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자부는 지난 2017년 12월부터 2018년 6월까지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비판적 의견을 낸 ‘원전수출 국민행동’(원국행)의 동향보고서를 작성한 의혹을 받는다. 원국행의 기자회견과 준비모임 등의 동향을 파악, 보고서를 작성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에 비판적인 시민단체를 ‘사찰’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상황이다.
원국행 부본부장을 지낸 주한규 서울대학교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3일 쿠키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기자회견은 공개적인 행사이기에 동향을 파악할 수 있다지만 준비모임은 사적인 장소에서 따로 모임을 가진 것이다. 공개적인 행사가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다만 “사찰 의혹을 접하고 놀라긴 했지만 진정되고 보니 심각하게 사찰한 것으로는 보지 않는다”며 “단체는 거의 와해된 상황이다. 사찰 의혹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계획은 갖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개인이 아닌 단체에 대한 공개된 정보를 수집한 것이기에 ‘사찰’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봤다. 개인의 정보를 수집하는 것은 ‘개인정보 보호법’ 위반이지만 단체의 경우는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 정부기관의 여론수렴 과정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참여한 개인의 사적인 영역을 살펴본 것이 아니라 공개된 기자회견 등을 통해 단체의 주장을 파악하려 했다면 정보 수집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사법시험준비생모임(사준모)은 지난달 31일 “산자부 공무원들이 원전 수출에 반대하는 시민단체의 동향과 집회신고서 등을 보유했다”며 민간인 불법사찰 의혹에 대한 청와대의 해명을 요구했다. 또 다른 시민단체인 자유대한호국단도 같은 날 민간인 불법 사찰 혐의로 성윤모 산자부 장관 등을 대검찰청에 고발했다.
불법적인 민간인 사찰의 기준은 무엇일까. 대법원은 1998년 민간인 불법 사찰에 대해 “직무범위를 벗어나 민간인들을 대상으로 동향을 감시·파악할 목적으로 개인의 집회·결사에 관한 활동이나 사생활에 관한 정보를 미행, 망원 활용, 탐문 채집 등의 방법으로 비밀리에 수집·관리한 행위”라고 정의했다.
1990년 윤석양 당시 이병은 국군보안사에서 법조인과 언론인, 종교인, 재야인사 등 1300여명의 동향을 파악, 정치 사찰을 벌였다고 폭로했다. 법원은 군과 무관한 민간인을 부당한 방법으로 사찰한 것은 명백한 헌법 위반이라며 피해자들에게 200만원씩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정보기관이 개인을 사찰한 것이 위법이라는 사실을 처음 인정한 판결이다.
2009년에는 국군기무사가 민주노동당 당원과 시민단체 관계자 등 10여명의 동향을 불법 사찰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법원은 2012년 “모든 국민은 사생활 비밀과 자유를 침해받지 않을 권리를 가진다”며 사찰 피해자 15명에게 각 1억2000만원씩 배상하라는 판결을 확정했다.
이명박 정부 당시 국무총리실에서 김종익 전 KB한마음 대표의 동향을 파악해 2013년 유죄 판결을 받기도 했다. 김 전 대표는 지난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시위 당시 자신의 블로그에 정부를 풍자한 동영상을 올렸다. 이에 국무총리실 산하 공직윤리지원관실은 김 전 대표를 표적으로 두고 사찰했다. 압박을 이기지 못한 김 전 대표는 결국 대표직에서 물러나야 했다.
‘무혐의’로 판단돼 논란이 된 사찰 의혹들도 있다. 기무사·국정원은 세월호 유가족을 사찰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실제로 유가족을 사찰하게 한 기무사 전 처장 등은 법원에서 직권남용권리행사 방해죄 유죄 판단을 받았다. 그러나 세월호 특별수사단(특수단)은 정보기관의 유가족에 대한 동향보고서 작성 사실은 확인됐으나 미행·도청·해킹·언론 유포 등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권리 침해는 확인되지 않았다며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김태우 전 검찰수사관이 제기한 청와대 특별감찰반의 민간인 사찰 의혹도 관련 첩보는 풍문 수준에 가깝다며 무혐의 처분이 나왔다.
전문가들은 정부에서 ‘사찰’과 정보수집을 가를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한상희 건국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드러나지 않은 정보를 수집하는 것은 불법이다. 사찰된 정보를 바탕으로 ‘나쁜 짓’을 하거나 혜택을 주는 것은 허용될 수 없다”면서 “행정 과정에서 필요한 의견이나 여론을 수렴하는 행위들은 권장돼야 한다”고 봤다. 한 교수는 “국무조정실 등에서 합법적 정보 수집 등을 위한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성기 성신여자대학교 지식산업법학과 교수는 “정보수집 관련 가이드라인이 정부에 없다”며 “사찰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용어도 통일되지 않았다. 이로 인해 불필요한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수사기관·정보기관이 정보수집 활동을 할 때는 정확하게 기록을 남겨야 하지만 시스템이 전혀 갖춰지지 않았다. 사후 문제가 될 것을 대비해 기록을 남기지 않는다”며 “정보수집 기록이 없다면 사찰인지 아닌지도 판명할 수 없다. 정부의 인적·물적 자원을 함부로 쓰게 되고 통제에서도 벗어나게 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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