 총 4부작으로, 저녁 식사를 마친 뒤 ‘정주행’할 것을 강력 추천한다. 마음이 1℃쯤 따뜻해진 채 잠자리에 들 수 있을 것이다.

▲ SBS ‘스토브리그’ 포스터
■ 26~27일: 한국 드라마의 날

주말에 몰아볼 한국드라마로는 SBS에서 올해 초 방영한 16부작 미니시리즈 ‘스토브리그’가 제격이다. 스토브리그는 프로야구에서 사용하는 용어로, 겨울 등의 시즌 오프 시기에 선수의 이동이나 연봉협상 등을 둘러싸고 팀 사이에 벌어지는 동향을 가리킨다. 드라마 ‘스토브리그’의 주인공은 만년 꼴찌 팀 드림즈. 유능하지만 운 나빴던 백승수(남궁민)가 드림즈에 단장으로 부임한 뒤 벌어진 일들을 담고 있다. 비리를 저지른 것으로도 모자라 자신의 권위를 악용하는 인물이나, 개인의 안위를 위해 조직에 부당한 압력을 가하는 권력자의 모습을 보다보면 인류애는커녕 환멸이 더욱 크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그래도 끝까지 보자. 드림즈의 수많은 구성원이 자신의 신념을 꺾지 않되 서로를 보듬으며 내일을 향해 나아가는 이 이야기를, 당신은 틀림없이 사랑하게 될 것이다. 특히 마지막 회에 등장하는 “강한 사람이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우리는 서로 도울 거니까요”라는 자막을 보면 감정이 일렁이지 않을 수 없다. 나와 연대하는 내 곁의 동료들을 떠올리면, 다가오는 월요일이 무시무시하게 느껴지지만은 않을 것이다. 오는 31일 방송하는 SBS 연기대상에서 남궁민이 대상을 탈 수 있을지 예측해보는 것도 ‘스토브리그’를 보는 또 다른 재미다.

▲ ‘키딩’ 스틸
■ 28~29일: 외국 드라마의 날

자식을 앞세운 부모의 삶은 어떻게 흘러갈까. 왓챠에서 독점 공개된 미국 드라마 ‘키딩’은 교통사고로 아들을 잃은 제프(짐 캐리)와 그 가족의 이야기를 그린다. 유명 어린이 프로그램의 진행자이기도 한 제프는 자신이 경험한 상실을 어린이 시청자와 나누려고 하지만, 방송국 PD이자 아버지에 의해 번번이 저지당한다. 쌍둥이 형제를 잃은 윌(콜 알렌), 남편의 외도를 눈감기로 한 디어드러(캐서린 키너) 등 등장인물 대부분이 슬픔과 고통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해 뒤틀리고 방황한다. 온기보다는 광기가, 희망보다는 우울이 짙게 베어든 작품이다. 하지만 “모든 슬픔에는 이름이 필요해” “어둠도 있다는 걸 감사해야 해. 어둠이 없으면 빛의 깜빡임이 보이지 않을 테니까” “당신의 흉터는 당신이 깨졌다는 걸 뜻하는 게 아니라 치유됐다는 증거” 같은 통찰력 있는 대사가 마음을 달래주고, 미셸 공드리 감독 특유의 아름다운 연출과 유머 감각에 눈물과 미소가 번갈아 나온다. 총 2개 시즌이고, 각 시즌은 30분 안팎의 짧은 에피소드 10개로 이뤄졌다. 실컷 울고 웃다 보고 나면, 누군가를 사랑할 힘을 다시 얻을 수 있을 것이다.

▲ ‘SBS 스페셜 – 요한, 씨돌, 용현’에 나온 김용현씨
■ 30일: 다큐멘터리의 날

그에겐 세 개의 이름이 있다. 그가 태어나 처음 가진 이름은 ‘용현’이었다. 고교 시절엔 교련 수업에 반대하는 시위를 이끌었고, 성인이 돼선 불의를 바로잡는 법조인이 되고자 했다. 그러나 군사정권의 칼날은 매서웠다. 시위 이력이 있는 이들은 사법시험의 문턱을 넘을 수 없게 됐다. 그의 두 번째 이름은 ‘요한’이었다. 1987년 6월 민주항쟁 때 거리에서 ‘호헌철폐, 독재타도’를 외쳤고, 같은 해 12월 군대에서 한 젊은이가 억울하게 숨을 거두자, 발로 뛰며 증거를 수집해 정치적 이유로 구타당해 숨졌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삼풍백화점이 무너진 1995년엔 사고 현장에 가장 먼저 달려와 구조를 도왔다. 세 번째 이름 ‘씨돌’은 그가 직접 지었다. 씨돌은 강원도 정선 봉화치 마을에서 무엇도 해치지 않는 자연인으로 살았다. 지난해 6월과 12월에 각각 2부작으로 방영한 ‘SBS 스페셜 – 요한, 씨돌, 용현’은 이 남자의 삶을 보여준다. 약자의 편에 서서 정의를 위해 자신을 헌신했던 그의 삶의 궤적을 따라가다 보면, 엄청난 경외감과 함께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SBS 스페셜’의 연출자 이큰별PD가 쓴 ‘요한, 씨돌, 용현(어디에나 있었고 어디에도 없었던)’을 읽어보자. 인세 일부는 김용현씨의 재활치료를 위해 기부된다.

▲ 영화 ‘원더’ 스틸
■ 31일: 영화의 날

새해를 하루 앞둔 날. 마음이 외로워진다면 영화 ‘원더’(감독 스티븐 크보스키)를 보자. 남들과 다른 외모를 가진 열 살 소년 어기(제이콥 트렘블레이)와 그의 가족·친구들의 이야기다. 집을 벗어나 학교라는 사회로 발을 디딘 어기가 낯선 이들과 친구가 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어린이들의 순수함에 감동하는 한편, 단지 ‘다르다’는 이유로 소외되는 이가 곁에 없는지 돌아보게 될 것이다. 용기가 필요한 이들에겐 영화 ‘걷기왕’(감독 백승화)을 추천한다. 선천적 멀미증후군을 가진 고교생 만복(심은경)이 경보 선수로 성장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개성 강한 캐릭터들을 보며 웃음을 짓다가도 결국엔 ‘나만의 속도는 무엇인가’를 고민하게 만든다. 참고로 영화를 만든 백 감독은 “우리는 열심히 안 하잖아. 우린 안 될 거야, 아마”라는 희대의 유행어를 남긴 그룹 타바코쥬스의 멤버이기도 하다. 한 해를 마무리할 영화로는 ‘업’(감독 피트 닥터·팝 피터슨)을 추천한다. 78세 노인 칼과 8세 소년 러셀의 남미 모험기를 담은 작품이다. 한 사람의 생애를 아름답게 연출한 오프닝을 지나 풍선을 매단 집으로 비행한다는 동화 같은 상상력과 화려하고 역동감 넘치는 풍경이 어우러져 1시간40여분의 러닝타임이 정신없이 지나간다. “삶을 정말 특별하게 만드는 요소는 가족과 친구들, 그리고 매일 일어나는 사소한 사건들”이라는 닥터 감독의 말을 되새기며 다가오는 2021년을 활기차게 맞아보자.

wild37@kukinews.com / 사진=tvN, 왓챠, SBS, 팝엔터테인먼트 제공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
이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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